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라고는 써본 일 없는 언니가 전화로 푸념을 한다. 내년 1월 조카가 결혼식을 올리는 곳에서 신부의 성장기 사진과 어머니의 편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언니는 사진만 골라 놓고 편지는 안 쓰겠다 딱 잘라 말했다. 그러나 언니가 펜을 들었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천지개벽시키나 보다.
"내가 대충 이런 내용이면 되겠다 싶어 몇 가지 추억과 바라는 바 정도 적어 봤어, 그런데......"
언니가 내게 도움을 요청하며 보낸 내용을 보니 무슨 편지를 가계부 적듯 조카의 성장시기 별 언니의 마음이 딱 한 마디씩 적혀있다. 웃음도 났지만 자꾸 볼수록 이렇게 써도 깔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류로 작성되는 결혼식 주례나 편지가 싫다고 했지만 자신이 막상 쓰려하니 부모의 심정은 다 매한가진 인지 그런 말들밖에 안 떠오른단다. 그러니 나에게 밝게 감정의 군더더기가 없는 글로 고쳐서 써달라고 했다. 결혼도 안 했고 자식도 없는 내가 가능할까? 언니가 쓴 내용과 검색을 통해 다른 부모들의 편지들을 읽어 보며 꼬박 하루를 고심하며 썼다. 두어 달 전부터 글쓰기의 어려움을 겪는 내가 오랜만에 몰입하여 써봤다.
다음은 대필한 '딸에게 쓰는 편지'이다. 언니 허락도 안 받고 올리는 거라 내가 쓰고도 도둑질하는 기분이다. 어차피 결혼식이 한국에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편지도 내가 쓴 것을 언니와 조카가 일본어로 번역해서 올릴 테니 괜찮겠지 싶어 여기 올려본다. 일어로 한국어의 느낌이 살까 걱정도 되고, 요즘 글도 못 올렸는데 하루 꼬박 고심한 글이 사라지는 것도 뭔가 허전하고... 물론 신랑 신부의 이름은 모두 지웠다.
1월 순백의 신부가 되는 딸에게,
새로운 해, 첫 주에 아침 햇살 같은 신랑과의 결혼을 축하한다.
외동으로 자란 딸이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네가 세상에 태어난 날 엄마는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처음 엄마, 아빠를 부르는 소리에 나의 가슴은 감격으로 벅차올랐었다..
처음 학교에 가던 날, 큰 눈을 더 크게 뜬 너만큼 엄마도 긴장했었고,
사춘기 소녀시절에는 네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지 못할까 봐 걱정에 마음을 졸였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네게 엄마가 참견과 잔소리 많은 귀찮은 존재가 될까 봐 고민했다.
그리고 어엿한 사회인 되어 처음 출근 하던 날 네가 참으로 대견스러웠단다.
이제 내 품을 떠나 새 가정을 만드니, 네가 사회에서 학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또 가까운 미래에는 엄마로서 가족들과 화합하며 삶의 향기를 내며 살아가기 바란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라.
나는 어느 가문의 사람도 아닌 오로지 너의 엄마로서, 또한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친구로서 너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
오늘, 각기 독립적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축복된 결혼으로 함께하기로 선언하니,
머리에는 굳건한 믿음, 가슴엔 인내로, 욕심을 덜어내고 화합하여지지 않는 사랑 꽃을 피우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