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나로 살 수 있다면
연희동에서 우연히 들린 빵집에서 키쉬수업을 한다는 안내를 봤다. 궁금했던 품목이었고 취급하는 곳도 잘 없었기에 홀린 듯이 예약을 했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듯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날에 있었던 클래스. 도착했을 땐 온몸이 젖었었다. 물기를 툭툭 털며 들어간 그곳은 맛있는 냄새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만들어 먹을 생각에 찝찝함도 잊은 채 설렘만 커졌다.
키쉬 클래스에서 배우는 건 시금치 페타 키쉬, 라따뚜이 키쉬, 버섯 베이컨 키쉬 3종류였다. 매장에서 라따뚜이 키쉬를 먹고 반했는데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라따뚜이(ratatouille)는 가지, 호박, 피망, 토마토 등 다양한 채소를 잘 섞어 만드는 조리법을 뜻한다.
생소한 이름의 ’ 키쉬‘. 키쉬는 달걀, 우유에 고기, 야채, 치즈 등을 섞어 만든 파이의 일종이라 생각하면 된다.
파이, 타르트, 플랑과 비슷한 결인데 디저트보단 식사류에 더 가깝다. 원하는 재료를 자유롭게 넣을 수 있고, 뭘 넣으면 맛있을지 조합을 찾는 재미도 있다.
과거 혼자서 책 보면서 유튜브를 보면서 독학하며 만들었을 때랑 결과물이 달랐다. 클래스에서는 중요한 부분들을 콕 집어서 알려주기에 실패를 할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온다.
베이킹보다는 요리에 더 가까운 과정들에 서툰 솜씨로 재료를 하나하나 다듬어서 준비해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볶음의 정도에 따라서 채소의 상태도 차이가 있었는데 선생님의 완벽한 키쉬와 나의 키쉬가 좀 달라도 괜찮았다.
틀에 박힌 과정에서 살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어느새 편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하고 쉬운 방법을 배우러 갔으니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인생에서도 정도는 없다지만 쉬운 길을 알려주면 그 길을 다 따라가고 싶어 지는 거니까.
요즘은 지난 과거를 붙잡으면서 후회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연말이 되어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지난 선택에 아쉬움이 남긴다. 시키는 대로 살지 않아서 생긴 결정들에 의해 바뀐 게 많아졌다. 그로 인해 살아가는 방향도 생각지 못한 곳으로 흘러갔다. 틀린 길은 없으니 지금 힘들다면 조금 돌아가는 중이라고.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한판의 키쉬로 탄생하듯. 이 시간들이 모여 나를 다채롭게 살게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