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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May 14. 2022

혼자라서 좋아요!

비혼의 암환자의 셀프 간병

 이틀 전 병원에서 피검사를 받고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장된 번호는 아니었지만 스팸 표시도 없고 번호가 낯설지 않길래 받았더니 방문간호사였다. 건강체크도 하고 필요 사항 체크도 할 겸 오후에 방문하겠다는 전화였다.  이주쯤 전에도 전화를 받았는데 그날은 정말 만사가 귀찮아 항암제 후유증인데 그냥 계속 자는 게 나을 거 같다고 완곡한  거절을 했었다.  이번엔 병원에서 검사와 진료가 있는 관계로 방문을 본의 아니게 또 피하게 됐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며 전화를 끊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나도 이제 나라에서 보살핌을 받는 오십 넘은 독거 병자란 사실을 새삼 절감하며 내가 사회적 해결 과제의 대상이라는 자각에 마음이 뜨끔했다.  4050 고독사가 잦아지니 국가에서 고심을 한 흔적의 결과일 텐데  이런 안부 전화를 받으면 국가에서라도 관심을 가져주니 고맙지만  아직은 난 젊은데라고 살짝 입을 삐죽거린다. 그 생각에 진료를 마치고 표적 항암제 처방을 받고 뼈주사까지 맞고 집으로오는 데,  전철 안에서 노약자석에 빈자리가 보임에도 괜한 호기를 부리며 40분을 서서 왔다. 물론 집에 오자마자 뻗었다. 휴대폰 만보기 앱을 보니 11,000보를 넘게 걸었다. 정말 이제는 주제 파악 좀 하고 뻗어버릴 일은 정말 하지 말아야지....정말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이틀을 누워있었다.

  혼자서 아플 때가 가장 서럽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그렇다.  아플 때 누가 밥이라도 챙겨 줬으면, 청소라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과 가족의 관심이 고프다.  물론 대다수 가족과 사는 사람들은 내가 부러운 그런 혜택을 누리지만 나이가 어린 자녀를 뒀거나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 경우는 앓아눕는 것조차 힘들다고 푸념을 한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혼자라서 좋은 점이 존재한다. 전에 유방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을 때 옆 병상에 8살, 6살 아들이 있는 환자는 집에 가면 전혀 쉬지를 못한다고, 한 시라도 빨리 병원을 벗어나고자 하는 나와는 달리 하루라도 더 입원을 하고 싶어 했다. 앓아눕는 것도 누울 자리가 이어야 한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이 진리다. 그에 비하면 나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얼마든 앓아누워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확실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접착제를 발라 놓은 듯 붙어 누워 자고 쉬면 체력은 곧 회복한다. 개인 경험이지만 먹는 것도 중하지만 잠이 더 보약인듯하다.


사실 아프지 않아도 혼자 살아서 좋은 것은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내 몸만 챙기면 된다는 점일 것이다. 설거지가 쌓이면 기분은 상쾌하지 못하지만 나중으로  미뤄나도 되고 집안 어지르는 사람 없으니 청소도 빨래도 힘들면 미뤄도 되고, 지금 이 순간 보일러 실에 모두 욱여넣은 재활용 쓰레기들이 문만 열면 쏟아질 거 같아 한숨을 쉬고 있긴 하지만,  모든 집안일은 미뤄도 된다는 점은 좋다. 슈퍼에서 물건 사서 들고 다니기도 힘들어 식품과 생필품은 새벽 배송을 애용하는데  새벽에 조용히 놓고 가면 세상 편하다. 원래도 사 먹는 음식이나 배달 음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 었지만 암환자다 보니 될 수 있는 한 유기농으로 잘 챙겨 먹으려고 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집에서 해 먹으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설거지와 음식물 손질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소량으로 손질된 먹거리를 파는 대형마트 배달이나 새벽 배송이다. 주부들은 그렇게 배달시키는 건  비싸고 품질이 의심스럽다지만 혼자라 조금씩 사니 버리는 것도 없고 손질된 거 사서 씻어 끓이기만 되니 오히려 혼자 사는 병자에겐 새벽 배송이 천사 간병인이다. 다만 포장재로 분리수거 쓰레기가 많은 거는 참 지구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먼저 살고 봐야 하니.... 방문 간호사분께서 처음 방문해서 집안일 힘들면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고 안내서까지 주고 갔지만 내가 어지러 논 집을 누구에게 보이기도 싫고 좁은 집에서 다른 누가 청소와 밥을 챙겨주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이럴 땐 정말 혼자라서 좋다고 되뇐다.


 내가 자궁과 난소 적출 수술을 받을 때 보살펴 주러 멀리서 온 언니는 그때 집안 꼴을 보고 "세상에 내 동생이 이러고 살 줄은 몰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뭘...." 내 말대꾸에 "네가 아픈 게 피해야. 깨끗한 환경에 있어야 병도 빨리 낫지."라는 언니의 잔혹한 응수가  돌아왔다. 그때 나도 할 말을 잃긴 했다. 그럼에도 기력이 달려 만사가 귀찮으면 여전히 청소고 뭐고 그냥 널브러진다. 청소는 기력 있을 때... 청소하며 먼지 들추면 건강에 해로우니....

  뼈로 전이되어 표적 항암치료를 받고 있지만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중증 환자가 아니다 보니 혼자서 내 몸을 돌볼 수 있는 여력이 된다. 내 나이의 주변을 보면 독신 독거를 부러워 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철딱서니 없는 소리 말라고 면박을 주기도 하지만, 중년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돌볼 가족이 있기 마련이라 연로하신 부모님과  아직 손길이 필요한 자녀를 둔 주변을 보면 내가 혼자라서 맘 편하게 아플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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