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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오지랖도 오감이야

쓴맛 단맛

by 나철여

올케언니가 넷이다. 나는 하나뿐 인 시누이다.

깨톡방 이름은 여인천하다.

시도 때도 없이 깨 쏟아지던 방인데 한동안 조용했다.


쓴맛.

둘째 언니가 카톡방을 먼저 빠져나갔다. 둘째 오빠가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오빠의 췌장암은 언니의 췌장까지 들쑤셔놓고 사라졌다. 언니는 말이 없어지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여인천하 방도 침묵을 이어갔다.



오빠부부는 중학교 동창이었다. 언니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전공하지도 않은 그림실력이다. 우리는 언니를 만나기 전 언니의 그림부터 만났다.

오빠가 들고 온 그림은 우리 집 새 식구로 소개되었고, 오랜 연애 끝에 지독한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오빠는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언니를 경제적으로 힘들게 했고, 행안부 고위직까지 올랐을 땐 가정을 소홀히 했다.

지자체가 시작되면서 온갖 대접을 받아 누렸다. 술 그리고... 언니의 속은 타들어갔다. 다행히 그 틈에서도 딸과 아들은 잘 자랐다. 퇴직 후 둘은 해외여행도 다니고, 다시 연애하듯 남부럽잖게 살았다.


그것도 잠시, 어느 날 덜컥 암선고를 받았다. 길면 6개월이라 했다.

주치의는 오빠의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었다. 우연치고는 가혹하다. 오빠를 너무도 잘 아는 의사친구의 말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병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술과 담배 그리고 몹쓸 짓들 사이에 들어온 병이라 단정 지었다. 너무 쓴 말이었다. 오빠보다 먼저 폐암을 선고받아 투병 중인 남편도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주치의와 오빠 그리고 남편, 모두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셋은 쓴웃음으로 악수를 했다.

최선을 다해보자고.

하지만 오빠는 셋이서 함께 잡았던 손을 먼저 놓고 떠나 버렸다.



딱 일 년이 되는 날,

오지랖 넓은 시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여행 가자."


넷째 오빠랑 미리 각본을 짜둔 오지랖이었다.

넷째 오빠는 인도에서 사업을 펼친 지 만 10년째였다. 뭔가 패밀리를 위한 이벤트로 의미를 두고 싶어 했다. 떡 본 김에 제사치 곤 그럴싸했다. 박 씨 가문에 보기 드문 의리파 넷째 오빠는 뭐든 적극적이다.

타이틀까지 멋지게 파이브 퀸들의 인도여행이라 지어줬다.


단맛.

다시 깨톡방이 들썩거렸다. 비행티켓부터 날짜 맞추기로 깨톡거렸다.

너무 흔한 말이지만 기다림은 아름답다. 여행은 더 그렇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랑 가느냐이다. 흔치 않은 조합이다. 60대 후반과 칠십 대 초반인 올케 언니들 사이에 시누이가 끼여있다. 산전수전 인생戰에서 살아남은 올캐언니들이랑 여행은 처음이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기다림이었다.

공항으로 출발하는 지점은 다 다르다. 대구 용인 서울.

하지만, 나는 더 특별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6년 차 폐암 항암 중인 남편의 보호자였기에 열흘간의 여행 (2024. 9/8~)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번에 언니들이랑 같이 안 가면 난 죽어도 그 미안함 때문에 맘 편히 눈 못 감을 거야"


남편의 결정적인 말 한마디에 못 이기는 척 결정했. 보호자로 사느라 해외여행을 끊은 지 7년째인 나도 여권부터 갱신했다.

남편이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여름비수기는 옷쟁이였던 나에게 해빙기였고, 해방 여행이었다.
겨울 비수기엔 미국 서부를 여행했고, 호주와 뉴질랜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쪽으로 해마다 다녔다.
선교여행도 남아공, 사이판, 캄보디아 베트남 등 제목 붙여 다니고, 머리 식히러 나갔고, 친구들이랑 모은 적금으로 '노세 노세' 하며 부지런히 다녔다.

"우리 다음엔 유럽여행이다."
그 약속도장의 잉크도 마르기 전, 남편이 암선고를 받았던 거다. 1년을 못 넘긴다는 말에 친구들도 모두 발목 잡혀 지금까지 그 적금을 못 까고 있다.


그렇게 떠나게 된 인도여행이다.


오감.

전혀 예측 못한 인도 여행만도 웬일인가 싶었는데

델리공항에 도착해 보니 과분하고 격하게 반겨준다.

오빠는 파이브 퀸들에게 건넬 꽃다발과 함께 환한 얼굴로 우릴 맞았다.

공항에서 꽃다발 받아보는 것도 처음이다.
환영 퍼레이드는 퀸들 뿐 아니라, 마중 나온 다른 인도사람들에게까지 시선집중이 되었다.

그 뒤편 출구에 내걸린 플래카드는 정말 오감이다.


"Welcom our family Queens~!"



"한국시간을 한국에 두고

인도로 시간여행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지금 기분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신다면?"

"뜬구름 같다ㆍㆍㆍ"


꽃다발을 들고 있는 넷째 오빠와 현지직원들.


< 화려한 행진 > / 자작시


퀸들의

화려함 속에

눈물이

한숨이

고픔이 젖어있다


이제

행진이 곧 시작된다

비단을 깔고

나팔을 불고

꽃을 뿌려주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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