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 번째 이름

by 김현주

복직 시기를 확정짓고 나서 마주한 가장 큰 벽은 아이의 ‘등·하원’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오직 우리 부부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겠노라 호기롭게 다짐했었다. 엄마는 내가 대학생이 된 무렵부터 ‘너희 자식까지 키우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일찍 결혼해서 평생을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해온 엄마가 노년에는 오롯이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황혼 육아’라는 말이 뉴스에 오르내릴 때마다, 나는 내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내가 다시 출근하면 아이는 아침 8시에 등원해 저녁 5시 30분이 넘어서야 하원해야 했다. 아이가 다니는 곳은 아파트 내의 작은 어린이집이었다. 그곳엔 그토록 일찍 등원하는 아이도, 늦게까지 남아 있는 아이도 없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내 아이가 그 작은 교실에서 맨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엄마가 등·하원을 도와준다면 아이는 9시에 등원해서 4시 30분에 하원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아이를 낳고 내가 한 말을 하나도 지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연가를 쓰기 힘든 직종이었지만, 남편보다 출퇴근 시간에는 여유가 있었다. 남편은 출퇴근에만 왕복 2시간 이상을 썼다. 반면 나는 출퇴근 시간을 다 합쳐도 50분이 채 되지 않았고, 5시에 퇴근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남편의 회사보다 ‘칼퇴’에 훨씬 너그러운 분위기였다. 복직하고 엄마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육아의 실질적인 무게추는 내 쪽으로 기울 것이 분명했다. 아이를 낳기 전엔 당연하게 여겼던 내 직장의 조건들이, 복직을 앞두고는 새삼 눈물겹게 고마웠다.


온전히 부모의 힘으로만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 중 한쪽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일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 아니냐’라는 말로 찌른다면 더 대꾸할 말은 없었다. 내가 복직을 선택한 것이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계속 일을 하지 않는 생활이 계속된다면, 매달 나가는 집 대출금과 고정 지출 비용까지 넉넉히 감당해 내기는 힘들었다. 어쨌든 언젠가는 맞벌이를 해야 하고,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긴 것을 ‘욕심’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싶기도 했다. 다만 엄마로 사는 삶에 치여 복직을 일찍 결정한 것이 아이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복직 시기를 정하고 나의 우울감은 조금씩 해소되었지만, 그 자리엔 훨씬 더 현실적이고 뾰족한 고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나는 출퇴근에 얽매이지 않는 직업을 갈망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노년까지 내 능력으로 정당한 대가를 벌 수 있는 일. 하지만 20대 중반부터 조직 안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특출난 능력이랄게 없었다. 나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관성대로 일을 처리해 온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었다. 출퇴근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아이 있는 엄마’로 일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잘하는 게 없다면 좋아하는 거라도 해보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고여있던 문장을 하나둘 꺼내 놓고 생각했던 것들을 적었다. 학창 시절, 일본 소설을 읽으며 번역가를 꿈꾸었던 때가 떠올랐다. 대학생 때, 현대소설 수업을 듣고, 젊은 작가상 수상 집을 읽으며 소설을 써보고 싶었던 때가, 직장인이 되어 에세이집을 읽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문장을 쓰고 싶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 가라앉아 있던 꿈이 글을 쓰며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작가가 된다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갇히지 않고도 내가 나로서, 동시에 엄마로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모니터의 커서가 깜빡일 때마다 잊고 지냈던 설렘도 함께 깜빡였다.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나이자, 엄마이자, 작가가 되기를 꿈꾸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복직이 10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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