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키워가는 중
무더웠던 날부터 키워온 나의 르방. 르방은 이스트대신 팽창제 역할로 사용하는 천연발효종이다.
아기르방이라 향도 발효도 더디었는데 어느새 어른 르방이 되어서 꽤 늠름하게 키워졌다. 온도와 습도를 신경 써주고 르방에게 먹이를 주면서 꼬박꼬박 리프레쉬해주면서 키운 지 어느덧 몇 개월이 시간이 흘렀다.
식물을 키우는 것만큼의 정성으로 키워서 그럴듯한 르방이 되었다. 처음엔 그저 쿰쿰하고 시큼한 향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잘 발효된 향을 머금고 있다.
이런저런 일들도 르방으로 빵을 만들지 못한 지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바쁘다는 핑계일 수도 있다. 빵을 굽지 않는데 르방을 왜 키워?라고 생각 할 수도 있는데 꾸준히 밥을 주지 않으면 르방의 생명력이 다해서 그냥 밀가루 반죽 덩어리가 될 뿐이다.
어떤 날은 밥 주는 걸 까먹고 지나치기도 했다.. 강박처럼 리프레쉬를 위해 밥을 줬었는데 빵 만들기를 쉬면서 조금씩 놓게 되었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 열어본 르방은 밀가루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며칠을 빠졌을 뿐인데 계속 미루게 되었다. 매일 하던 일이 미뤄지는 게 마음 불편하면서도 미루기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르방은 자기의 힘을 다해서 버텨내고 있었다. 죽어가던 르방에게 밥을 주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꾸준히 리프레쉬하는 것으로도, 르방 키우는 걸 그만두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천천히 잘 키워서 잡아먹어야겠다. 베이글에도 바게트에도 치아바타에도 르방을 넣어서 구수하게 말이야.
귀찮은 과정도 많고 수고스러운 시간들이 모인 시간의 결과를 볼 그날까지 계속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