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글을 써보기로 했다.

by mul

"넌 싱글이라 좋겠다. 돌볼 남편도 자식도 없고 시부모도 없고

난 니가 부럽다. 나도 너처럼 자유로웠으면 좋겠어

넌 혼자니까 그렇게라도 하지 난 애들 때문에 그것도 못해"


겪어본 사람은 생각만 해본 사람의 허점을 안다고 했던가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제는 구태여 나 자신을 설명하고 변명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진다.


가족 이데올로기, 가부장적인 분위기, 꼰대문화, 군사주의, 관계에서의 계급, 권력 구조....

한국에서 여자가 온전히 혼자서 삶을 살아내는 건 생각하는 만큼 녹록지는 않다.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외로움을 잊고 싶어서

멍하게 보는 티비프로그램에서도 전부 가족 얘기뿐이다.

지나가는 여성에게 어머님, 남성에게는 아버님

모든 게 관계로 정의되는 이 사회에서 가족구조와 단절되어 사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지?

잠깐 숨 쉬고 싶어서 틀었던 티비를 씁쓸하게 끈다.

머리가 아프다.


"미안해 너 얘기는 내가 들어주기에는 감당이 안돼.

그런 얘기는 그냥 하지 마.

나가서 남들에게 말해봐야 다 짐이야.

가족 얘기 해봐야 결국 니 욕인 건데."


그럼 나는 또 행복한 척 연기를 해야지. 아닌 척, 괜찮은 척


"되게 사랑 많이 받으면서 자라셨나 봐요?

가족들하고는 어떻게 지내세요? 관계가 어떠세요?

왜 부모님 하고 같이 안 살아요?"


아 이 사람들은 되게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나 보네. 뭐 또 대충 얼버무려야겠지. 내 얘기할 필요도 없어.

단절과 고립. 그냥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안 그런 척. 괜찮은 척


나도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소속되고 싶고, 따뜻한 보살핌 받고 싶고

그게 그렇게 많은 걸 바라는 건가.

아무도 없는 차가운 도서관에 앉아,

내 안에서 매번 고개를 드는 같은 생각을 억지로 설득해 다시 주저앉히고

그렇게 또 돈 벌러 나갈 준비를 한다.

석사를 끝내고 나니 남은 건 마이너스 통장뿐.

저걸 누가 갚나, 내가 갚아야지


나이 들수록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내가 죽어 없어진다고 누가 알기나 할까

누가 슬퍼할 사람이 있긴 하려나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자기 처지가 가장 힘들지

모르는 건 쉽고 우스워 보이는 거고


말을 아낀다.

좋은 말을 한다.

상처가 깊은 사람은 함부로 떠들어 대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겪어봐서 알아 그 칼날이 내 몸과 마음과 정신을 얼마나 오래 아프게 찢어대는지

날카로워진 내가 사람에게 기대 보려고 애를 쓴다.


떠난다.

없어진다.

아 그럼 나를 무뎌지게 해야 머무는 건가.

덤덤하고 무던한 사람들을 곁에 둔다. 그들을 보면서 무딤을 배워간다.

내가 원래 이렇게 태어나진 않았을 텐데.. 무뎌지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가..

그저 무던하게 살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이렇게도 어려운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기댈 곳이라고는 신밖에 없다.

천을귀인이라고 했던가

기댈 사람은 없지만 하늘이 돌보는 사람.

그래서 그런지 참 기가 막힌 타이밍에 기가 막히게 살려주시긴 했다.

이렇게 계속 발버둥 치다 보면

또 신이 손을 뻗어주시겠지 싶다.


모르겠다.

그저

글 쓰고

말하면서

단순하게 살고 싶다.

따뜻하게 내 본성대로 살고 싶다.

혼자, 그리고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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