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 시작 전 준비운동
고소 적응을 위해 코튼우드 패스(CottonWood Pass)를 다녀오는 날이다. 패스의 높이는 3,401m이다. 7월의 한여름인데 간밤에 추워서 새벽에 잠을 깨서 다시 패딩을 껴 입고 자야 할 정도로 고산의 밤은 쌀쌀했다. 론 파인의 한낮 찜통 같은 더운날과는 비교되는 기온차다. 산행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주당들은 밤 11시가 넘도록 술을 푼다. 고산에서 술은 삼가야 할 기호식품이다.
아침식사는 이번 존 뮤어 트레일에서 주식으로 사용할 알파미 쌀이다. 일본 제품으로 뜨거운 물을 봉지의 기준선까지 붓고 15분을 기다리면 밥이 된다. 알파미는 쌀을 고온에 쪄서 말린 쌀이라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은 쉽게 지어지는데 입맛에 따라 잘 적응하지 못하는 분도 있다. 여기에 미소된장을 뜨거운 물에 풀어 밑반찬과 먹는다. 여기서 밑반찬이 문제다. 준비한 무말랭이는 냉동보관을 하지 않았더니 금방 상해서 제대로 먹어 보지도 못하고 버렸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서양인들은 식사가 간단한데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은 식량 준비에 어려움이 많다.
탠트는 밤새 기온차로 결로가 심하다. 그만큼 탠트 안과 밖의 내기와 외기의 온도차가 심하다. 탠트 내부를 수건으로 닦아야 될 만큼 물이 흥건히 맺힌다. 아직은 뱃속에 기름기가 있어 밥도 반찬도 버리는 이가 많다. 이런 게 얼마나 갈까 싶다. 이곳을 떠나면 다음 식량 보급지인 오니온 벨리까지는 오직 배낭에 든 음식물이 전부다. 이걸로 먹고 버티고 살아가야 한다.
아침밥을 먹고 첫 트레일을 나선다. 그렇게 걷고 싶던 JMT를 걷는다는 게 조금은 상기된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세콰이어 나무가 즐비한데 수령 500년이나 됨직한 나무가 연이어 나타난다. 반세기를 버티어 온 나무들이다. 바싹 마른 마사토 위에 세콰이어 나무만 있지 풀이란 눈을 닦고 찾아보아도 없다. 사막의 기후인 고온 건조한 기후 탓에 풀들이 살아가지를 못한다.
티 없이 맑은 날씨에 하늘은 코발트빛 그대론데 내려 쬐는 햇살은 강열하여 화상을 입을 것 같은데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함이 느낀다. 그만큼 습도가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 휴식은 작은 개울을 건너 숲 속에서 쉬어 간다. 그 옆에는 작은 통나무집이 자리 잡고 있다.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만 풀들이 자란다.
JMT에서 식수는 개울물과 호수의 물을 정수해서 마신다. 트레일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물인데 호수가 많아 이곳에 사는 동물들이 죽어 부패되거나 기생충에 감염될 우려가 있어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물을 정수해 마신다. 호수 물은 깨끗한 곳도 있지만 오래 고여있어 꺼림칙한 곳도 있어 정수하지 않으면 마시기 힘든 곳도 있다. 코튼우드 패스로 올라가는 길은 고도를 높이는 구간으로 오름길은 지그재그 길인데 일명 스위치백 방식으로 올라간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올라가기는 그리 힘들지 않은데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이기에 고소로 숨이 평소보다 많이 가빠진다. 천천히 호흡에 맞추어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 남의 속도에 맞추지 말고 My Way my pace(내 길은 내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코튼우드 패스에 오르니 이 길이 그 유명한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걷는 4,300km PCT길과 만난다. 존 뮤어 트레일은 요세미티에서 휘트니까지로 휘트니(4,418m)를 오르기 위해서 3일에 걸쳐 PCT길을 걷고 고소 적응을 한 후 휘트니에 오르는 일정이다. 능선 너머에는 빅 휘트니 메도우(Big Whitney Meadow)가 펼쳐진다 메도우는 초원으로 고산에 물이 있는 곳에 넓은 초원이 펼쳐지면 그 모습이 장관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내일 갈 트레일을 확인하는데 지도를 보니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PCT길을 따라 이어진다. 초행길이라 의견이 분분하다. 바로 쭉 가야 한다는 분도 있다. 각자 나름대로 산에 대해 식견을 가지고 있으니 이곳 JMT까지 왔는데 그걸 우격다짐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씩씩거리며 내려가자 뒤에 남아 좀 더 분명히 길을 익혀 두려고 다시 갈림길에 가서 확인하니 분명히 길은 우측으로 안내되어 있었다. 그것도 못 미더워 마침 그 길로 접어드는 트레커를 만나 휘트니를 가려면 이 길이 맞냐고 확인을 했는데 이 길이 맞다고 한다. 모두가 초행인데 서로 협력하고 상의해서 길을 찾아가면 될 일이지 고집을 세운다고 될 일은 아닌듯하다고 생각하며 찜찜한 기분으로 왔던 길을 내려왔다.
개울가에 쉬고 있는데 한 무리의 말들이 내려온다. JMT의 물자 수송은 오직 말에만 의존한다. 바퀴가 달린 것은 길을 갈 수가 없는 산길이다. 트레커의 보급품을 실어주고 내려오는 말들이다. 제일 앞에 말을 모는 말몰이는 마치 서부시대 카우보이가 나타난 것처럼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능숙하게 말을 몰고 가면 그 뒤를 말들이 따라 움직인다. 맨 후미에도 말몰이가 말을 타고 지나간다. 마치 서부시대로 돌아 가는듯한 느낌이다.
캠핑장을 30여분 앞두고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소나기성 비를 퍼붓는다. 아침에 날씨가 너무 좋았고 고개만 다녀온다고 가볍게 출발하느라 비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를 맞았다. 우선 큰 세콰이아 나무 아래에 비를 피했지만 금방 그 칠 비는 아닌 것 같다. 바람막이 옷을 걸치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고산에서 맞는 비는 얼음 같이 차가워 오들오들 떨린다. 오래 맞으면 저체온증이 걸릴 것 같다.
배낭을 멘 채로 뛰듯이 서둘러 캠핑장에 돌아오니 앞서가던 일행이 없고 스틱을 기둥으로 쳐놓은 탠트는 비에 흥건히 젖었고 말린다고 널어둔 침낭은 비에 젖은 채 천막 아래에 옆 트레커가 걷어 두었다. 이곳은 비가 자주 내리는 지역으로 오후에 한두 차례 비가 자주 내리는 지역임을 몰랐던 탓이다. 20여분이 지나도 앞서간 앞서간 일행이 돌아오지 않아 찾으러 가야 하나 하고 초초히 기다리는데 비를 쫄딱 맞고 한 분만 돌아오고 나머지 두 분은 돌아오지 않았다.
비가 오니 그냥 길만 보고 달리다가 엉뚱한 길을 간 것이다. 20분 이상이 지나고 비에 흠뻑 젖은 채 두분도 덜덜 떨면서 무사히 돌아왔다. 그냥 길만 보고 뛰어갔는데 아닌 것 같아 돌아 돌아 찾아왔단다. 그러길래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을 바짝 차리라 했거늘 급히 앞만 보고 가다 보니 길을 잃은 것이다.
1시간 넘게 퍼붓던 소나기가 지나가고 모닥불을 피워 젖은 옷을 말리고 내일 본격 산행을 준비하는데 비가 내린 후 캠핑장은 으시시 춥다. 누구는 더위에 힘들어하는데 추워라 하니 사람의 마음은 그때그때마다 참 간사해진다. 옆 탠트 앞에 할아버지 두 분이 캠프파이어를 하는데 나무를 꺾는데 완전 초짜라 나무를 잘라 불을 피워주니 고맙다고 한다. 그들은 LA에서 왔는데 휘트니만 오르는 트레커들로 은퇴를 하시고 여행과 트레킹을 즐긴다고 한다.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생활에 괜히 셈이 난다. 어두움이 깔리더니 밤에는 달이 떴다. 변덕이 심한 코튼우드 캠핑장의 날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