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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달림 Jan 02. 2020

고산 휴양지 차(茶)의 고향 다르질링

히말라야의 여왕 다르질링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칸첸충가(8,586m)를 비롯한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 쌓인 다르질링은 해발 2,130m의 고산에 자리한 휴양도시로 여름철 인도의 살인적인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영국이 만든 휴양 도시로 시킴 왕국의 땅이었다. 18세기 말 시킴 왕국으로부터 소유권을 받아 기후와 토양에 맞는 차(茶) 재배지기 되었다. 다르질링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네팔 출신의 용맹한 구르카족의 후예들로 피부색이나 얼굴 생김이 비슷하여 이웃동네로 여행을 온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로 비슷했다.





인도 여행은 기차가 정답


거대한 땅덩어리 인도에서 이동수단은 기차가 가장 효율적이 이용방법이다. 다르질링으로 가는 길은 관문인 실리구리는 기차가 닿지 않는 곳이다. 기차가 연결되는 곳은 뉴잘패구리로 콜카타의 실다 역에서 출발을 한다. 시간도 여유로워 인도를 느끼려 걸어갔다. 차도 주변 길은 자동차 길은 불빛이 있어 그런대로 걸을 만했는데 골목길에 들어서면 암흑이다. 그 어두운 길에서 짜파티 파는 아줌마를 만났다. 어두운데 골목에 자리를 깔고 그 위에는 고막 고막 한 아이가 4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길에서 솥을 걸고 밥을 지어 커레와 밥을 나누어 주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하다. 모정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위대했다. 보채지도 않고 차례로 밥을 받아먹는 모습이 다정스럽게 보였다.


근 3km가 넘는 길이라 큰 도로를 돌아가기보다.  질러가는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그들이 사는 동네를 지나는데 너무 어두워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긴장이 되는데 집집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아이를 한 둘씩 안고 나와 수다를 떨고 있다. 벌어진 대문  틈 사이로 곁눈질로 들려다 보니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보고 오랜만에 보는 모습에 추억을 떠 올랐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인도의 여인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비싼 집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혼자 있다면 행복할까? 서울 도심 부촌의 대궐같이 큰 집에 자식을 자식은 결혼시키고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겨진 어느 할머니를 생각해 봤다. 인도에서는 혼밥이란 단어는 없다. 길거리의 노숙 부부도 자식은 5~6명이 기본이다. 가난해서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다. 행복은 돈이 있고 잘 살아야 행복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실다 역을 가지 전에는 인도 재래시장을 지나는데 물건을 사는데 에누리하면서 밀고 당기는 모습은 생동감이 있다. 메케한 매연에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자동차 소음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무질서 속에도 그들만의 질서를 가지고 있었다. 내 문화가 맞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 할지라도 조금은 불편하고 비합리적이고 비능률적이라 해도 그들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콜카타 사람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이 될 것 같다.


다르질링으로 가는 실다 역은 인도 인구 12억 명이 말하듯 역 주변 어디에도 사람으로 넘칠 정도로 어디론가로 떠나는 사람들로 초만원이다.  신문지 혹은 비닐 한 장을 깔고 담요를 덮고 기차 시간을 기다리면 잠을 청하며 기다린다. 나도 그 속 한 사람으로 바닥에 퍼질러 있다. 인도는 묘하게 마력이 있는 여행지다. 깃발을 든 성지순례를 가는 이들은 대충 5 ~60명이 움직이는데 머리에 짐을 이거나 메고 길을 떠나는 모습이 비장하게 보인다.


뉴잘패구리로 가는 기차는 출발 40분 전에 플랫폼에 들어왔다. 슬리퍼 S3 59번 Upper 침대다. 밤새 자고 가다 보면 아침에 또 다른 인도의 얼굴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든다. 덜컹거리는 슬리퍼칸에서 자고 있는데 아랫칸에 인도인들이 다르질링으로 여행을 간다고 마음이 설레었는지 컴컴한 새벽녘에 일찍 불을 켠다.






다르질링의 관문 뉴잘패구리


뉴잘패구리행 12343호 기차는 아침 8시 도착시간을 넘기고 아직도 달린다. 두 시간을 연착하여 10시가 되어 종점인 뉴잘패구리에 도착을 한다. 기차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분주히 어디론가 간다. 기차에 내려 육교를 건너 역을 나오니 이곳에서 사설 지프가 다르질링으로 간다. 1인당 200Rp이고 한 줄에 3명이 앉는 자리에 4명씩 2줄로 태우고 운전석 옆 자리에 3명을 채우고서야 출발을 한다. 실리구리를 지나니 길옆으로 차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점점 고산으로 올라가는데 언덕 중간 작은 가게 앞에 잠시 쉬어간다.


기차의 아랫칸에 탔던 인도 젊은이들을 여기서 다시 만났는데 반갑다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인도인들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함께 가는 짚차에는 서양인 1명과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인도 현지인들로 오른쪽 옆에는 젊은 커플들이고 왼쪽에는 우리네 동네 아주머니 같은 분인데 너무 비좁아 완전 꽉 끼어 간다. 그도 그럴 것이 3인석을 4명이 앉아 가니 옴짝달싹할 수 없다.


다르질링은 히말라야 자락으로 주변 풍경이 인도보다 네팔을 더 닮았다. 올라가는 길도 얼마나 험했기에 버스는 다닐 수 없고 사륜구동 짚차만 다닐 수 있는데 한계령 보다 몇 배는 더 심한 급커블 길을 곡예 운전하듯 잘도 달린다. 반대편 차와 스쳐 지나갈 때는 전율이 느껴진다. 고산지대에 드문드문 인가도 보이는 게 히말라야 남체와 비슷한 마을 같다. 다른 건 여긴 차가 다닌다는 것이다.

경사가 가른 땅에 살아가는 다르질링 사람들




인도는 한번 준 돈은 돌려받기 힘든다.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초라스터 광장으로 올라가 방을 구하는데 1월은 비수기라 많은 숙박업소가 문을 닫고 있다. 어두워지기 전에 전망에 그런대로 좋아 방을 잡았는데 wi-fi도 되지 않고 핫 샤워도 되지 않는단다. 가격도 700Rp로 2박에 1,400Rp를 계산했다.  다음 여정인 갱톡을 가기 위해 시킴주 퍼밋을 받으러 나서는데 삐끼가 호객을 한다. 600Rp에 Wi-fi도 되고 핫 샤워도 된다고 하니 귀가 솔깃하다. 해약을 하러 갔더니 5분도 안 됐는데 취소 수수료가 200Rp라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인도는 한번 돈을 주면 뒤돌려 받기가 쉽지 않다. 꼭 연락할 일이 있는데 wifi가 되지 않아 숙소를 옮겨야겠다고 하여 100Rp를 수수료로 주고 숙소를 옮겼다.


580Rp에 2박을 예약하고 삐끼에게 20Rp를 줘다. 썩소를 하고 가는 삐끼 뒷모습이 아름답지는 않다. 초라스터 광장 부근에 티벳탄 식당이 있는데 이곳의 뚝바 맛은 최고다. 이모님 칼국수 같은 맛인데 국물은 육수를 진하게 우려내어 사용하는데 그 국물 맛이 엄지 척이다. 확실히 티베트와 우리는 닮은 점이 많다. 다르질링에 있으면서 이 식당을 자주 이용해서 단골이 되었다.                                               

                           

DM사무실은 언덕 중턱에 있는데 가는 길이 꼬부랑길이라 물어물어 찾아가니 오늘이 토요일이라 월요일에 오란다. 도시가 언덕에 있으니 오름 아니면 내림인데 해발 2,300m 되는 고산이라 조금만 빨리 걸으면 금방 숨이 찬다. 고소가 수시로 느껴지는 곳이다. 돌아오는 길에 내일 아침용 빵과 치킨, 킹 피시 맥주 한 병을 샀다. 인도에서 비싼 게 술값이다. 술값은 우리와 비슷할 정도로 비싼 인도의 술값이다. 1월의 다르질링은 영하의 기온은 아니지만 차갑게 느껴지는  날씨다.


인도의 여느 사원과는 다른 부티아 브스티 템플 입구


다르질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자리한 곰파인 부티아 브스티 템플을 찾았다. 꼬부랑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티벳탄을 닮아서 일까 내가 외국인이 아니고 현지인 모습이다. 그만큼 친근감이 가는 다르질링이다. 곰파에는 여인이 이른 아침부터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무언가 간절히 기원을 하는 모습이다. 그들에게 마니차를 돌리면 불경을 읽는 것과 같다. 글을 모르는 그들에게 마니차는 신앙심의 표현이도 하다.


가내 수공업으로 살아가는 티베탄 난민센터

20여분을 걸으면 티베탄 난민센터가 있다. 1959년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인 650명이 모며 사는 곳으로 전통 수공예품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나라를 잃은 그들의 슬픔이 느껴지는 마을이다. 히말라야 동물원은 히말라야에서 서식하는 멸종위기의 동물을 보호하는 곳으로 마을 길을 따라 산을 넘어서 가는데 산속에 인적이 뜸하다. 산속에서 만난 현지인은 동물 먹이로 사용할 풀을 베고 있다. 산속에서 사람을 만나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이곳 동물원은 야생동물을 친환경적으로 서식환경과 같이 만들어 사육하고 있지만 사육공간이 좁아서 결코 동물이  편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눈 표범과 티베트 늑대를 직접 볼 수 있었는데 늑대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왔다 갔다를 반복하니 보는 내가 조급증이 느껴진다.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자들 힐러리와 텐징


다르질링에서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자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를 만나다.


동물원 안에는 히말리안 등산학교가 있다.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1953년 네팔 출신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을 성공한 이듬해 당시 수상이던 네루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설립한 등산학교다.  네팔인인 텐징 노르가이는 말년까지 이곳의 관장으로 있으며 후진양성에 힘썼다. 박물관에는 에베레스트 등정 당시 사용했더 장비, 히말라야 지도, 등정을 인정한 문서가 전시되고 있다. 전시물 가운데는 거대한 망원경은 아돌프 히틀러가 소장하던 것을 네팔 수상에게 선물한 것을 이곳에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다르질링 차 왼쪽부터  첫물차, 두물차, 오텀널

다르질링 차(茶)는 내 입에 맞는 게 최고의 차


돌아오는 길에 해피 벨리 다원은 다르질링 차(茶)를 제조 가공하는 곳인데 비수기라 문을 닫고 있어 차밭만 둘러보았다. 차나무 평균 수명은 80년 정도고 가장 오래된 것은 15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다르질링의 차는 1년에 3번 수확을 한다. 첫물차(First Flush), 두물차(Second Flush), 오텀널(Autumnal)로 구분된다. 첫물차(First Flush)는 3 ~4월 봄에 처음으로 수확한 차로 1st라고도 표기하며 첫물 색이 연하고 야생화 향기와 같은 독특한 풀잎 향이 난다. 차 애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다. 두물차(Second Flush)는 5 ~6월 여름철에 수확하는 차로 2nd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첫물차보다 맛과 색, 향이 좀 더 강하다. 오텀널(Autumnal)은 몬순이 끝난 10월 이후에 수확한 차로 맛과 색은 진하지만 향은 살짝 약하고 달콤함이 느껴진다

차(茶)는 비싼 차가 좋은 차가 아니고 마셔보고 자기 입맛에 맞는 차가 최고의 차라고 한다. 굳이 비싼 차를 구입할게 아니라 시음을 해보고 입에 맞는 차를 고르는 게 좋다.




세계문화유산 열차인 토이 트레인



칙칙 폭폭! 다르질링의 세계문화유산 토이 트레인


다르질링의 또 하나의 명물은 토이 트레인(Toy Train)으로 다르질링과 근교의 마을 굽을 오가는 세계문화유산 열차다. 19세기 영국이 다르질링 차를 수송하기 위해 개발한 교통수단이다. 본래 이름은 다르질링 히말리안 레일웨이(Darjeeling Himalayan Railway). 토이 트레인은 일반 기차의 절반 크기인 귀여운 외형 때문에 붙여진 애칭이다. 레일은 좁은 협궤에 석탄을 태워서 물을 데워 가는 증기기관차다. 칙칙 폭포 소리를 내며 하얀 증기를 내뿜으면서 달린다. 연신 뿌~ 뿌 ~ 하며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린다. 70년대로 시간여행이고 길게는 19세기의 다르질링의 차(茶)를 운반하던 기차다. 가는 길에 구로카 전쟁기념관에 가기 위해 바타시아 루프를 돌라서 올라 잠시 쉬었다가 굽으로 간다. 굽에는 다르질링 철도 부설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인도 땅이지만 인도 같지 않은 다르질링이다. 다음 여정은 시킴의 주도 갱톡으로 간다.

토이 트레인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증 표시가 있는 다르질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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