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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점 반

일사불퇴

by 나철여

손자가 보던 그림책을 할미가 보고 있다.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점 반이다



「넉 점 반」은 윤석중 선생의 1940년 시 작품이다.
‘네 시 반’이라는 뜻으로 시계가 귀했던 시절, 지금 몇 시인지 가겟집 가서 알아보고 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아기는 오다가 물먹는 닭 한참서서 구경하고'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

놀이에 정신이 팔려 그만 잊어버리고는 해가 꼴딱 져서야 집에 돌아가

시방 넉 점 반이래.” 외치는 능청맞은 한 아기의 행동이 웃음을 머금게 하는 그림책이다.


할미가 된 나여사도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다.

책 제목을 보자마자 바둑 이야기인 줄 알았다.

넉점반

넉점 반

넉ㆍ점ㆍ반

나도 모르게 자꾸 되네이게 된다.

바둑에서도 넉점 반을 이기면 대단한 거다.






5남 1 여로 자랐다.

반은 사내였다.
고무줄놀이 보다 구슬치기를 먼저 배웠다. 바람 잘 날 없이 오빠들은 엄마를 강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갔고, 오빠들은 걸핏하면 집을 나갔다. 개성 따라 어디서든 지내고 얻어맞고 들어오는 법은 거의 없다. 살림살이가 퍽퍽할수록 식구들은 점점 세졌다. 세게 나온다고 정말 강한 건 아니었고, 약함을 강하게 드러내는것 뿐이었다. 오빠들의 허세부림은 그때부터 한 점씩 늘어갔다.


어릴 적 구슬치기며 딱지치기하던 때부터 5형제는 똘똘 뭉친다. 동네에서는 고무줄 놀이하다가도 오빠들이 나타나면 피해 숨는다. 고무줄 끊어오는 오빠들 덕분에 나는 고무줄 부자였다. 둘둘 말은 까만 고무줄 뭉치는 친구들의 부러움과 미움을 동시에 사곤 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수준 높은 놀이와 차원이 다른 사고를 쳤다. 오빠들은 바둑을 두고, 온 사방 여자들을 울렸다. 오빠들이 사귀는 여자는 수시로 바뀐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부전자전이라는 말을 욕처럼 탄식처럼 분간 없이 자주 해댔다. 나는 늘 방패막이다. 여자들이 찾아오면 오빠들이 시키는 대로 거짓말을 밥 먹듯 했다.

그랬던 오빠들도 나여사도 머리가 희끗해졌다. 바꿀 여자도 거짓말시킬 일도 없어졌다.
슬플 땐 고무줄을 떠올리고, 바둑알을 만진다.
흰돌 검은 돌을 둘째와 셋째 손가락 사이에 하나씩 끼우고 둘을 엄지와 검지 지문으로 비비며 만지작거리면 흑백 슬픔이 희석된다.

지금도 명절에 모이면 오라버니들이랑 바둑을 둔다. 오빠들에게 어깨너머 배웠던 바둑이라 맞수는 아니지만 내기바둑을 해도 지지 않는다. 로는 아니지만 반집 차이도 이긴 건 이긴 거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기도 한다.

가끔 바둑은 인생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둑은 우선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선 끊어지지 않아야 하며 서로 의지해야 한다.

다양한 전략과 꼼수, 그리고 바둑의 기본규칙 인 일수불퇴 같은 것들이 닮아 있다.


인생도 바둑도 첫 수가 중요하다.


조훈현 9단이 흑돌을 쥐어 우상 화점에 첫 수를 둔다.
두 눈은 밤새 운 사람처럼 퉁퉁 부어 있다. 고통인지 슬픔인지 모를 긴 밤이 지나고 새벽에야 평온이 찾아왔다.
간신히 추격에 성공하여 4국까지 스코어는 2대 2.
1989년 9월 5일 아침 10시, 싱가포르에서 운명의 최종전이 시작되었다. _<미생> 35p.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돌아보니 내 인생 시계도 넉 점 반이 훨씬 지났다.

시곗바늘처럼 되돌릴 수도 없고, 바둑처럼 한 수 물릴 수도 없네...一手不退.


'나여사의 남은 인생에도 신의 한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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