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야영장 크랩 트리
어제 첫날은 계획보다 더 많이 걸어 힘들었지만 오늘 걸을 길이 짧아져 좀 늦게 출발해도 되는 날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떠나는 트레커들의 짐 챙기는 소리에 늦게까지 누워 있지 못하고 탠트 문을 열고 나왔다. 어젯밤에는 너무 늦게 도착해 어두워서 주변 풍경을 볼 수 없었는데 이곳 캠핑장은 나무 숲 속에 자리 잡아 앞으로는 개울물이 흐르고 개울 옆에는 초원이 넓게 펼쳐지는 아늑한 캠핑장이다.
숲 속에서 느끼는 아침의 행복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싶다. 한여름에 적당히 쌀쌀함이 묻어 나는 상쾌한 아침이다. 옆 탠트는 재미 베트남 청소년들이 단체로 트레일을 왔다. 선생님의 지도 아래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미국 땅에서 비슷한 피부색을 만나니 반갑게 느껴진다. 그들도 코리아라 하니 반갑게 맞아준다.
계곡에 큰 물줄기를 이루고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있어 물소리도 듣기 좋다. 어제 물 구한다고 중간에 헤매지 않고 곧장 걸었으면 일찌감치 이곳에 도착하여 물 걱정 없이 편안한 첫날을 보낼 수 있었는데 초행길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나 보다. 조금은 느긋하게 아침을 준비한다. 알파미에 물을 붓고 15분을 기다리면 밥이 된다. 예민한 사람은 냄새가 난다는데 감각이 둔한지 느끼지 못하고 잘 먹었다.
트레킹 2일 차 출발이다. 계곡의 물길을 따라 진행하는 길에는 군데군데 캠핑터가 있고 철재 곰 통이 비치되어 있다. 캠프 파이어도 할 수 있는 파이어링도 있는 좋은 야영지가 여러 군데 눈에 뜨인다. 이 길은 휘트니로 오르는 길이라 트레커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천천히 고소 적응을 하고 오르는 길이라 휘트니를 목표로 하는 트레커들의 주로 이용하는 길이기도 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7 ~ 8m쯤 되는 폭이 넓은 개울이 가로막고 있는데 건너는 다리가 없다. 존 뮤어 트레일은 길은 자연 그대로 보전을 목적으로 한다. 돌 징검다리가 있는데 물이 불어 잠겨 있다. 방수가 잘 되는 목이 긴 등산화를 신으면 잠깐 물에 적시는 정도라 건너도 되지만 트레일화를 신은 분은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한다. 자연적인 통나무나 돌을 딛고 건넌다. 그만큼 인공이 없는 친환경적인 길이다. 이런 것도 JMT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민가를 만나지 못하며 어떤 인공적인 불빛 하나 없는 자연 그대로의 길이 존 뮤어 트레일이다.
기요 패스를 오르는 길은 소위 스위치 백이라는 지그재그 길이다. 오름길은 후끈 거리는 지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긴 숨으로 느리게 느리게 걷는다. 3.200m의 고산이지만 가파른 경사가 없어 천천히 오르는 그런 길이다. 3,322m의 기요 패스를 오르니 아침에 먼저 출발한 재미 베트남 청소년들이 패스 정상에서 쉬고 있다. 통상 장거리 트레킹에서는 이런 고갯마루에서 쉬어 가는 게 상식인데 선두는 그냥 통과했다. 하루 이틀 걸고 말 트레일이 아니기에 초반 무리하지 않으려고 쉬어 간다.
패스에 오르면 이전과 다른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패스에 오르면서 느끼는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새로운 풍경을 선물한다. 산은 온통 푸석 바위로 이 로어진 민둥산들이 펼쳐진다. 그 산에는 아무런 생물도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이다. 그 산 아래로는 세콰이아 나무가 인디언의 역사를 말없이 전해 준다. 꿀 같이 달콤한 짧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 길에 선다.
세콰이어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길은 하늘에는 이글거리는 태양이 땅에는 잘 달구어진 지열이 훅훅 열기를 뿜는다. 숨을 쉴 때마다 콧속이 바짝바짝 말라 극한의 건조함을 느낀다. 낮에는 강한 햇살로 밤에는 뚝 떨어진 싸늘한 밤공기가 하루 동안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크렙 트리 메도우에 도착하니 아침에 먼저 출발했던 재미 베트남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하루를 쉬어 가려고 탠트를 설치하려고 한다. 이곳 분들은 오후 늦게까지 걷지 않고 오후 2~3시경에 트레일을 끝낸다. 크렙 트리 메도우의 개울을 건너기 전과 건넌 후에도 탠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먼저 도착한 트레커들은 그늘에서 물에서 더위를 식힌다.
이곳 개울은 제법 긴 곳인데 드문드문 돌다리가 있어 그걸 딛고 건너야 하는데 물이 넘쳐흐른다. 이곳 트레커들은 거의 트레일화를 신고 걷기에 다들 바지를 걷고 물속을 건넌다. 잠시 데워진 발을 물로 식혀도 좋은 곳이다. 개울을 건너 발을 식히며 쉬고 있는데 이곳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레인저를 만났다. 그는 먼저 퍼밋을 요구했다. 꼼꼼히 퍼밋의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는 이곳에서 지켜야 할 사항을 하나하나 세세히 설명해 줬다.
먼저 3,000m 이상의 높이에서는 불을 피우지 말고 불을 피울 때는 기존에 피웠던 파이어링이 있는 곳에서만 피우고, 탠트는 물가로부터 30m 이상 떨어져 쳐야 하며, 똥은 물가로부터 30m 이상 떨어져 15cm 이상 깊이로 땅을 파고 묻어야 하며 그때 사용한 휴지는 별도 봉투에 넣어 가져 가야 하며, 기존 등산로로 다녀야 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지 말아야 하며 잠을 잘 때 곰 통은 탠트에서 10m 이상 떨어진 곳에 보관하여야 하며 어떤 비누도 사용금지란 한다. 혹시 천연비누는 사용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이 물을 누군가는 마셔야 하기 때문에 어떤 비누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긴 시간에 걸쳐 꼼꼼히 알 듣게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이곳 레인저가 하는 주된 일은 자연보호와 트레커 관리다. 사법권이 있으며 자연훼손에 대한 과태료가 상상외로 비싸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비싼 벌금을 내야 한다.
오늘 야영지가 크렙 트리이기에 아직 갈길이 멀다. 오루 4시까지는 내려 쬐는 태양열을 온몸으로 받고 걸어야 한다. 크렙 트리 메도우에서 크렙트리 까지 약 1.8km를 더 걸어 크렙트리(Crabtree)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트레커들은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즐기도 하고 원판 던지기를 하며 놀고 있다. 캠핑장 앞에 물이 흘러 식수를 구하기 쉬고 곳이다. 이제 미국 본토의 최고봉 휘트니를 눈앞에 두고 있다.
존 뮤어 트레일은 낮에는 타는 듯이 덥고 밤에는 싸늘하게 추운 게 4계절이 공존하는 곳으로 하루 3,000m가 넘는 패스를 한두 개 넘어야 한다. 아름다운 풍경은 힘든 길을 걸어야 만날 수 있으니 그만큼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패스를 오를 때는 너무 힘이 드니 '묵상의 길'을 걷게 되고 말을 할 때 느끼지 못했던 느낌을 느끼면서 자신을 만나게 되고 내 안의 자아와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게 걷는 자에게 주는 큰 선물인 것 같다.
하루의 걷기를 끝내고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이 찾아왔다. 오늘은 좀 일찍 걷기를 끝냈다. 넓은 잔디밭에 탠트를 쳤는데 주변에 병풍을 두른 듯 산이 에워싸고 있다. 둘러보니 우리만 잔디 위에 탠트를 쳤다. 밀렸던 빨래를 끝내고 망중한을 달래고 있는데 올라오면서 만났던 레인저가 다시 찾아왔다. 그는 이제 근무가 끝났는지 사복 차림이다. 그의 말은 잔디 위에는 탠트를 치면 안 된단다. 내일 떠나느냐고 묻기에 내일은 휘트니를 다녀오고 다음날 떠난다고 하니 좋은 선택이라고 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탠트를 솦속으로 옮기라고 한다. 잔디가 아파한다고 했다. 화장실은 대각선 방향으로 숲 속에 있으니 이용하라고 알려준다. 참 친절하면서도 엄격한 레인저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김치를 주니 맛있게 먹겠다고 한다.
존 뮤어 정신은 무엇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의 철저한 자연 보호주의 정신을 계승한 길이 이 길이다. 자연훼손을 우려하여 입장인원을 제한하고 이따금 만나는 안내판은 인공적인 것이고 나머지는 예전 그가 살던 때와 똑 같이 그대로다. 크고 작은 개울을 건너는데도 다리가 놓이지 않고 통나무나 자연을 이용한 돌을 딛고 건너거나 바지를 걷고 건너야 하는 길이 JMT다.
급경사 길을 없애고 지그재그의 스위치 백으로 길을 만들어 걷기 쉬운 길을 만들었다. 이곳의 본래 주인은 곰과 사슴 그리고 세콰이어 나무다. 번개 맞은 나무가 그대로 서 있고 가뭄에 바짝 마른 호수가 그대로고 풀 한 포기 나무 한뿌리도 그대로 두고자 했다. 그래서 자연발생적 산불도 그대로 꺼지게 놔둘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모두를 자연현상으로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인공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하늘에는 쏟아질 듯이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이 존 뮤어 길에서는 유난히도 많고 반짝인다. 자연은 그냥 그대로 놔두는 자연보전 정신을 다시 생각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