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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Nov 14. 2021

기억이 만드는 식성과 먹성

내게 암환자 식이 요법이란?

 지난 목요일 표적항암제 복용 2주 차라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와 항암 교육을 받았다. 영양사로부터 식이요법 교육도 받아야 하지만 치과에서 이를 아홉 개나 한 번에 뽑기로 한날이라 영양교육은 이달 말에 다시 받기로 했다. 항암 교육은 상담실에서 혼자 받았는데 내가 복용하는 약에 대한 설명과 주의사항이었다. 처음 항암치료를 받는 것이 아닌지라 표적 항암제 복용 시 주의 사항이 주를 이루었는데 특이한 점은 자몽과 세비야산 오렌지를 절대 섭취하면 안 된다고 했다. 자몽과 오렌지류를 좋아하다 보니 일상에선 몸에 좋다고 많이 먹으라 권장되며 효능면에서 항암 작용이 있다고 알려진 몽과 속이 빨간 오렌지를 금기시하라는 말은 의외였다.  약 복용중 간식으로도 먹으면 안된다니 평생 못먹는 음식으로 추가 해야되니 좀 아쉬웠다. 나는 단순히 자몽이나 오렌지 산 성분 때문에 항암제를 먹고 먹으면 골다공증이 가속되나 보다 생각해 감귤류까지 먹지 않는다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 DHB'라고 하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자몽과 세비야 오렌지가 약물들의 흡수를 촉진하여 혹은 방해하여 심장에 무리를 주어 치명적이라고 했다. 과일 주스를 약을 먹을 때 같이 먹지 말라는 많이 들었지만 간호사는 항암제 복용 전후뿐만 아니라 아예 먹지 말라고 권고했다. ' DHB 성분이 없는 일반 감귤류는 먹어도 된단다. 생선회나 육회, 젓갈류야 지난 항암 때도 먹지 말라던 거고 원래 잘 먹지도 않는지라 아쉽지 않았다.  생채소들도 조심해서 익히거나 잘 씻어 식초 등에 버무린 것으로 먹으라고 했다. 자몽과 세비야  오렌지와 생채소는 앞으로 못 먹는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평상시에도 좋아하던 음식들이었으므로 지난번 항암 때는 항암 끝나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잘 넘어갔지만 기약 없는 항암제 복용에 편식 심한 내가 안 먹는 음식에 또 추가될 것들이 생기니 반갑지만은 않았다.  갈증이 나거나 속이 메슥거릴 때 자몽을 먹으면 그렇게 상쾌했는데...


  나는 고삼 때 종기가 많이 나 고생을 했었다. 심지어 얼굴 미간에까지 나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피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영양 불균형이었다. 고삼이라고 스트레스를 받고 영양상태 마저 안 좋으니 종기가 생기는 것이었는데 의사가 엄마한테 설명할 때 "한마디로 영양실조예요, "라고 해 충격을 받은 엄마가 나를 다그쳤다. "그러게 평상시에 골고루 먹어야 한다니까 김치에 젓갈도 못 넣게 하고 생선은 입에도 안 대더니 영양실조라니 내가 너 때문에 망신을 아주 톡톡히 당했다." 물론 반항심에 나도 "이렇게 키운 게 누군데..."라고 대들었었다.  

 어려서부터 아토피로 고생하다 보니 엄마가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못 먹게 했고 생선도 흰 살 생선 위주로 요리를 해줘서 인지 참 나는 안 먹는 음식도 많다. 한때는 소고기도 국물 있는 국 종류는 누린내가 나서 안 먹었다. 하지만 친구집에 가서 먹어 봤다가 반한 치킨과 순대는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엄마가 생일 때 그나마 나쁜 기운 없앤다며 닭백숙으로 끓여 내게는 살만 발라줬지만 닭을 기름에 튀긴 맛에는 못 미쳤다. 라면이나 빵 과자도 엄마는 못 먹게 했지만 탄수화물의 유혹은 늘 엄마를 이겼다. 하지만 나의 식성은 대체로 채식 위주로 식사하는 엄마의 식성과 비슷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양실조"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엄마가 고기와 생선류 이것저것 입맛에 맞춰 식단표까지 짜며 열심히 요리를 해주니 또 안 먹던 음식 었는데 엄마 손맛 덕인지 맛있었다. 때문에 지금도 기운 없을 때 엄마가 끓여주던 소고기 뭇국이나 연포탕, 굴전 등에 갓김치를 곁들여 먹고 싶다. 아주 간절히...


 한우와 해산물이 유명한 해안도시 출신이라 그런지 엄마는 육류와 생선을 즐기지 않았지만 보고 자란 것이 있어선지 다양한 요리법을 적용해 요리를 했는 꽃게 요리나 굴요리 생선조림이나 탕의 맛이 탁월해 친척들이 맛집 찾듯 일부러 찾아오기도 했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칼칼하고 구수 했지만 말솜씨는 차고 쌀쌀하고 칼칼하기만 해  간혹 그야말로 밥맛 떨어지는 말을 하곤 했다.

 어릴 때는 갈치구이나 조림을 잘 먹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먹지 않는다. "치자 들어가는 생선들은 성질도 고약하고 잔인해서 사람도 먹는다. 옛날에 누가 대왕 갈치 잡았다고  네 외할머니한테 선사했는데 갈치 뱃속에서 여자 비녀가 나왔다." 그 뒤로를 작은 갈치 큰 갈치를 떠나 갈치는 입에도 안 댔다.  지금도 갈치를 보면 여자 비녀가 떠올라 손이 가질 않는다. 열 살 무렵 한참 불고기를 맛나게 먹는데 "이 소는 사료 안 먹고 풀띁어 먹고 여물 먹던 소인가 보다. 짚 냄새가 누린내 하고 섞여 나네."라고 말하는 엄마 말에 어린 송아지가 풀밭에서 노는 생각이 스치며 한동안 소고기도 안 먹었다. 물론 한우의 유혹은 풀냄새를 이겼지만....

 내 어릴 때 식성은 까다로웠지만 먹성은 좋은 편이라 어머니는 살찐다고 구박하면서도 잘 먹는 나를 흐뭇해하셨다. 하지만 엄마 없이  생전 처음 밥을 지을 때 쌀에서 하얀 물이 계속 나나온다며 씻고 또 씻어 쌀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던 나는 이제 혼자 밥해먹은지 어언 삼십 년이 된다. 그런데 아직도 음식 맛을 엄마처럼 내려고 하지만 잘 안된다.


 항암 식이요법도 한번 교육을 받아 봤으니 뻔할 거라 생각하지만 가뜩이나 편식쟁이인 내가 또 못 먹는 것을 추가할까 신경이 쓰인다. 설명 간호사가 내게 또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이 비타민 c등의 영양제, 한약, 인삼을 비롯해 각종 즙과 진액였다. 그래도 주사로 항암을 할 때는 환자들이 경각심 때문에 덜한데 표적 항암제를 복용하면 약은 시간 맞춰 먹기만 하면되고 알약이라 우스워 보이는 건지 기운 떨어지고  힘없다고 인삼이니 석류니, 차가버섯이니 대다수가 먹고 부작용에 고생을 한단다. 간호사는 음식으로 먹는 것과 달리 진액들은 특성화되는 성분들 때문에 항암제와 바로 작용을 하니 병원에서 주는 약 외에  절대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냥 약 먹는 것도 지겨워 그런 먹는 거는 약 같아서 싫어해요. 또 챙겨줄 사람도 없고." 간호사 갑자기 안됐다는 표정으로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항암 치료받으며 살찌는 사람이 저 잖아요. 잘 먹어요."라고 답하고 생각해보니 나는  이제는 단백질과 과일을 신경 써  챙겨 먹고 유기농 식재료와 국산이 꼭 들어간 식재료를 사는 등 상당이 잘 먹으려고 노력한다. 경험상 약물 독성은 먹는 것로 중화시키는 것이 최고다.  그래서 이래 저래 잘 먹는다. 그럼에도 엄마의 손맛이 간절할 때가 있다. 항암을 다시 시작하고 이빨도 다 뽑고 어머니가 이런 딸의 모습을 안 봐서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약에 치인 속이 어머니의 굴 국밥과 갓김치가 그리워 아우성을 치니 엄마가 더 그립다. 새벽 배송으로 생굴과 무를 시켜 놨는데 부실한 이빨로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https://brunch.co.kr/publish/book/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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