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배려

by 바람

나는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불러 일으킨다는 적막도 나는 때때로 평안함으로 느낀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침묵을 무관심이라 오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모님이 방목하여 자란 탓이 아니냐는 핀잔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침묵은 방치가 아닌,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엄격하고도 고단한 교육의 산물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내게 "이래라", "저래라" 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해 보라"는 짧은 한마디를 던지셨을 뿐이다. 당시의 내게 그 말은 열 마디 꾸중보다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부모님이 가이드를 주지 않는 ‘방목’의 환경은, 역설적으로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내면과 대화하게 만들었다. 외부의 지시가 없었기에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했고, 그 선택의 결과 또한 오롯이 내 몫임을 깨달으며 말과 행동의 무게를 익혔다. 사실 당시에는 그 말이 짜증스러웠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친구들과 놀고 싶고,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포기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해야 할 일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도 행하기가 어려워 갈등하던 나를 부모님은 그저 묵묵히 지켜보셨다. 지적받지 않아도 이미 스스로 알고 있는 내면의 모순들, 그 괴리감 속에서 나는 침묵이 지닌 가장 강력한 훈육의 힘을 배웠다.


이런 경험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부모님이 나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믿고 기다려 주셨듯, 나 또한 타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게 된 것이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정답이 다를 수 있음에도 "내 말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좁은 시각이다. 진심 어린 조언일지라도 상대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뺏는다면 그것은 간섭이 될 뿐이다. 최근 부모님의 체벌 속에 자라 관계가 틀어진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확신했다. 강압적인 훈계는 겉모습을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단단한 마음을 길러주지는 못한다.


물론, 타인이 건네는 조언이 모두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용기 내어 건넨 조언이라면, 설령 거북할지라도 나를 돌아보는 귀한 계기로 삼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은 때로 내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비춰주기 때문이다.

다만, 조언을 건네는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신중함과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 현인들조차 조언을 경계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지시가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곁에서 믿고 기다려 주는 신뢰에서 시작된다.


나는 오늘도 말을 아낀다. 나의 침묵은 단순히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과 타인이 각자의 답을 찾고 그 책임을 기꺼이 짊어질 수 있도록 그만의 영역을 존중하는 나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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