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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Dec 27. 2021

시어머니의 비법 전수

옛날에 고부 사이에...

  며느리는 정말 알고 싶었다. 가끔씩 어리광 섞인 말투로 “저는 왜 어머니처럼 하얗게 안될까요?”라고 자책 어린 질문을 해보곤 했다. 그러면 시어머니는 다듬잇돌 위의 흰 광목천을 더 세게 방망이질 하며 말했다.

 “네 친정에선 누렇게 바래도 팔다리 들어가면 옷이라고 입고 다녔나 보다.”

시어머니의 말은 싸늘한 시선과 정나미 똑 떨어지는 말투로 옆에서 빨래를 개던 며느리의 가슴을 팡팡 내리쳤다. 며느리는 살림살이 방법을 물을 때마다 친정 들먹이는 시어머니의 머리채를 속내로는 수백 번도 더 흔들었다. 그러나 이내 시어머니도 부모인 것을 그런 마음을 품은 자신을 자책하며 방문 고리를 잡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어머니, 새참으로 내 가게 고구마 좀 찔까요?”라고 말하며 죄책감을 날렸다.                     

시어머니가 빨래를 하면 새하얗게 뽀송뽀송한 옷들이 되었다. 그러나 며느리는 시집온 지 이태가 지나도 시어머니처럼 말끔하게 세탁을 하지를 못했다. 누런 세탁물에 혀를 끌끌 차며 빨래터에 가는 시어머니를 부지런히 쫓아가 유심히 살펴도 시어머니도 그녀와 똑같은 방법으로 적시고 비비고 헹구고 짰다. 며느리는 도무지 빨래 비법을 알 수가 없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처럼 흰 빨래와 색 있는 것 구분도 해보고 논, 밭일하느라 흙 버무리가 된 옷도 모두 구분해 빨았지만 그녀의 흰 옷은 푸르뎅뎅했고 색깔 옷은 힘주어 비벼 빨아 얼룩덜룩했다. 혹시나 삶으면 좋으려나 해서 시어머니가 하듯이 솥단지 가운데를 비우고 아래위를 바꿔가며 삶아도 봤지만 며느리의 빨래는 뭔가 아쉬운 듯 때가 덜 빠져 여전히 말끔하지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어느 날, 며느리가 해온 빨래들을 뒤적여보고 다시 빨래 바구니를 빨래터로 들고 따르라는며 한여름 뙤약볕에 찬바람 쌩쌩 일으키며 새초롬하게 꾹 다문 입으로 앞장서 걷던 시어머니가 스스륵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진 후 그대로 자리보존을 하는 시어머니를 모시자니 빨래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대소변도 못 가릴 지경에 이른 시어머니를 모시게 던 며느리는 빨래에 치여 정신도 몸도 천근만근이었다. 모든 세탁물은 점점 푸리 딩딩 해져서 어떤 때는 빨랫감인지 새로 빤 것인지 스스로도 아리송했다.

 며느리 스스로도 생각해 보면 살갑질 못해서 그렇지 딱히 그녀에게 혹독한 시어머니 노릇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며느리가 빨아놓은 빨래를 보고 한숨을 쉬며 다시 빨아 너는 모습에 며느리는 기가 질릴 뿐이었다. 그렇게 며느리 기선 제압을 하던 시어머니가 숨을 힘들게 몰아 쉬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잠시 뒤 편한 숨을 내쉬게 된 시어머니 베개를 바로 고치며 어색한 두려움 떨치려는 듯 한마디를 건넸다.

“어머니, 아직 제가 빨래 하얗게 하지도 못하는데 그 방법은 일러주고 가셔야지요. 이대로는 가시면 안 돼요!”

시어머니가 갑자기 며느리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입을 실룩 움직였다.

며느리는 잽싸게 “네, 어머니?” 귀를 시어머니 얼굴께로 가져갔다.

뿌드득……………

너무나도 명쾌한 소리로 시어머니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며느리의 얼굴을 보며 한번 더 이를 갈았다. 뿌드득………….

그리고 며느리가 독기를 품을 새도 없이 시어머니가 숨을 거두었다.

장례를 치르면서도 며느리는 그녀를 향해 이를 갈고 간 시어머니가 내심 원망스럽고 심지어 불끈 화가 치밀기도 했다.

시어머니가 떠난 후 한동안 못한 빨래들이 소쿠리에 넘쳐 흘렀다. 며느리는 주섬주섬 빨래를 거둬 들고 냇가 빨래터로 향했다. 조용히 빨래들을 비비고 방망이질하고 헹구고, 어느새 며느리는 그간 큰일 치르느라 쌓인 피로를 방망이에 실어 두들겼다. 팡팡. 맑은 물에 빨래를 마지막 헹구면서는 더 또렷하게 시어머니가 그녀를 향해 이를 갈며 하직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자신에게 그토록 진저리를 친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에 휩싸였다.

 분노는 며느리가 헹굼질 하던 빨래를 더욱 세차게 흔들게 만들었고 암팡지게 비틀어 짜도록 했다.  며느리는 귓가에 맴도는 시어머니의 부드득 이 갈던 소리에 몸서리를 쳤다. 그러고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앙칼지게 대들기라도 할 기세로 다시 한번 빨래를 틀어쥐었다. 뿌드득… 쏴 … 뿌드득… 쏴… 며느리도 이를 갈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때에 뒷마당에 널어 논 빨래를 걷으러 간  며느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물기 신 새하얀 빨래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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