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도 남편도 내편
"별도 달도 다 따줄 거 같더니..."
"이 사람아 어찌 나뿐이겠나? 다들 그랬으니 저 별도 달도 아직 저렇게 걸려 있잖은가!"
내가 힘들 때마다, 나와 남편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사다.
살아있음에 감사한 날이 더 깊어질수록 남편의 말도 점점 더 번지르해지고 말수도 풍성해지나 보다.
1년밖에 못 산다던 남편의 폐암말기가 팔순을 바라보며 8년째 버티고 있다. 칠순만 넘겨줘도 감사했는데 (...)
점차 삶의 민감성이 낡아간다.
아무튼, 구름도 남편도 내편이다.
엊그제는 남편의 생일이었다.
매일 출근하기도 바쁜 며느리가 시아버지 생신을 위해 보름 전부터 예약하고 정성껏 준비한 생일파티 1박 2일, 코스별 만찬이다.
경주 루지 풀빌라도 그랬고, 경주 관성솔밭해변도 그랬다.
이 해변은 남편의 손발 저림에 효능을 기대하며 자주 다녔던 곳이기도 하다. 해변가 젖은 모래와 뜨거운 모래를 왔다 갔다 하며 맨발로 밟는다. 덕분인지 차츰 좋아지고 있다.
지난번 왔을 땐 없었던 나무골조로 잘 지어진 기와건물이 보였다. 바다와 솔밭의 뷰맛이 일품인 자리에 파스쿠찌 카페가 생긴 거다. (못 보고 그냥 갔으면 어쩔뻔했나...)
경북 경주시 양남면 양남로 146 파스쿠찌 경주양남 DI점
(좋은 정보는 이렇게 나누는 거야!)
7월 11일 오픈, 우리가 가기 이틀 전에 오픈했다며 2만 원 이상 주문하니 기념선물도 줬다.
내부 인테리어도 멋지고 참 경주스러웠다.
또 다른 기쁨으로 예측 못했던 행복한 생일을 마무리했다.
Maybe~ Happy Ending!
딱 한 달 남았다.
로키투어를 앞두고 있다. (8/6~814)
아직 드물게 비상을 걸고 있는 남편을 두고 여행을 간다는 게 가당찮다. 남들 눈치를 보는 게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도 맘 편히 다녀오긴 힘들다.
올해가 우리 결혼 45주년, 기념선물치곤 꽤 특별하다.
남편이랑 부부 둘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올케언니랑 둘이 여행 간다. 이 둘째 올케언니가 45년 전 우릴 손잡게 해 준 중매자였다. 언니는 혼자된 지 두 해째다. 둘째 오빠도 암진단 받고 두 해를 못 넘겼다. 오빠는 남편과 둘도 없는 친한 고등학교 동기동창이었던 것도 특별났지만 처남 매제사이가 된 것도 특별했다. 오빠는 두해 전 췌장암으로 먼저 떠났고, 남편은 폐암 항암치료 후 지금까지 부작용으로 지독한 손발 저림을 안고 살아간다.
이 또한 무슨 닮은 듯 다른, 기구한 사연인가 싶다.
언니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시누이인 나를 늘 안타깝게 지켜본다. 간병하는 보호자로서 힘들었던 언니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의 숨 쉴 구멍 만들 기회를 엿보고 있었나 보다. 부부교사인 아들네를 위해 주 중 육아를 돌보는 나, 방학이 아니면 해외여행은 꿈도 안 꾼다. 이 사정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언니다.
폐암 확정 후
첫 삼년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잠도 한번 발뻗고 못 잤다.
둘째 삼년은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셋째 삼년부터 우린 짬짬이 하루치 여행을 다녔다.
방학을 틈 타 미리 날짜부터 며느리와 정하고 결혼 45주년 기념이라는 그럴싸한 핑계까지 만들어 언니는 남편과 함께 계획했다. 비수기보다 백만 원이 더 비싼 성수기라도 일체 여행경비를 감수해 가며 몸과 마음을 식히러 가자는 거다.
강력히 등 떠미는 남편에게 살짝 미안하고 무지 고맙다.
남편의 저림은 이유라도 있지 나는 댈 이유도 없이 가슴이 저려온다.
하지만,
결혼기념일인 4월에 작정해 놓고 여태 망설이고 있다.
여보, 그때까지 아무 일 없을 거니 무조건 다녀와요.
고모, 우리 믿고 가요.
엄마, 우리가 있잖아요.
어머님도 일 년에 한 번 휴가를 다녀오셔야 저희들 맘도 편해요.
많이 호전되었지만 아직 훈장 받기엔 이르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도 똑같은 맘으로 인도여행 했지?
https://나철여의 브런치북 <파이브퀸들의 인도여행기>
시간은 양보가 없다
지금 양보하고 평생 후회 할 것인지...
너무 많은 생각은 결국 헛다리를 짚고서야 깨닫는다.
'이것 재고 저것 재면 아무것도 못해'
헛나온 말이 정신을 가다듬게 했다.
마지막 저 깊은 내면에서 불쑥 나온 내 헛말이다.
하지만,
반쪽 진심이다.
누군 기도하고
누군 성경 읽고
또 누군 찬양하고
나는 은혜를 누리고 있다.
'그래 믿고 가는 거야!'
젊은 나이 일할 땐 시간도 돈도 없었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여행을 포기했다.
시간도 돈도 되니 느닷없는 질병이 발목 잡아 더 쉽지 않은 결정이다.
둘 다 선택하기는 결국 둘 다 포기하는 거다.
내게 어울리는 방식을 찾았다.
뭘 선택하든 어차피 정답은 아니다.
후회가 없으면 됐지.
이 과정이 힘들지 막상 떠나면 복잡했던 걱정과 생각이 다 부질없다는 걸 이미 살면서 몇 번이나 겪어봤다.
여행은 지금부터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지금 이 시간부터다.
다시 각인시켜 본다.
Maybe~ Happy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