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골 샌님 Nov 01. 2021

바닥을 친 후

표적 항암 치료를 시작하다

  모든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고 마음이 바닥을 쳤다.  두어 달 동안 마음을 다잡는다 했지만 그래도 30%라는 암 전이가 아닐 확률의 끈을 놓지 않았던 모양이다. 목뼈와 쇄골 시작 부분 정확히는 경추 1번 뼈 뒤쪽으로 암이 자리 잡고 자라고 있다. 혈액종양내과 진료를 지난 화요일 받고 다시 항암치료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입원을 해서 표적 항암 치료를 위한 검사를 받고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의사가 다행인 점은 암의 크기가 크지 않아 다른 신경세포에 영향을 덜 준다는 점이고 불행인 점은 위치가 경추 1번 뒤쪽이라 수술이 불가능해 암을 제거하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의사가 내게 고통의 정도를 물었다. 뼈에 암이 생기면 굉장히 고통이 심하기 때문에 고통의 정도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고 했다. 나는 통증은 있으나 림프 부종과 오십견 때문인 줄 알았고 욱신거리고 뻐근하기도 하고 간혹 타이레놀을 먹어야 하지만 참을만하다고 답했다.  의사는 그럼 자신이 계획한 대로 표적 항암치료를 바로 시작하자고 했다.  설명에 따르면 고통이 심하면 방사선 치료부터 시작해 암을 억제하면서 진통제를 투여하는 방법을 쓰는데 이 경우 이후 약물 치료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했다. 내 경우 신약으로 임상을 끝내고 일부 암환자에게 사용하기 시작한 경구용 표적 항암제로 치료를 시작할 것이라 했다.


 의사는 처음 인사를 나누자마자 보호자부터 찾았다.  처음엔 이런 진단과 치료계획을 듣는데 혼자 결정하고 혼자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가  흔하지 않아 잠시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먹는 약이라 병원서 긴 시간 주사를 맞을 필요도 없지만 환자와 보호자가 집에서 관리를 잘해 주어야 한다 했다. 경구라 해도 항암제다 보니 당연히 구역질, 오심, 심장 질환, 간과 폐손상, 간질 등등과 내가 두려워하는 치아손상과 탈모의 부작용에 심한 경우 뇌부종까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곧 의사는 혼자라면 더더욱 경구용 표적치료가 나을 거라며 우선 치료에 필요한  검사를 바로 시작하자며 서둘렀다.  전에 독하게 받은 항암 주사들보다는 신약이다 보니 부작용이 덜하고 내 몸 상태에 따라 사회생활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신약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약의 가장 큰 단점이  약값이 상상을 초월하게 비싸다는 것이다.  보험처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내 경우 수술도 불가하며 이미 다른 항암제를 최대 용량으로 사용하고도 뼈에 암이 생긴 경우이기 때문에 의료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검사는 약의 용량 결정과 내 몸이  견뎌 낼지 여부 , 혹시 머리 쪽으로 암세포가 확장되는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모든 검사를 외래로 진행하기엔 나도 병원도 일정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의사 말대로 외래로 왔다 갔다 하며 몸이 축나는 것도 막고, 최대한 빨리 항암을 시작하기 위해 입원을 했다. 40대 초반의 젊은 의사의 판단과 결정력이 신뢰감을 주었다.  처음 내 병변을 설명하던 사무적이고 쌀쌀하던 태도는  신속한 결정을 위한 행동력에서 나온 듯했고 지난번 항암 이후 치아가 다 내려앉은 상황까지 고려하며 어떻게든 내가 덜 힘든 방향으로 배려하는 게 느껴져 고마웠다. 병실에서도 내게 검사 결과와 치료 상황을 설명하는 걸 본, 옆 병상 환자분이 "예쁘고 똑똑한 사람이네. 의사 잘 만났어"라고 이야기하자 의사 말만 잘 들으면 뼈에 생긴 암도 금방 없애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폐기능 검사, 가슴 엑스레이, 심장 ct, 심전도, 심장 초음파, 머리 mri, 피검사 결과 몸에 마그네슘이 부족한 것 외에 큰 이상은 없어 마그네슘을 수액으로 보충하고 지난 토요일 항암을 시작했다. 항암 약을 퇴원 전 먹고 주의 사항을  들었다 . 항암제에 대한 건강보험공단 심사가 오래 걸려 오전 8시부터 퇴원을 준비했는데 12시가 돼서야 퇴원했다. 걱정하던 암환자 산정특례가 이뤄져 약값 걱정을 덜었으니 그 기다림의 시간이 감사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 몸이 휘청 했다. 확실히 항암제는 독했다.


 다시 항암을 시작한 초기라서 2주에 한 번씩 추적 관찰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두어 달 후 큰 이상이 없으면 한 달에 한 번씩 피검사와 가슴 사진을 찍고 약을 받아 오면 된다. 대신 약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평생 먹어야 한다고 한다. 효과가 좋아 뼈 종양이 사라진다 해도 뼈에는 흔적이 남기 때문에.... 퇴원하며 처방받은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로 페미라 정과  전이 상태에 따라 차등 적용돼 의료보험 급여 논쟁이 치열한 3주 치 약값이  300만 원이 넘는 키스칼리 정을 처방받았다. 검색하여 알아보니 얼마 전 이 약값 문제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올라오며 급여화를 호소한 그 신약인데 항 호르몬제 복용 경험 있거나 월경을 자연 폐경하지 않은 경우 의료 보험 적용이 안되는데 ,사실 유방암의 경우 월경을 항호르몬제 요법을 사용하여 억지로 멈추게 하는 경우도 많고 약도 대부분 에스트로겐 억제제를 사용하여  이 약을 보험처리로 사용할 수 없어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이 약값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내 경우 자궁과 난소를 적출하였기에 보험이 적용된듯하다.  유방암 항암제 타목시펜 때문에 자궁 내막 암이 진행될 조짐이 보여 자궁을 적출하고 억울해했는데 이번엔 그 덕을 보니 이걸 좋다 해야 할지.  인생은 아이러니다.


마음과 몸이 바닥을 쳤으니 이제 다시 기운 내서 치고 올라가면 된다고 내게 위로를 한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치고 올라갈 기력이 없다. 그렇다고 내 인생을 애달프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마음이  바닥을 뚫고 굴착공사를 시작하여 지하층으로 내려가 막장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바닥에 있는 채로 몸과 정신이 충전될 때까지 느긋하게(될까?) 새로운 항암제에 적응해야겠다.

 문득 전경자 시인의 "바닥"이란 시가 생각난다.


             바닥
높         이           없         서            다
    낮         가             어            좋


 비혼 독신  암 환자가 진단과 치료 그리고 암 전이를 극복하며 새로운 일상으로 복귀하눈 과정을  생생하게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산문집 [쿠마이의 무녀 ]가 출판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publish/book/6023


작가의 이전글 낯선 나이 듦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