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선셋

다시 만날 수 있을까

by 진정헌

많이 추천을 받았지만 계속 미뤄오던 영화 비포 선셋을 드디어 봤다. 그간 이 영화를 외면해 왔던 건 제시와 셀린의 관계가 사랑이라기보단 ‘불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제시는 이미 가정이 있고, 아들도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사랑이 식었다 해도 아이를 함께 키운 아내를 두고 9년 전 단 하루를 함께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 물음이 마음속에 남아 영화를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 영화에서 셀린도 말한다 미련이 남은 것도 아니고, 유부남이랑 얽히고 싶지 않다고.


사실 나는 비포 선라이즈도 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 하루를 보지 않았기에, 그 하루가 9년 동안 그리움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도 몰랐던 것 같다.

하루는 너무 짧은 시간 아닌가? 그 시간 동안 사랑을 나눴다는 것도, 9년을 마음속에 품었다는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그들의 감정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제시도 셀린과의 하루를 잊지 못해서 둘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셀린도 그를 그리워하며 노래를 작사했다.

센 강 유람선 위에서 셀린은 말한다.

“어느 누구도 쉽게 잊힌 적 없어.

누구나 특별한 사람이고,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없어.

헤어질 때마다 크게 상처받아.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워.

나는 하룻밤 인연조차 만들지 않아.”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나 역시 누군가를 잊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셀린이 제시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 더 깊이 와닿았다.


조금은 달라진 마음으로 다시 본 비포 선셋은 절절했던 사랑을 놓쳐야 했던 제시와 셀린의 안타까움. 그리고 그들의 재회를 조용히 응원하게 되는 영화였다.

특히 마지막 장면, 셀린이 기타를 치며 왈츠풍의 노래를 불러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서로를 기억하며 만든 노래를 듣고 있는 제시의 표정과 셀린의 노래 가사들이 나의 감정과 겹쳐졌다.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그들. 과연 제시가 책을 쓰지 않았다면 셀린은 그를 다시 찾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이런 망상도 들었다.

‘나도 너를 잊지 못해서 이렇게 계속 써 내려가고 있는 걸까? 혹시 내 글이 너에게 닿는다면 너는 날 다시 찾아올까?‘


계절이 몇 번이 바뀌어도 여전히 너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제시와 셀린의 9년보다는 조금 짧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네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땐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시간 동안, 나도 너를 이렇게 오래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주기를...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오래 봤다고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긴 시간 사랑했다고 그 사랑이 더 진한 것도 아님을.

가끔은 잊히지 않는 그 사람 덕분에 나도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비포 선셋은 결국 그리움과 선택에 관해,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긴다.


어딘가에서 너도 이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다면 우리의 추억 속 하루를 잠시 떠올려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