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시간이 멈춘 마을
트레커의 아침은 배낭을 꾸리면서 시작한다. 창밖의 웅성거림에 창밖을 내다보니 동녘이 붉어 온다. 반단티 언덕 위의 롯지라 문만 열고 나가면 일출을 만날 수 있다. 게으른 트레커는 롯지의 창문을 통해 일출을 보기도 한다. 일출 풍경은 푼힐에서 보는 것 못지않게 훌륭하다. 물고기 꼬리를 닮은 마차푸차레 옆으로 뜨는 해돋이가 장엄하다. 옆 롯지에서도 그 풍경을 카메라에 저장해 두려고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간밤 롯지에서는 말레시아와 중국인 단체 트레커들이 지나칠 정도로 소란스럽다. 랜턴을 켜고 책을 읽을 때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다. 방음장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롯지의 합판 벽도 문제지만 이런 곳에서는 조용히 해 주는 게 예의다. 아침 식사는 네팔의 정식인 달반을 주문했다. 달은 밥이고 받은 국이다. 거기에 까다리는 반찬으로 감자 복음과 야채가 있다. 이렇게 먹고 매일 걸으면 뱃살이 많이 빠질 것 같다.
다음 마을인 츄일레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다. 시작할 때는 다리가 가볍다. 히말라야에 들면서 여기는 문명과 이별해야 할 것들이 몇 개 있다. 자동차가 필요 없다. 워낙 험준한 산길이라 자동차가 다닐 길이 없어 두발로 걸어야 한다. 만능 상자이자 바보상자인 텔레비전과는 이별이다. 설사 텔레비전을 만난다고 해도 볼 게 없다. 길에서는 휴대폰이 되지 않는다. 괜히 헛헛해지는 히말라야다. 롯지에 들리면 간혹 wi-fi가 되는 곳이 있긴 하다. 그것도 이용하려면 별도 비용을 지불하여야 하고 속도가 많이 느려 인내력이 필요하다. 이곳에서는 문명의 이기를 잊고 사는 수행의 시간이 된다.
츄일레는 롯지가 한 곳뿐이다. 산속에 좀체 넓은 땅을 가진 곳을 찾기 어려운데 넓은 푸른 잔디밭을 가진 전망 좋은 곳이다. 건너편 산기슭에는 계단식 밭이 층층이 수십층이 되는 밭이 그들의 고달픈 삶을 엿본다. 갈치 꼬리 같이 가는 넓이의 밭은 높이가 한 키도 넘어 그 밭을 일굴 때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싶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서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구르중으로 갈 수 있다. 몇 집이 살고 있지 않는 곳이지만 구르중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주변 산속 마을의 아이들이 등교를 한다. 멀리서 오는 아이들이 있어 등교시간이 10시다. 등교를 앞두고 밥상을 펴 놓고 속제를 한다. 어디서나 숙제는 아이들에게 피곤한 짐인가 보다. 어떤 아이는 책을 펴놓고 예습을 하는지 소리를 내어 책을 읽기도 한다. 그런 모습에 시간여행을 하여 예전의 나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시간이 되곤 한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는 "시간은 세 가지 걸음으로 온다고 하였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라고 하였지만 이곳의 시간 흐름은 반대로 가고 있다. 과거는 천천히 다가오고 현재는 멈춘 듯하고 미래는 정지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는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건 아닐까.
길에서 한국에서 온 70대 트레커를 만났다. Abc트레킹을 다 하려고 하는데 다리가 시원치 않아 하산을 해야겠다고 하신다. "사모님과 같이 오시지 그랬어요."
"같이 여행을 하다 보면 사소한 일로 다툼이 심해 그냥 맘 편히 혼자 왔지."
가까운 거리는 걷는 게 좋다고 하면, 택시비 얼마 하는데 궁상떨고 걷느냐고 하고, 숙소도 몇 푼 한다고 좋은 호텔 들어가지 이런 사구려 호텔을 들어 가느냐는 등 사소한 일로 다툼이 되니 이제 그게 싫다고 하신다.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부부라도 내 주장이 강하다 보면 상대의 좋은 점은 보지 못하고 나쁜 점만 먼저 보게 된다. 불편하다고 느끼니 고집을 부리게 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인간의 좌뇌는 본시 부정적인 면이 강한 게 설계가 되어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자유롭고자 떠나온 여행에 한 달을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많은 배려를 필요로 한다. 함께하는 여행은 외로움은 덜 수 있지만 함께 함으로 감수해야 할 것도 많다. 외로움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이 하는 여행에서 자유롭게 해도 되고 외롭지 않게 해주는 길동무는 그리 많지 않다. 인생 또한 여행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나면 편하면 된다는 생각은 상대에게 괴로움을 준다.
작은 마을을 지나다 보면 꼬마애들이 "Candy! Candy! "한다. 학교 가는 길에 책을 읽으며 가는 상급생이 있는가 하면 징징 울면서 언니의 손을 잡고 가는 동생도 있다. 여긴 산아제한이 없고 조기결혼으로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다. 구루중에서 촘롱으로 가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으로 들판에 밀이 많이 자랐다. 11시경 촘롱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김치찌개가 500Rs다. 네팔 음식보다 비싼 게 한식이다. 여기는 한국분들이 많이 쉬어 가는 곳이다. 한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숙은 3,000Rs인데 모녀팀이 주문을 한다. 네팔 물가를 생각하면 비싼 가격이다. Abc 트레킹을 다녀오는 길이라 수고한 자신들에게 상을 주는 거란다. 네팔 닭은 그냥 놔서 키운 닭이라 육질이 쫄깃쫄깃한 게 시골에서 사위가 오면 잡아 준다는 장모님 표 씨암탉 맛이 난다.
오늘의 트레킹 종점인 아랫 시누와가 저만치 보인다. 계단식 밭이 많은 이곳은 척박한 땅이다. 아랫 시누와 가는 길은 고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높인다. 자연의 지형을 따라 길을 만들었다. 아랫 시누와 까지는 다시 계단을 오르는 길로 이어진다. 오후 1시 반에 오늘 트레킹을 마쳤다. 시간이 여유가 있어 락시를 마셔보기로 했다. 이곳의 막걸리인 창을 증류하면 네팔식 증류주인 '락시'가 된다. 그걸 맛보기로 하였다. 안주로는 피자로 주문했는데 화덕에서 굽는 게 아니고 프라이팬에서 굽는 게 마치 빈대떡 같다. 락시는 그리 독하진 않지만 가정에서 빚다 보니 잡냄새가 조금 있다. 그래도 술이라고 마시고 나니 알딸딸한 게 취기가 오른다.
오후 3시가 되니 또 비가 내린다. 트레킹이 끝난 때라 느긋하게 내리는 비를 감상할 수 있지만 지금 롯지로 들어오는 트레커들은 우의를 입어도 옷이 젖었다. 이곳의 날씨는 아침에는 맑고 오후로 가면서 구름이 끼고 한차례 비가 내린다. 오후 3시 전에 트레킹을 마치고 롯지에 드는 게 좋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일찍 시작해서 일찍 트레킹을 끝내는 게 답이다. 오후 3시경에 되니 방이 모두 찼다. 느지막이 도착한 한국인 아가씨는 윗 시누와에 전화하고 올라갔고 그 후에도 서양인이 올라왔는데 방이 없어 윗 시누와로 올라갔다. 비를 맞고 지금까지 걷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안타깝다. 너무 늦게 까지 트레킹을 하지 말고 15시 전에 끝내고 롯지를 구하는 게 좋다.
워낙 오지라 롯지에는 마땅한 메뉴가 없어 때가 되면 늘 고민스럽다. 저녁엔 스파게티로 식사를 하고 숙소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밖에서 북소리가 들린다. 마을 민속공연을 하고 있다. 곡조는 단조로운데 그래도 흥겹다. 조금 늦은 시간까지 마을 사람들과 트레커들이 함께하는 춤사위가 벌어진 하룻밤이다. 인근 롯지의 트레커들이 모두 모여 즐긴 공연이다. 아랫 시누와 밤은 깜깜한 밤하늘에 별이 솟아지듯 내린다. 히말라야의 밤은 청량하면서 싸늘함이 느껴진다. 고산의 맛을 제대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