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답은 명쾌했고 명확했다.
권선징악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며, 정직한 사람이 보상받는 질서 정연한 모습까지.
하지만 세상을 나와 보니,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정의보다는 효율이, 과정보다는 결과가 우선시 되며 차갑고 냉철했다.
현실과 이상 속 괴리를 깨달으며 어느 덧 회의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한 나를 마주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나까지 그 차가운 현실의 일부가 되어 냉소의 온도를 높일 필요가 있을까?
실력이라는 '뼈대'와 태도라는 '근육'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단골 질문처럼 등장하는 난제가 있다.
'일은 못하지만 태도가 좋은 동료'와 '일은 잘하지만 태도가 엉망인 동료' 중 누구와 일하고 싶은가 하는 문제이다.
사실 이 질문은 애초에 성립하기 어려운 이분법이다. 일을 못 한다는 건 동료들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민폐가 될 수 있고, 태도가 나쁘다는 건 조직의 흐름 자체를 막아버리는 '보이지 않는 결격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태도가 불손하면 협력은 삐걱거리고, 잘 풀릴 일도 마찰열에 타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결국 둘 다 '일을 못하는 것'이다. 하나는 기술적으로, 하나는 관계적으로.
실력이 일을 성립시키는 '뼈대'라면, 태도는 그 일을 부드럽게 움직이게 하는 '근육'이다.
"일만 잘하면 됐지, 태도가 뭐가 중요해?"라는 오만은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킬 것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성과는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할테니까.
최근 일하며 겪은 한 클라이언트와의 업무는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만들었는데, 예전에는 모르는 게 있으면 인터넷을 검색했고, 요즘은 AI에게 질문을 던져 답을 얻곤 한다. 하지만 그분은 스스로 찾아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잘 모르니 그냥 알아서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냥 자기가 원하는대로 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지,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어떤 것이 필요한 지는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또한 이미 공유한 자료를 다시 찾아보는 수고 대신 "그냥 다시 보내달라"고 쉽게 말하고, 조금만 고민하면 알 수 있는 기본 정보조차 당당하게 재차 요구했다.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당혹감을 넘어선 '모멸감'이었다. 상대를 전문성을 가진 파트너가 아니라, AI보다 더 편하게 부릴 수 있는 하청업체, 혹은 언제든 클릭 한 번으로 정보를 내놓는 '인간 검색창'으로 치부하는 오만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해 AI가 무엇이든 대답해 주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사람 사이의 협업은 데이터의 교환 그 이상이다. 상대에게 자료를 다시 요청하거나 질문을 던지기 전, 내가 보낸 메일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노력은 비효율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의 '시간'과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돈을 지불했으니 이 정도는 시켜도 된다"는 식의 갑을 논리는 결국 관계를 파괴할 것이다. 을이 정해진 업무 외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오직 주어진 일만 기계적으로 처리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상대를 기계처럼 대하는 것이다. 사람이 기계와 다른 점은 마음이 움직일 때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인데, 그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무례한 편의주의'가 결국 비즈니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셈이다.
우리는 이제 사람보다 AI나 기계와 경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효율과 속도 면에서 우리는 결코 기계를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부상조'가 절실하다.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 그것은 바로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배려하며 함께 나아가는 온기다. 냉소적인 세상에 휩쓸려 나까지 날카로워지기보다는, 나부터 조금 더 따뜻한 태도로 세상을 대하고 싶다.
올 한 해는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도구로 보지 않고 존재로 존중하기를 소망한다.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은 채,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좋은 태도'를 잃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