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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Nov 06. 2021

혼잣말 트레이닝

이불 킥과 욕 할 자유

  요즘 나 스스로도 놀라는 점 중 하나가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나이 드신 분들의 질문에 답뿐이니라 그분들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대화에 어느새 맞장구치며 동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교 기술이 나이와 더불어 늘어난 것인지 앞으로도 생면부지 남이 될 누군가와 나는 왜 그리 열심히 대화를 하고 있는지 목적지에 다다라 내릴 준비를 할 때쯤이 혼자 피식 웃으며 나 자신을 신기해한다. 게다가 그런 생각들 끝은  “어휴, 나도 주책이지”라는 혼잣말이 툭 튀어나오곤 한다.

 얼마 전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며 “에구 힘들다!”라고 소리 내어 툭 내뱉었을 때 앞서 걸어가던 교복 입은 여학생이 멈칫 뒤돌아 나를 빤히 주시했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혼잣말에 누군가 반응을 보인다면 그처럼 머쓱한 일이 없다. 게다가 이런 무안한 상황을 어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심함에 “이 길 오르기가 숨이 차서......."라고 한마디를 더 보태며 생면 부지의 사람에게 상황이라도 설명하려 든다면 행인들은 이상한 아줌마라며 줄행랑을 치거나 , 심지어는 정신 나간 여자란 소리까지 들을지 모르겠다.  

 

혼잣말이란 말할 상대 없이 혼자 존재하거나,  상대방이 있다고 하더라도 듣는 이의 반응을 전제하고 있지 않는 내면의 표출이지만, 그런데 혼잣말의 빈도가 점점 잦아지다 보니 남에게 들키는 머쓱한 상황도 많아져, 이러는 나 자신 대해 자괴감이 들어 또 나 자신을 이리저리 논평하는 혼잣말을 또 하는 것이다.  돌아가신 지 이십오 년이 넘은 "엄마"를 혼자 끊임없이 찾고,  “엄마, 미안해”라는 말을 아무도 없는 방에서 중얼거린다. 음식을 만들다가 귀찮아서  “젠장"이라고 큰소리를 친다거나, 불쑥 나의 과거 행적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를 때 “내가 왜 그랬을까? 에휴!”라고 후회를 담뿍 담아 머리를 쥐어박고 이불 킥하며 혼자 창피함에 치를 떨며 말하곤 한다. 그리고 병뚜껑이 안 열리는 사소한 일에 잠재의식 속에만 있던 욕설을 내뱉기도 한다.  

 어떤 학자들은 유아기 혼잣말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사고력의 초석으로 장려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혼잣말은 내면화되고 실수를 범하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경우처럼 부정적인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큰 소리로 표출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치 떼쓰는 어린애처럼 ’ 나는 외톨이야‘라고 밑도 끝도 없이 외치듯 혼잣말은 의사소통의 전제 하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내어 발화를 하였지만 자기 지향적인 말이다. 그래서  혼잣말이 대개 부정적이라 자존감을 잃게 하고 자기 불신으로 치닫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갈등과 고뇌의 상황에서 자기부정이 아닌 자기 확신의  혼잣말로 인류의 사고력 체계를 바꾼 예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1663년 지동설을 주장한 죄로 종교재판에 회부된 되어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지동설 주장은 잘못이라고 고해를 한 후  되돌아 중얼거렸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Eppur si muove)”는 독백일 것이다. 정말 그는 그 무시무시한 자리에서 속삭이듯 혼잣말했다 해도 감히 입 밖에 낼 수 있었나 하는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 진실공방을 보면 아마도 갈릴레오는 다시 혼잣말을 할 것이다. “에이고 이 사람들아! 지구는 지금도 태양을 돌고 있는데 그렇게 한가로울 시간이 없을 텐데”라며 혀를 끌끌 찰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부정적 혼잣말들은 결국 우리의 부모든 학교 선생님이든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평가가 내면에 자리 잡고, 고3 시절 내내 느꼈던 압박처럼 여전히 더 잘하지 못하는 나를 다그치는데서 오는 불안에 떠는 자아가 보내는 구조요청일 수 있다. 그러니 상실감에 빠진 자아의 구출 작전은 표출된 부정적인 혼잣말을 허공에 퍼트리지 말고, “다행이다! 내가 이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어서…….”라는 긍정의 혼잣말로 화답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그리고 버릇처럼 나를 논평하는 생각들을 중단하여 속박된 자존감을 풀어주는 것, 그래서 억지로 멈춰졌던 시간과 더불어 자아가 나아가게 하는 것, 이것이 나의 행복의 시작은 아닐까. ‘참을 인’을 외치며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교육받았듯,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그냥 전해지는 말이 아니듯 부정의 혼잣말 같은 쭉정이가 아닌 긍정의 건강한 인생 씨앗을 뿌린다면 우리가 뿌듯한 행복감에 인생이 좀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하지만 또 크게 혼잣말을 읊조려 본다.

"혼자라서 욕하고 혼자서 이불 킥하는 게 뭐가 어때서."

T.S. 엘리엇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옳고 그른 별을 평가하거나 별자리가 잘 배열되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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