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빛바랜 노트
예전부터 집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 번씩 구경하던 엄마의 그 시절 노트가 있었다.
좋아하는 시를 베껴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랬던 때.
“엄마, 근데 이 노트는 언제 쓴 거야?”
“소녀 감성 시절, 다들 있지 않았어?”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그런 걸 ‘중2병’이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중적인 음악보다 나만 알고 있는 인디 밴드에 빠져 살고, 방학이면 회색빛 짙은 우울한 영화에 감정 이입하며 밤을 새우던 학생 때.
아마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여서 그랬을까. 갑자기 모든 게 억울하고 세상에 화가 나, 벽은 아플까 봐 못 치고(아픈 건 싫었던 아이), 대신 베개를 주먹으로 퍽퍽 치던 기억도 난다.
(그땐 뭐가 그리 화났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론 사춘기였구나 싶어 조금 안쓰럽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성숙해지고 달라졌지만,
아무튼 그 시절의 취향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타이틀곡보다 수록곡을 더 좋아하는 나처럼.
빛이 바랜 핑크색 줄 노트에 남은 엄마의 흔적을 보며, 엄마의 힘들었던 젊은 시절을 함께 이야기하고 그 추억 위에서 미래를 그려봤다.
“엄마, 사람들은 다 총량의 법칙이 있대. 엄마는 예전에 힘들었으니까 이제는 좋은 일만 가득할 거야.”
이제 와서 마음먹은 거지만, 내 삶이 조금 안정적으로 바뀐 지금은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소녀 감성을 오래 지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