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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아빠 Oct 25. 2023

00 편지의 시작

#타이탄의 도구가 아닌 아빠의 도구

아주 평범한 어느 날 너와 싸움 놀이(대충 레쓰링 따위의)를 하다가 아빠가 죽으면서(죽는척하면서) 별생각 없이 무심코 “아빠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은…”이라고 하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항상 아빠는 너에게 무엇이든 정말 많은 걸 다 주고 싶었지만 막상 아빠 스스로도 너에게 남기고 싶은 것들을 전혀 정리하지 못 했던 거야. 그날 아빠는 잠든 널 보면서 스스로 얼마나 한심했는지 몰라. 이렇게 널 사랑하는데 내가 삶에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도 정리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너에게 줄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이렇게 살다가는 몇 푼 되지도 않는 보잘것없는 물질 조금, 심지어는 그것조차 잘 지켜내거나 발전시킬 힘을 남기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깊은 반성을 하면서도 사는 게 바빠서 결국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지나가던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어.


꿈속에 지오는 중학생 정도였고 우리는 되게 근사한 집에서 부유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어. 그렇게 지오랑 엄마랑 아빠가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폭탄선언을 하게 돼.


 “아빠가 사실은 불치병에 걸렸고 아빠의 삶이 길면 6개월 짧으면 2달 정도 걸릴 거 같아. 마지막 1개월 정도는 아파서 뭔가 잘하지 못할 것 같아.”
 이 말을 들은 지오는 엄청 짜증 나는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면 말했어
 “아빠. 그래서 막 되게 아파?”
 “아니. 아직은 그렇게 아픈 거 모르겠어”
 그랬더니 너는 되게 심통 난 표정으로 네 밥그릇을 챙기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엄마는 뭔가 답답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어.

아빠는 엄마에게 담담하게 이야기했어.
 “여보 내가 마지막으로 지오에게 알려줄 것 들이 있어서 그러니까 지오 학교에 이야기하고 나랑 한 달 정도 국내 여행을 좀 했으면 해. 당신 바로 함께 떠나려면 그렇게 하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1~2주 후에 오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엄마는 아빠 예상대로 이것저것 정리하고 1주일 후에 합류하기로 했어.

그리고 아빠는 아빠 서재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지.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너에게 반드시 남기려는 것들’이라는 워드 파일이 있었고 그 파일을 열어서 차분히 읽어봤어. 근데 아빠는 깜짝 놀랐어. 아빠가 그동안 살면서 깨닫고 생각했지만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삶의 노하우나 문제 해결 방식들이 모두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던 거야. 그걸 읽으면서 ‘와 이거면 우리 지오는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어마어마하게 줄이고 정말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근데 그 순간 갑자기 이상했어. 


‘이걸 정말 내가 다 써놨다고? 아 이거 꿈인가?’ 꿈이라는 걸 감지한 그 순간 곧 이 꿈에서 깨어날 거란 걸 느꼈고 아빠는 이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로 달려가 이걸 적어야겠다 생각하며 그 내용들을 외우려고 정말 집중해서 읽어나갔어.

그러고는 잠을 깨고 바로 달려갔지. 그리고 급하게 컴퓨터를 부팅 시키고 워드 파일을 여는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정말 너무너무 답답했어. 그러고는 한참을 생각하고 결심했어.
‘꿈속에서 본 그 파일, 아빠가 지금부터 진짜로 만들어줄게’
그리고 아빠는 지오가 중학교 때 죽지 않을 거야. 아주 오래오래 살면서 더 현명한 내용을 작성해 줄 거고 아빠가 실천하면서 좋은 사례들을 만들어줄게.
 
지오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되었지만 자칫 꼰대의 잔소리가 되어 의미가 퇴색될까 염려되니 수없이 읽어보고 다시 쓰고 또다시 써서 잘 정리해 남겨주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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