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스띠야 지방 비야 프랑카

항상 앞으로 나아가라.

by 산달림

이제 라오하 지방을 벗어나 부르고스 지방에 들어서게 된다. 어젯밤은 성당의 알베르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새벽에 먼동이 트기 전 배낭을 챙겼다. 다른 순례자들도 일찍 짐을 챙기고 있다. 주방에서 냉장고 문을 열고 쥬스와 빵을 먹는다. 일찍 순례길을 떠나는 순례자를 위한 식사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 먹고 나서려는데 어제저녁 전체 식사 때 열심히 서빙을 하던 예쁘장한 젊은 남자 친구도 이곳의 스텝이 아니고 순례자였다. 어린 친구가 부엌일도 열심히 하고 서빙도 하더니 우리보다 먼저 길을 나선다. 누구를 위해 봉사는 모습은 늘 아름답다.

DSC_9389.JPG
DSC_9390.JPG
이른 새벽 그라뇽마을의 인적이 끊기 풍경(좌) 순례길 안내 표지판(우)

어두운 그라뇽 마을을 벗어나 순례길에 들어섰는데 사거리 갈림길에서 순례자들이 우르르 모여 있다. 이유는 여기서 마땅히 있어야 할 순례길 방향 표시가 없으니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우리 보고 이 길이 맞냐고 한다. 저기서 방향을 확인하고 왔냐고 물어 우리도 너희들 보고 따라왔다고 했다.

DSC_9397.JPG
DSC_9400.JPG
여기서 산티아고까지는 576km가 남았다.(좌) 끝간데 없는 밀밭(우)

잠시 주변을 들러 보아도 길 표시가 없어 좀 더 직진을 해보기로 했다. 순례길은 좀 더 걷다가 좌측으로 산티아고 길 표시가 있다. 유러피안들은 정확한 걸 좋아하는데 표시가 없으니 걷지를 않는다. 그들의 생각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부르고스 지방으로 접어들면 "어디가 되던 항상 앞을 향해 나아가라!"란 글이 있다 이제 리하오 지방을 뒤로하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지평선을 따라 까스띠야 지방으로 들어서게 된다. 길은 완만한 언덕을 넘어 마을로 접어들고 녹색 향연과 푸른 하늘의 색이 잘 조화되고 너무 깨끗하고 청량감이 느껴진다.


DSC_9401.JPG
꽤나 요란하게 홍보하는 알베르게에는 태극기도 바람에 달리고 있다. (좌) 바의 간식(우)

그간 부쩍 늘어난 한국 순례자를 위한 어느 알베르게는 태극기도 자랑스럽게 내걸려 있다. 마을마다 있는 성당도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고 산 위에 있는 건축물도 역사를 전해 주는 것 같다. 이곳도 작은 마음에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고 노인네들만 남아 있어 활력이 없다.


DSC_9405.JPG
DSC_9404.JPG
벨로라도성당 (좌) 산위에 있는 풍화된 유적지(우)


자동차 길 옆으로 난 순례길을 따라 걷다가 비야 프랑카까지는 고막 고막 한 작은 마을을 5개나 지난다. 레데시야, 카스틸델카도, 발 로리아, 비야 마르코는 2 ~3km 간격으로 촘촘히 있다. 다음이 벨로라 도로 그중 좀 큰 마을로 바가 있고 알베르게도 있다. 여기서 11km를 더 걸어야 비야 프랑카가 있고 다음 마을은 산길을 넘어 12km를 더 걸어야 하니 비야 프랑카에서 끊고 다음날 아침에 산을 넘는다.

DSC_9413.JPG
DSC_9415.JPG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나는 기도처인가?(쥐) 그닥 많은 비가 아니라 우의를 입고 우산을 스고 가는 카미노길(우)

출발하기 전부터 또 비가 내린다. 비를 맞으며 걸으면 걸음이 빨라진다. 쉴 곳도 없으니 계속 걷게 된다. 이 지역은 비가 자주 오는 것 같다. 이곳을 지날 때 비를 맞고 걸었다는 글을 많이 읽었다. 비야 프랑카에 도착하니 공립 알베르게는 문이 닫혀 있다.


San Anton알베르게는 어디에 있을까? 현지인에게 물으니 호텔로 안내해 준다. 호텔 내 별도의 건물에 알베르게가 운영이 되고 있다. 카스티야 여왕이 순례자 병원으로 지었는데 지금은 별3개의 호텔로 순례자를 위한 호스텔도 운영하고 있다. 도미토리는 숙박비 8€에 저녁식사가 14€다.


이곳 알베르게는 호텔 사장님이 순례길을 걸어보고 호텔의 일부를 순례자를 위해서 별도의 순례자용 건물에 방을 내어 준거라고 한다. 순례길에는 많은 자원봉사자가 있는데 대부분 본인이 순례길을 걷고 난 후 다음에 걷는 순례자를 위하여 봉사하는 모습이 가슴 찡하도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여기도 한국인 순례자가 많다. 저녁 메뉴는 순례자 메뉴로 호텔에도 알베르게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밖에는 비가 내려 나갈 수 없어 침대에 드러누웠는데 옆 침대 젊은 서양 남자애가 발바닥에 큰 물집이 잡혀 있다고 엄살을 부린다. 바늘을 꺼네 실을 꿴 다음 물집을 통과시켜 물을 빼고 마데카솔을 발라주고 일회용 밴드를 붙여 주었다.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같이 걷는 서양의 젊은 여자애들은 훌렁훌렁 벗는 통에 눈 둘 때가 없다. 말만 한 여자애가 비가 오니 바지가 젖었다고 훌러덩 벗어 버리고 꽃무늬 팬티만 입고 2층 침대로 기어 올라가는 모습은 볼상 사납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동양인들만 민망해한다. 그게 문화의 차이인 듯하다.


녹색 밀밭 사잇길로 걷는 순례길 자체가 행복한 순간이다.

한잠 자고 시장끼를 느껴 수용인원이 많아 저녁 식당이 붐빌 것 같아 30분 전에 식당에 갔는데 미리 와서 기다리는 순례자가 많다. 순례길의 생활은 점점 단순해진다. 걷고 먹고 자는 본능적인 일에 충실하면 불만이 없다. 여기는 주방이 있긴 한데 간단한 스낵식만 할 수 있는 주방이라 모두 식당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Wi-fi가 되는 숙소인데 사용자가 너무 많아 잘 작동하지 않는다. 내일은 산길 12km를 넘어야 한다. 피레네 산맥을 넘은 후 처음 만나는 산길이다. 여기서 그간 기록을 메모해두었던 노트를 두고 왔다. 2층 침대에 자면서 옆이 물품보관 케비넷 위에 올려 두고 새벽에 나오면서 깜박한 것이다.

순례길에 접어들면 잃어버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빨랫줄에 널어놓고 깜박하여 두고 온 수건, 양발, 옷은 기본이고 충전한다고 꽂아둔 휴대폰 받데리, 카메라 받데리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손에서 떨어진 물건은 남의 것이란 말이 새삼 다가오는 말이다. 이놈의 건망증은 나이 탓인가? 암튼 조심해야겠다. 내일 아침에는 비나 개였으면 하는 소박한 소망을 해본다. 비가 내려도 순례길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좀 편히 걷고자 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