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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 쉬폰(시폰)케이크

시도를 해야 뭐라도 바뀌지

by 진정헌

쉬폰케이크는 스펀지케이크의 일종인데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다. 이름의 유래는 비단과 같이 우아하고 미묘한 맛이 난다고 붙여졌다.

쉬폰케이크를 굽는 틀에는 중앙에 원기둥이 솟아있는데 가운데로 열을 공급하고 제품이 주저앉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일반 제누와즈 시트와 달리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휩해준뒤에 함께 섞어서 굽는다. 제누와즈는 전란을 사용해 한번에 반죽하는 것과 달리 공정이 한번 더 추가된다. 주로 내가 굽는 시트들은 제누와즈였다. 매장에서 대량생산하기에 편리하고 계란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전란으로 다 쓰면 깔끔하기 때문이다.


쉬폰케이크를 만들 때 주의하는 건 바로 비중인데; 비중은 비중컵으로 측정하고 자신만의 비중컵을 하나 정해서 측정 후 사용해 확인가능하다.

대부분 클래스에 가면 쉬폰케이크의 비중을 재고 오븐에 넣어 제작에 들어간다. 이렇게 비중을 확인하는 이유는 비중에 의해서 쉬폰케이크의 밀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냥 홈베이커라면 상관없으나 업장을 운영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비자는 항상 같은 맛을 생각하고 구매하는데 날마다 다른 식감을 가지고 있으면 곤란하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전문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으니 더 주의해야 한다.


친구와 함께 야밤의 베이킹을 하게 된 어느 날이었다. 함께 베이킹을 하는 친구가 있다는 건 나를 환기시키기 가장 좋은 친구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정도의 베이킹을 파악할 수 있고, 단순하고 쉬운 공정을 해야 접근성이 좋다는 걸 체험할 수 있다. 집에서 가볍게 먹기 좋은 제품들은 베이킹을 하는 소비자라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전문적으로 제과와 제빵을 공부한 나와 달리 친구는 유튜브가 그녀의 좋은 선생님이자 클래스를 들으며 궁금증을 해소한다. 친구의 장점은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들을 재료가 없어도 도구가 없어도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그녀가 더 나은 베이커일지도 모른다. 베이커란 도구탓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2년 넘게 매장을 쉬면서 베이킹 공부를 하고, 홈베이커로서의 삶만 살았다고 하지만 매장을 운영했던 나의 기억과 습관은 늘 소비자가 아닌 경쟁자의 시선과 운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매장을 방문하더라도 인테리어와 소품, 가격대 소비자 층, 유동인구를 눈으로 파악했었다. 음료와 디저트를 먹을 때면 온전히 먹는 게 아니라 맛을 하나하나 느끼고 구조를 뜯어가며 재료와 구성을 연구했었다. 이렇게 만들면 이조합도 괜찮구나, 여기서 판매하는 스타일을 착안해서 나도 적용해 볼 수 있진 않을까, 늘 카페와 베이커리의 바운더리에서 끝나지 않고 끝없는 연구를 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홈베이킹을 하고 있는 친구는 비중을 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배움과 실전은 다르다고 말하듯 그 과정 없이도 그냥 우리 가족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쉬폰케이크를 만들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좋은 성과이니까. 비중이 맞든 안 맞든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제과를 하면서 정석대로 매뉴얼대로 순서대로 하는 게 익숙한 나에겐 모든 과정이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 같았지만 결과물은 그럴듯하게 나왔다. 포인트만 잘 지키면 되니까!

완벽을 외치면서 나를 다그치고 몰아세우는 게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기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전을 하지 않으면 변화도 발전도 없는데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일단 뭔가를 해야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변화를 하지 않으면서 더 나은 결과만 바라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쉬폰케이크를 굽기 전에 반죽 비중 재는 것을 알고 있는 것보다 핵심은 쉬폰케이크를 만들어 봤었나? 틀을 사고, 비중컵을 샀지만 정작 쉬폰케이크 굽는 건 계속 뒤로 미뤘었으니 말이야.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이 있을 수 없는데도 기계처럼 딱딱 해내길 바라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살았다. 올 해에는 그런 생각들을 버리고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먼저 마음을 비우고서 나의 쉬폰케이크를 만들어 봐야겠다. 시도를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 아니겠는가?

새해를 맞이하고 다들 많은 다짐과 신년 계획을 세웠을 텐데 이 글을 읽게 되신 모든 분들이 그냥 한번 해보셨으면 좋겠다. 그 계획들이 잘 이뤄지길 소망해 본다.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나의 그녀에게도, 독자님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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