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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달림 Oct 21. 2020

북한산의 가을 단풍 이야기

북한 산성길을 따라가는 단풍길

한동안 북한산을 잊고 있었다. 단풍 생각을 하다가 지금쯤 북한산을 찾으면 당단풍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배낭 하나 둘러 매고 집을 나섰다. 한동안 영월 두 달 살기를 하느라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았더니 방향이 헷갈려 반대방향으로 가는 승강장이다. 대략 난감하다. 이럴 때 추가로 내는 지하철 기본요금이 아까워 다시 승강장으로 올라가니 반대편 승강장으로 가는 통로가 있다. 이런 통로가 없는 정거장이 더 많은데 다행이다.


가양역에 승차하여 마곡나루 역에서 환승하고 디지털 미디어 역에서 다시 환승, 불광역에서 환승하여 구파발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입구에 내렸다. 서울에 산지 40년이 넘어도 인터넷으로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서울의 복잡한 도로망이다.


단풍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들면서 천천히 내려온다. 아직 산 바닥까지는 내려오지 않았다. 고운 단풍을 만나려면 능선 쪽 보다 계곡 쪽 단풍이 더 곱다. 북한산성은 12개의 산성 문이 있고 그 가운데 중성문이 있다.


대서문을 지나 중성문에 오르니 붉은 당단풍이 반겨 준다. 능선의 단풍보다 계곡의 단풍이 색이 선명하고 또렷한 색을 띠고 있다. 북한산성은 백제가 위례에 도읍을 정했을 때 수도 방어용으로 개루왕 때 성을 처음 쌓았고 지금의 형태는 조선 숙종 때 한양 방어용으로 축조한 성이다.


어제가 일요일이라 많은 산객이 다녀간 후라 월요일의 북한산은 조용하다. 산은 모름지기 분잡스러울 때 보다 고즈넉할 때 찾는 게 좋다.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들은 휴일을 피해서 산행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대남문으로 가는 길은 빨강, 노랑으로 단풍 터널을 이루고 있다.


대남문부터 산성을 따라 백운대까지 가는 길을 잡았다. 정릉 방면에서 올라오는 대성문을 지나 보국문에 이르니 외국인이 홀로 산을 찾았다. 'Hi"하니 "안녕하세요"한다. 서울에 산지 꽤 되는 것 같다. 한국의 가을이 아름답고 단풍이 곱다고 한다. 세계 여러 곳을 다녀 봐도 북한산 단풍은 세계 어디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가을산이다.


수유리 쪽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대동문 앞의 너른 공터는 국공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앉지 못하게 테이프로 죄다 막아 놓았다. 코로나 19로 여럿이 산을 찾는 것도 피해야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여기부터는 당단풍 나무가 많아 더욱 곱게 물이 든 구간이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그냥 걸어도 절로 기분이 좋은 가을날이다. 이런 날 산을 찾은 건 행운이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단풍나무 아래에서 도시락은 드시고 계신다. 멀리서 보아도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뭐 잘 사는 게 별건가 사랑하는 사람과 다정히 담소하며 먹는 도시락이 가장 맛있는 최고의 점심이 아닐까.


동장대를 지나면 용암문이다. 한때는 바윗길인 만경대 릿지로 다니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모험은 삼가하기로 했다. 바윗길에서 내려다보는 아파트촌이 그리도 작게 보여 마치 벌집을 연상하게 한다. 그 아파트가 소시민이 30년 급여를 모아야 살 수 있는 가격이란 말에 씁쓸해진다.


노적봉 옆을 지나면 바로 올려다 보이는 바위봉이 백운대다. 오늘의 최고봉인 셈이다. 백운봉 암문에서 계단과 쇠줄로 오르는 길이다. 예전에는 쇠줄에 의지해 올랐을 때는 병목현상이 심했다. 가파른 화강암 위의 계단을 오르는데도 숨이 찬다. 바위봉을 오르면 정상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곳이 백운대다.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하여 삼각산으로 부르기도 한. 백운대 정상 바위에는 3.1 운동 암각문이 있다. '경천애인'이란 글귀와 함께 3.1 운동을 후대에 널리 알리고자 한 것이다.


한때는 건너편 바위봉인 인수봉을 1년에 세번 정도는 올랐는데 그것도 추억에 묻어 두었다. 연중 가장 더운 중복을 전후로 해서 야바위라 하여 한밤중에 정상에 올라 서울의 무더위를 식히고 아침에 내려오곤 했다.


내려가는 길은 우이동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백운대를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코스라 많이 이용하는 길이다. 그 길에는 백운산장이 자리하고 있다. 1924년 오두막으로 시작하여 3대에 걸쳐 95년 지켜온 산악인의 쉼터가 사라져 버린 게 많이 서운하다. 이곳 산장의 현판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전설적 마라토너 손기정 옹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는 한국 1호 산장이었다.


지금 단풍의 절정은 백운산장 부근을 지나고 있다. 백운대를 오르는 가장 된비알 오르는 고개를 깔딱고개라 부른다. 깔딱깔딱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어 느낌을 살려 붙여진 이름이다. 이 길을 거꾸로 내려가는 것은 참 편하다. 인생사도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고 힘듬이 있으면 편안함이 있다. 그래서 인생은 고가 있으면 락이 오고 락이 오면 고가 오는 고락의 연속이다.


화창한 가을날 배낭에 도시락 하나 챙겨 뒷산에 올라도 좋겠다. 아내와 함께해도 좋고 친구와 함께라도 좋겠다. 아니면 혼자라도 좋다. 쪽빛 하늘과 붉고 노란 단풍잎이 가을의 화선지를 채색했다.  그 자연을 함께하고 있노라면 "나는 살아 있다. 그러함에 행복하다."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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