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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Nov 09. 2021

貧女音(빈녀음)

1인 가구도 가정 

  "이 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허난설헌의 한시 빈녀음의 화자인 노처녀는 길쌈 바느질로 남의 시집갈 옷을 만들어 부모부양하며 사는독립적이고 자존감있는 여성이지만 정작 자신의 옷은 못 만드는 신세를 한탄한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된 자신을 새우잠을 잔다는 말로 애달피 여기는 비유가 지금도 상당히 감성을 흔든다. 다만 나는 새우잠이라도 혼자자는 걸 좋아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이제, 결혼이란 단어가 낯설어지고 혼자 사는데 익숙해졌고 나만의 세계가 구축되어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더불어 잘 사는 사람이 혼자서도 잘 산다는데 여전히 어린 마음으로 혼자 아등바등 사느라 주변을 돌볼 심적 물적 마음의 여유를 잃고 살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시대를 막론하고 노처녀 노총각의 문제는 골칫거리였던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혼인을 통해 합법적으로 후손을 보는 것이 대를 잇는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 성립의 근간인 국민을 만들어내는 수단이니까.  세종 대왕은  노처녀·노총각 구휼 법이 있음에도 30~40이 되도록 혼인하지 못하는 남녀가 생기자 "가난한 남녀가 때가 지나도록 혼인하지 못한 자가 있다. 서울에서는 한성부(서울시)가, 지방에서는 감사(도지사)가 힘을 다해서 방문하라. 그래서 그들의 사촌(四寸) 이상의 친척들이 혼수를 갖추어 때를 잃지 않도록 하라. 이 법에 어기는 자는 죄를 주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성종 임금은 아예 ‘전국 노총각·노처녀들의 수를 죄다 파악해서 혼수품까지 주어 혼인시킬 것’을 명하고 심지어 연산군도 노총각/처녀의 혼인에 힘을 쏟았다. 성종, 연산군에 이어 중종도 중종 임금도 명령을 내려 “가난 때문에 시집 못 간 노처녀들에게 관이 혼수를 보조하여 시집가도록 하게 하라”라고 했다. 시대를 거슬러 보면 혼인 못하는 원인이 대부분에 가난에 기인한다. 나라가 나서 혼인을 시킨다니 좋은 복지 정책이었다 생각이 들면서도 씁쓸한 생각이 드는 건 결혼 안 한/못한 남녀는 구제되어야할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혼인비용 말고 차라리 그 돈을 노총각 처녀들이 먹고살 기반 마련에 힘쓰도록 도왔다면 자신들이 알아서 결혼하지 않았을까. 물론 유교사상이 투철한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지만.......

 지금은 가정보다 일에 더 중요성을 부여하거나 인식의 변화로 자발적 독신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비자발적 독신이 늘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여전히 남녀 역할 선긋기가 존재하며, 자녀 교육에 감당해야 할 부담, 주택문제 등 한 개인이 희생하고 포기해야 할 경제 사회적 부담이 결혼을 회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혼중개 업체들이 미혼 남녀를 등급 화하는 걸 보면 애당초 가입조차 안 되는 내 경우는 사회에서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장려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식을 넷을 키우는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미래에 세금 낼 국민을 양육하고 있으니 내가 진정한 애국자 아니냐.” 이리 보면, 만혼화, 비혼화, 고령화로 인한 독신가구의 증가가 국가 성장잠재력에 큰 부담이 될 요소라고 걱정하는 세상에 내가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반발심도 든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력과 세상의 편견이 노총각 노처녀를 루저로 만들었다. 허난설헌이 묘사한 15세기의 노처녀는 가족 부양하느라 베를 짜고 바느질을 하며 새우잠을 청하는 신세고, 20세기 초의 노처녀는 남성 중심 사회에 도전장을 내민 개혁과 진보의 아이콘인 신여성었음에도 뻔뻔하고 음흉한 히스테리 발작증의 B사감으로 묘사되었다. 21세기 초에는 골드미스라는 능력 있는 노처녀들이 등장하지만 이 또한 일부 금 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일뿐, 대다수는 녹슨 스테인리스를 갈고닦아 광택 내며 살아가는 처녀만 되어도 그나마 잘 나가는 편이다. 

   허난설헌은 가난한 노처녀의 신세한탄을 통해 편견으로 기울어진 세상을 비웃는다.  “얼굴 맵씨야 어찌 남에게 떨어지랴. 바느질에 길쌈 솜씨 모두 좋건만, 가난한 집안에 자라난 탓에, 중매 할미 모두 나를 몰라준다오.”라고 스스로를 애달파하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결혼은 경제력이 문제이다. 그런데 반대로 경제력이 담보되면 누구나 독립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동전 한 닢 없이, 사회보장 없는 냉정한 사회에서, 혼자서도 잘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독립적 삶의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까? 


 "저러니 여태 결혼을 못했지"라는 흠집 찾기 전에, 아줌마들이 애 키우느라 고생하며 미래사회에 공헌하는 동안 너희는 뭐했냐고 묻기 전에, 왜?라고 생각 한번 해보라.   만혼화, 비혼화, 고령화로 인한 독신가구의 증가를 국가 성장잠재력에 큰 부담이 될 요소라고 수치로만 걱정하기 전에, 국가에서는 새로운 방법으로 인적자본을 확충하여 성장 동력을 재구축하는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 이미 비혼들이 치르는 싱글세는 상당하다. 유난히 독신가구를 배려하지 않는 문화는 슈퍼마켓에 가보면 뼈저리게 느낀다. 무엇이든 대용량, 제대로 된 밥 한번 해 먹으려 장을 보면  고기든 야채든 기본 매입 용량에 질린다. 그나마 손질 채소나 생선이 소량이긴 하지만 대개 안 팔리는 것 다듬어 내놓은 것 같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된장국 한번 끓여먹으려 산 채소들은 냉장고에서 시들해지며 결국 음식물쓰레기가 된다.  어떤 이는 다듬어서 냉동실에 보관하라는데 음식을 냉동으로 보관하는 것 자처를 자체를 싫어하고 그 채소 다듬고 치우다 보면 두세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샴푸도 하나 사면 혼자서 일 년을 쓸 양이다. 소량이 비싸서 라고 하지만 버리고 질려서 낭비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다수를 따르되 소수를 배려 아니 존중되어야 한다. 


  왜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도 못했는지/안 했는지?  비혼들도 모른다.  공부하느라, 가족 부양하느라, 열심히 아등거리고 살뿐이다.  생활비도 벌기 힘든데 사회는 4인 3인 가족 기준으로 돌아간다.  이제 사회적 대세가 돼가는 1인 가구, 비정형 가족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일인임을 알리는 일에 앞장 서보고자 한다. 


豈是乏容色 개시핍용색-인물 맵시도 남에 비해 그리 빠지지 않고

工鍼復工織 공침복공직-바느질에 길쌈 솜씨 모두 좋거늘

少少長寒門 소소장한문-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자란 까닭에

良媒不相識 양매불상식-좋은 중매자리 나서지 않네

不帶寒餓色 부대한아색-춥고 굶주려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唯有父母憐 유유부모련-오직 내 부모만은 나를 가엾다 생각하시지만

 四隣何會識 사린하회식-이웃의 남들이야 나를 어찌 알꼬.

手把金剪刀 수파금전도: 가위로 싹둑싹둑 옷 마르노라면

夜寒十指直 야한십직: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 불리네     

爲人作嫁衣 위인작가의:  누군가의 시집살이 길옷은 밤낮으로 만들건만      

 年年還獨宿 년년환독숙:  이 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許蘭雪軒 詩集』중 "貧女音(가난한 여인의 노래)"

참고 

 허경진 옮김, 『許蘭雪軒 詩集』, 서울; 평민사, 2013 , pp 82-83의 ‘가난한 여인의 노래’ 한시 번역을 참조하여 본 작자들이 수정, 재구성하였음. 

이기환, "조선시대 '솔로대첩', '솔로 대책'"  retrieved from : 

https://m.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1212121013021#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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