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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Feb 22. 2022

운동하러 미술관에 갔다. 그러나...

장애인의 이동 VS 문화재 보존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란 제목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흩어져있는 박수근의 그림을 모아 174점을 덕수궁 미술관에서 3월 1일까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진작부터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항암제로 지친 몸을 끌고 선뜻 나서지 질 못했다.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지만 코로나 확산과 시간 맞추기가 여의치 않아 미루고 미루어 왔던 것을 실행에 옮긴 이유는 곧 전시가 끝나간다는 것과 집에만 처박혀 있자니 운동부족으로 몸이 더 늘어지고 우울감이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미술관에 가면 오고 가며 걷고 내내 서서 감상해야 하니,  현재 내 상태를 벗어나 기분도 몸도 전환하기에 최적의 장소라 여겨졌다. 게다가 미술관 곳곳에 쉴 의자와 화장실 또한 잘 갖추고 있으니 나 같은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운동(?) 하기 좋은 장소이다.

  봄을 기다리는 벌거벗은 나무처럼 박수근의 그림을 실컷 볼 수 있다는 기대에 차서  한껏 들뜬 기분으로 나선 길은 미술관 입구부터 내게는 난관이었다.  운동삼아 나오긴 했지만 우편 마비로 지체 3급 중증 장애를 가진 나는 항암치료로 몸의 마비가 심화되고 운동부족으로 근육이 매가리가 없다 보니 지하철에서도 노인분들 눈총을 받아도 꼬박꼬박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계단을 이용하면 난간에 손잡이가 있어야 오를 수 있고 그나마도 한 칸씩 멀쩡한 왼쪽 다리를 이용해 오른다. 그런데 근사한 덕수궁 미술관 앞에 당도하니 좁고 가파른 계단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고풍스러운 대리석 계단의 가장자리를 잡고 삼분의 이 정도까지는 잘 올랐다. 하지만 이후 현수막과 코로나로 접근 근지 된 부분들이 많아 나머지는 붙잡을 난간 없이 올라야 하는데 계단이 좁고 가파라서 발이 어지지 않았다. 무릎으로 기어오를까, 포기하고 다시 내려갈까. 그래나 뒤돌아 내려가는 건 대리석이 미끄러워 더욱 아찔했고 마비된 나의 반사신경은 몸을 돌처럼 더욱 굳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사정 얘기하고 좀 부축해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우 중증 장애인이긴 하지만 외관상으로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나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다. 거절당하지 않으려면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는 구구절절. 그래서  도움 요청하기가 괜히 존심 상한다. 근래 들어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아 계단을 올라오는 남녀를 보며 망설일 때 미술관 직원이 나를 발견했다. 직원은 얼른 다가와 팔을 부축했다. 팔만 조금 잡아줘도 이렇게 쉽게 계단을 오른다는 사실은 늘 경험하면서신기하다.   감사와 투정을 동시에 쏟아낸 내게 직원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문화재라서 장애시설  공사를 할 수 없어서 그러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한국의 문화재를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국민으로서 십분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문화재도 장애인이 접근 가능하도록 조금 더 머리를 짜낼 순 없을까?  고궁이나 국보급 사찰 등을 다니며 느끼지만 계단이 돌로 좁게 가파르기에 가까이 접근을 포기하고 주변부만 돌다 온 경험이 많다 보니 휠체어 경사로를 만들기가 불가하다면 난간 정도는 설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마저 불가하다면 장애인 전담 직원이 배치되어 도움을 준다면 어떨까.

 관람을 끝내고 박수근의 그림 속 고목에 매료되어 나왔지만 바쁜 직원에게 요청하기도 민망하고 사람들도 별로 없어  애기처럼 단에 아서 엉덩이로 내려왔다. 어차피 부끄러움은 내몫이니.

1962년 `국제자유미술전`출품을 위해 캔버스에 유채화로 그린 `나무와 두 여인` [사진 제공 = 리움미술관]

 

  누구도 장애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 없고 오늘의 건강한 사람도 사고, 병마로 장애를 가질 수 있는 잠재적 장애인이다.   

요즘 지하철에서 아침 출근 시간에 장애인 단체에서 이동권 보장을 욕구하며 시위하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를 하면서도 조급한 출근시간이 지연되는 것에 짜증 내는 것을 많이 발견한다. 사실 나부터도 병원에 아침 일찍 갈 때 몇 번 시위로 열차가 지연되자 예약시간에 도착을 못할까 좀 짜증이 났으니.... 그러나 그 시간대에 시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을 모든 장애인이 가지고 있다. 장애인들은 아침 출근 시간 지연이 아니라 인생이 늘 지연당하고 있기 때문다.

 

밀레의 그림을 보고 밀레 같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독학으로 어렵게 예술가가 된 박수근을 모델로 소설 [나목]을 쓴 박완서는 엄혹한 시기에도 화필을 놓지 않은 그를 보며 예술가의 삶을 그리는 작업을  단념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기 하지 않을 의지와 삶의 혼을 부여하는 힘을 주는 것, 박수근에게 밀레의 그림이 그랬듯 장애인에게도 문화 체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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