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의 끝에서

붙잡을 수 없는 인연도 사랑이었음을

by 진정헌

불교에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어. 모든 인연에는 알맞은 때가 있다는 뜻 이래.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상경의 처음과 끝에는 늘 네가 있었어.

낯설고 차갑기만 했던 그곳에서 널 처음 만났을 때부터였을 거야. 그때의 나는 참 외로웠는데 네가 그 외로움을 조용히 덜어줬지. 그래서일까 이제 서울을 갈 때면 너를 떠올리게 돼.

하지만 그 기억은 더 이상 반짝이는 추억이 아니라 오래된 일기장의 한 페이지처럼 조금은 바래고 조금은 얼룩진 이야기로 남아 있어.


그 시절, 내 곁에 머물러줘서 고마워.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던데, 나는 그게 두려워 너를 마음속 냉동실에 넣어둔 것 같아. 얼려두면 시간이 멈춘다고 그러면 그 순간이 영원할 거라고 믿었거든.

멈춰진 채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문득 아주 우연히라도 네가 나를 떠올렸으면 해. 혹시라도 그리운 날 내 생각이 나면 잠시나마 너도 웃고 있었던 그때를 기억하길 바란다.

그 시절의 우리가 참 따뜻했다고…


너와 함께한 시간들은 정말 즐거웠거든. 함께 웃고, 함께 걷고 이야기 나누는 정말 평범한 날들.

그 안에서 나는 많이 배웠고 널 많이 사랑했어. 이제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


만날 인연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되어 있고, 아무리 애써도 스쳐갈 인연은 결국 그렇게 스쳐 지나가더라. 그래서 이제는 너라는 인연 앞에서 더 이상 애쓰지 않기로 했어.

그게 마지막 예의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는 방식일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이건 아마도 우리 둘의 마지막 이야기겠지. 그러니 이 말로 끝맺을게.


“안녕, 어디에서든 너도 행복하길 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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