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길
영월 두 달 살기의 아침인사는 텃밭이다. 상추와 고추, 열무와 무, 배추는 싱그럽게 하룻밤 사이에도 쑥쑥 자란다. 상추 한 움큼, 고추 두어 개 열무 겉절이가 아침 식탁에 올라오는 참살이다. 아내가 영월로 내려가는 짐을 쌀 때 딸에게 "가서 재미없으면 바로 올라올게." 하고 영월로 내려갔다.
예밀리의 아침 풍경은 옥동천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자욱이 내려 깔리는 한 폭의 수채화와 마주 한다. 아침마다 예밀리 포도밭 끝에 있는 예밀 와이너리를 돌아오는 10km를 달리고 아내는 매일 옥동천 뚝방길 5km를 걷고 뛰고 하더니 두 달 만에 다리에 알통이 생겼다. 집에 가면 여기가 많이 그리울 거라 한다. 백화점 단골인 아내가 변했다. 포도밭, 콩밭, 사과밭 일손 돕기로 시골살이를 배웠고 옥동천의 맑은 물에 자란 물고기를 이장님이 잡아 주셔서 매운탕을 끓여 친분도 쌓았다.
뉴턴 관성의 법칙은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정지한 물체는 정지하려 한다. 37년의 직장생활이 끝났는데 일을 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다. 생활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힘든다. 집에서 편히 쉬어도 되지만 몸은 출근시간만 되면 시계를 본다. 그냥 노는 것도 쉽지가 않다. 뭔가 소일거리가 있어야 제대로 사는 것 같고 쉬면 나만 낙오자가 되는 불안함이 밀려온다. 뭘 하긴 해야 하는데 마땅한 꺼리가 없다. 그래서 신청한 은퇴자 공동체 마을 두 달 살이를 신청해 운 좋게 당첨되었다. 귀촌생활은 쉬지 않으며 적당히 일도 할 수 있고 정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공동체 마을에 내려 오자말자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어 상추와 배추 모종을 심고 무와 열무 씨앗을 뿌렸다. 먼저 심어 놓은 고추는 나팔꽃 덩굴에 감겨 있고 잡초 속에 묻혀 있다. 잡초를 깨끗이 뽑아주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흙도 일구어 주었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성을 들인 만큼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다. 시골살이는 소일거리를 끊임없이 만들 수 있고 좋아하는 산행도 하고 둘레길 걷기도 하였다. 비 오는 날에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책도 읽고 글도 써 봤다. 도회지에서 살면서 언제부터 달을 잊고 살았다. 달뜨는 밤이면 그냥 불을 끄고 바라만 보기도 하고 달그림자를 밞으며 걸어도 봤다. 참으로 포근하고 아늑한 기분이었다. 그간 많을걸 잃고 살은 것 같다.
내 손으로 키운 채소는 어린 자식같이 애정이 담겨 있어 내가 키워 내가 먹는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유기농으로 키운 채소는 맛도 있다. 그저 하루하루 쑥쑥 크는 게 바라만 보아도 비타민이 뿜 뿜 솟아난다. 정년이 없는 귀촌 텃밭농사는 허전한 마음을 덜어 주었다.
그간 열심히 사회 구성원으로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탁 내려놓고 자연과 유유자적하고 살아도 좋을 것 같다. 이제 세상의 일들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생활의 자유'를 즐겨도 좋다. 행복은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잖아. 조금 느리게 살아도 되고 욕심 없이 살아도 돼. 그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야." 그걸 영월 두 달 살이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