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부터 포기자 발생

갈증 속 기요 크릭 가는 길

by 산달림


오늘부터 본격적인 존 뮤어 트레일이 시작되는 날이다. 7시 출발이라 5시에 일어나 배낭을 꾸렸다. 아직은 깜깜한 어두움 속에 탠트를 걷니 결로현상으로 생긴 물이 주르르 흐르는 탠트를 둘둘 말아 배낭에 밀어 넣었다. 영하에 가까운 쌀쌀한 기온에 패딩에 털모자를 쓰고 장갑까지 끼고 짐 정리를 했더니 금세 장갑이 축축이 젖는다.


아침식사는 알파미에 미소 된장국이다. 그냥 말아 흡입하듯 삼켰다. JMT에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지 맛을 음미하고 먹을 여유는 없다. 5-6-7로 5시 기상 6시 아침식사 그리고 7시 출발이다. 젖은 탠트가 묵직하게 어깨를 짓누른다. 어제 고소적을 하러 다녀온 길을 다시 오른다. 첫 번째 개울가에서 잠시 어깨 쉼을 하고 정수한 물을 스마트 물병에 채우고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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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튼우드 패스 가는 길 안내표지판(좌) 코튼 우드 캠핑장(좌)

두 번째 쉼을 할 때 산 중턱의 풀밭에서 젖은 탠트를 말렸다. 건조하고 쾌청한 날씨에 금세 뽀송뽀송하게 마른다. 올해 67세로 최연장자이신 분이 이상하다. 어제는 선두권에서 잘 걷던 분인데 많이 힘들어 한다. 출발 5분도 채 안되어 쉬었다 가겠다고 한다. 코튼우드 패스에 도착하여 쉬고 있는데 30여분 뒤에 무척 힘들게 올라오셨다. 오늘 아침에 올라오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힘이 없단다. 쉬고 쉬고 해서 올라왔다고 하는데 영 얼굴색이 창백하고 힘이 없어 보인다. 고스증상이 오는것 같다.


너무 힘들어하시길래 메트레스를 꺼내 깔고 등산화도 벗기고 잠시 쉬면서 우황청심환도 먹었는데 그렇게 낫을게 아니라고 하며 어렵게 꺼내는 말씀이 "여기서 내려가야겠다."라고 한다. 더 이상 누를 끼칠 수 없어 여기서 내려놓겠다고 한다. 60대는 딱 2명으로 서로 의지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산을 내려간다고 하니 내가 제일 섭섭하다. 그간 나에겐 큰 버팀목이었는데 내려가면 내가 제일 연장자다.

코튼우드 고개를 오르는 꼬마숙녀 등산꾼과 아빠

현실은 냉혹한 것 갈 사람은 가야 하고 남을 사람은 남아야 한다는 현실이다. 짧은 작별의 시간에 남기신 말씀은 ' 당신들도 금방 내 나이 돼.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야. 잘들 살아.' 헤어지기 전에 작별 기념사진을 남기고 포옹을 하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별은 짧을수록 좋다. 애써 씩씩하게 PCT길로 접어들어 휘트니로 향했다.


어제 이 길이 맞다고 그렇게 실랑이들 벌였던 그 삼거리에서 '어제는 어플 지도 정치를 안 했네.'라고 중얼거리듯 말하고 간다. 누구에게는 공개망신을 주려고 공개사과까지 하라고 해놓고 그렇게 어물쩍 넘어간다. 예전의 산악대장이야 절대 권력자였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요즘 산악대장은 많이도 바뀌어 형님 리더십 혹은 스펀지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여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 PCT길을 걷는다. 멕시코 캄포에서 시작해서 캐나다 모뉴먼트까지 가는 길이 이곳을 지나며 JMT의 대부분의 길이 PCT에 포함이 되어 있다. PCT가 풀코스 마라톤이라면 JMT는 10km 단거리 마라톤이라 비교할 수 있겠다. 치킨 스프링 호수(Chicken spring Lake)를 지나는데 앞서 가는 사람들은 물 보충 없이 그냥 지나간다. 올해 비가 적게 내려 JMT길의 작은 계곡의 물은 말랐다는데 늦어도 물은 채워 가야겠다. 호수의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정수해서 물통 가득 물을 채웠다. 그게 몇 시간 후 얼마나 소중한 물이 되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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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생수병인 스마트 물병은 슬림하고 가벼워 물병으로 좋고 정수는 카타딘 정수기(좌) 치킨 스프링 호수의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우)

왼편 아래로는 넓은 초원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빅 휘트니 메도우다. 오른편으로는 풀 한 포기 없는 바위산인데 듬성듬성 세콰이어 나무만 자라고 있고 산정상부는 생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돌산이다. 마사토가 깔린 트레일 길은 한낮으로 가면서 내려 쬐는 직사광선은 살인적으로 강렬하다. 잘 달구어진 모래와 바위에서 뿜어 나오는 후끈한 열기가 콧속까지 건조함이 느껴진다. 이럴 때는 자주 수분 공급을 해주어야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이번 트레킹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점심은 행동식으로 초코바와 곡물가루, 그리고 포카리스웨트 분말가루를 물에 타서 마신다. 하루 걷기에 사용하는 에너지에 비해 섭취하는 열량이 부족해 늘 배고픔을 많이 느꼈다. 서양 트레일러들은 부피가 적은 고열량의 음식 위주로 섭취하고 있었다. 이런 험하고 더워 체력소모가 심한 길을 걸을 때는 높은 열량을 먹어야 잘 걸을 수 있다.


오후로 가면서 높은 열기로 점점 지쳐가는데 계획했던 지점인 락 크릭크(Rock Creek) 지역에 도착했으나 물이 없다. 작은 계곡이 있지만 가뭄에 말라 버렸다. 락 크릭이란 지명도 딱히 어느 곳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 일대 전체를 락 크락이라 부른다. 지나오면서 GPS지도에 표기된 샘도 말랐기에 나머지 샘도 말랐으리란 계산으로 주변 계곡으로 물 찾기에 나섰다. 각자 물통에 물은 비운 지 오래다. 그때 갈증이 심한 여성 대원의 말이 '소변이라도 받아 정수해 마셔야 하는 것 아닌가.'

'설마?'.

사막 같은 메마른 길을 걷는 트레커들 입술은 바짝바짝 마르고 금세 갈증을 느낀다.

이곳으로 올 때 이 길을 반대편으로 걷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6마일만 더 가면 물이 있다.'라고.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행색이 남루한 할아버지의 말을 귀 닮아 듣지 않고 물 찾기 나섰다. 진행방향으로 오른편은 지도상으로 급경사고 왼쪽 편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해 그쪽으로 결정했다.


물이 없으니 물을 구해 오는 방법과 전부 다 그곳으로 가는 방법으로 의견이 양분되었다. 반대 의견으로 만약에 물이 없을 경우 전부가 돌아오는 건 체력이 약한 대원에게는 부담이 있다고 하여 기다리고 두 분이 물을 찾으러 떠났다. 물을 찾으러 간지 1시간이 되어도 함흥차사다. 기다리는 와중에 같은 방향으로 길을 걷는 트레커 부부를 만났다.


'물이 떨어졌다. 어디서 물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

'이 길을 1시간 정도 걸어가다 보면 레인저 사무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이제 물 구하러 간 사람만 오면 되는데 돌아오질 않아 이제 사람 찾으러 나섰다. 소리쳐 불러도 인기척이 없다. JMT 첫날부터 순조롭지 않은 게 신고식을 톡톡히 한다. 에휴!


척박한 고산에 끈질진 생명력을 이어 기는 세콰이어

다시 30여분이 지나서 그중 한 분은 엉뚱한 방향에서 나타났는데 같이 간 사람이 감감무소식이다. 그렇게 2시간을 기다린 끝에 돌아왔는데 완전히 지친 기색인데 언덕 아래에 물이 있긴 있단다. 그곳은 진행 방향과 반대방향이고 길이 없는 언덕을 내려 서야 하고 6마일만 가면 물이 있다 하니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시간만 허비하고 생고생만 하고 피곤한 몸으로 다시 길을 간다. 벌써 지쳐 뒤로 처지는 대원이 있다.


길을 따라 1시간을 걸으니 멀리서 그렇게 기다리던 반가운 물소리가 들려온다. 작은 계곡에 흐르는 물을 배가 빵빵하도록 퍼마셨다. 물의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곳은 탠트 칠 공간이 좁고 레인저 사무실과도 그리 멀지 않아 더 걷기로 했다. 이제 일몰시간을 넘겨 첫날부터 렌턴을 켜고 야간 트레킹을 한다. 레인저 사무실 부근인데 길이 없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의견이 분분하다. 다시 지나 온 샘으로 갈 것인가 더 진행할 것인가? 몸은 지쳐가는데 답답한 시간이 흐른다. 결국 어차피 가는 길이니 더 가자는 의견의 우세해 조금 더 걸으니 금방 넓은 야영지에 먼저 온 트레커들은 저녁식사까지 끝내고 잠을 자고 있다.

너무 건조해 풀이 자라지 않는 바위와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 같은 Pct길

시간은 밤 9시를 넘은 시간이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며 나누는 말소리가 트레커들의 수면을 방해했나 보다. JMT를 걷는 할아버지가 탠트에서 나와 좀 조용하란다. 저녁 메뉴는 알파미와 참치 통조림이다. 함께 말아서 삼키듯 목구멍으로 넘겼다. 맛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게 중에는 알파미에 적응을 하지 못해 남기는 이도 있다. 여기는 곰이 사는 산으로 음식물은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남은 음식물은 한꺼번에 모아 땅을 파고 묻고 나머지 식량은 곰 통에 넣어 10여 m 떨어진 곳이 보관하고 밤 10시를 훨씬 넘겨 잠자리에 든다.

탈도 많았고 뭔가 정리되지 못한 두서없는 하루가 지나간다. 아무리 처음 걷는 JMT길이지만 중지를 모으면 정답에 가까운 답이 나올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이 길을 완주나 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운 첫날밤이 저문다.


"내 생각이 옳다."는 어리석음은 상대에 대한 미움이 된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너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그것이 번뇌를 소멸하는 지름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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