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3부-7: 한국 현대 정치사와 초월 충동의 진화

– 이승만에서 윤석열까지

by 시산

한국 현대 정치사는

초월 충동이 어떻게 시대적 변화와 함께

진화하고 때로는 퇴행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실험장이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부터

2024년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까지,

각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초월 충동의 서로 다른 변주를 보여준다.


1. 이승만 (1948-1960)

카리스마적 건국 신화의 구축

b108f1c3-3f6a-4a71-be19-cbb4f1d2b010.png

초월 충동 유형: 구원자 – 해방된 조국의 건설자


이승만은 한국 독립운동의 영웅이자

조선 왕조 16대손이라는 혈통을 활용해

강력한 '국부' 신화를 구축했다.


프린스턴 대학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으로서 지적 권위를 확립했으며,

기독교 개종자로서 근대화와

서구 문명의 상징이 되었다[^63].


그의 감정적 지배는

일민주의(一民主義)라는

초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한국인의 유전적, 정신적, 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하며

외부 세력을 위협으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자유당 독재 체제 하에서 이승만은:

- 대규모 집회와 청년 조직을 통한 감정적 동원
- '완장부대'와 정치 깡패를 활용한 공포 정치
- 1958년 국가보안법 개정을 통한 언론 통제


그러나 1960년 부정선거와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신 발견은

국민적 분노를 촉발시켜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85세의 노령 대통령은 젊은 세대와의

감정적 단절로 인해 몰락했다.


2. 박정희 (1961-1979)

부계적 권위주의와 개발 독재

783b5e85-7090-4167-bdba-31fb031712d2.png

초월 충동 유형: 촉매자 – 가난에서 번영으로의 변혁


박정희는 이승만의 거리감 있는

지식인적 권위와 달리

실무적이고 돌보는 부성애적 통치 모델을 구축했다.


그는 가난에서 번영으로 한국을 이끄는

엄격하지만 사랑하는 아버지로 자신을 위치시켰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가시적인 경제 성과는

특히 농업 빈곤에서 산업 번영으로의 전환을 경험한

기성세대에게 진정한 대중적 감사를 창출했다.


새마을운동(1970)은 박정희의

감정적 지배 전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 '하면 된다'는 국가적 슬로건
- 초가지붕을 양철지붕으로 교체하는 상징적 근대화
- 마을 간 개발 경쟁을 통한 감정의 생산적 전환
- 전통적 무속 신앙 억압과 합리적 근대화 추진


1972년 유신헌법

박정희의 감정적 지배가 극단화된 형태였다.

'유신(維新)'이라는 용어는 의도적으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연상시켜

한국도 유사한 변혁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의 암살(1979.10.26)은

김재규와 차지철 간의 엘리트 내부 갈등,

부마 시위로 대표되는 대중 저항,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3. 전두환 (1980-1988)

공포 통치와 3S 정책


초월 충동 유형: 파괴자 – 광주 학살을 통한 공포 지배

5a4d9b75-c12c-4320-98f2-41578f0826ec.png

전두환의 통치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작된 공포에 기반했다.


공수부대를 투입해 200-2000명으로 추정되는

민간인을 학살한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은

지속적인 트라우마를 창출해

향후 봉기에 대한 억제 효과를 노렸다.

'광주의 도살자'라는 그의 별명은

공포 기반 통치를 제도화했다.


일본인 고문 세지마 류조의 조언을 받아 시행한

3S 정책(Sports, Screen, Sex)

정교한 감정 조작 전략이었다:

- 프로야구(1982)와 프로축구(1983) 창설
- 성적으로 노골적인 영화 허용
- 통행금지 해제를 통한 유흥업 확대
- 정치적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전환


1988년 서울올림픽

군사정권의 궁극적 정당성 프로젝트로서

국제적 인정을 통한 국가적 단결을 창출했다.

손기정이 성화를 봉송하는 장면은

강력한 감정적 상징성을 제공했다.



4. 노태우 (1988-1993)

물처럼 흐르는 타협의 정치학

c5c01762-dd74-4132-b883-22281e3e8954.png

초월 충동 유형: 촉매자 –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


노태우 대통령의 통치는

한국 정치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1987년 6월 29일 선언으로 민주화의 물꼬를 튼 그는,

동시에 1979년 쿠데타와

1980년 광주 학살에 연루된 군부 출신이었다.


"물태우"라는 별명이 상징하듯,

그의 리더십은 "무색무취"의 실용주의로 특징지어졌다.

이는 단순한 우유부단함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과거와 민주주의적 미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계산된 전략이었다.


1990년 1월 22일 발표된 3당 합당

노태우의 정치적 천재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 민주정의당 + 통일민주당(김영삼) + 신민주공화당(김종필)
- "대타협"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진 전략적 동맹
- 의회 3분의 2 다수 확보를 통한 안정적 통치


공동 통치(cooptation) 전략

이후 한국 정치의 표준 모델이 되었고,

정치적 적대자를 파괴하기보다는

포섭하는 방식이 정착되었다.



5. 김영삼 (1993-1998)

문민정부의 상징성과 개혁 실패

7bbe1d5f-0971-4a70-b12e-eaf4b8cd821d.png

초월 충동 유형: 구원자 – 30년 군사통치의 종식자


김영삼은 30년간의 군사 통치 후

문민 상징성의 감정적 힘을 활용했다.


1983년 전두환에 대한 단식 투쟁을 포함한

수십 년간의 군사독재 반대 경력은

민주주의 투사로서의 감정적 신뢰성을 확립했다.

"비리와 부패는 우리 사회의 기반을 공격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취임사는

도덕적 십자군으로서의 위치를 명확히 했다.


주요 개혁 성과:

-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지하자금 양성화
- 전직 대통령 전두환, 노태우 기소
- '신한국' 비전과 세계화 정책 추진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

김영삼의 감정적 권위를 완전히 파괴했다.

지지율이 6%로 폭락하며

유능한 문민 리더십이라는 거버넌스 서사가 붕괴했다.



6. 김대중 (1998-2003)

화해의 정치학과 역사적 치유

8dabc94f-4064-44c6-9573-522812493ac4.png

초월 충동 유형: 구원자 – 지역 갈등과 분단 트라우마의 치유자


김대중의 감정적 거버넌스는

화해의 정치역사적 치유로 특징지어진다.


암살 시도, 가택연금, 사형선고 등

개인적 박해 경험은 국가적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도덕적 신뢰성을 확립했다.

햇볕정책은 이솝 우화에서 따온 감정적 은유로

힘보다 따뜻함이 우월하다는

대북 정책 프레임을 제공했다.


역사적 성과:

- 전라도 출신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지역 화해
-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국제적 인정
- 역사적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
- IMF 위기로부터의 경제 회복


그러나 북한에 대한 현금 지급 폭로는

정상회담의 감정적 유산을 손상시켰고,

경제적 혜택의 불균등한 분배는

새로운 좌절의 원천을 창출했다.



7. 노무현 (2003-2008)

386세대 정치와 참여민주주의

42d6ec01-4326-4079-a89b-c32558c823be.png

초월 충동 유형: 촉매자 – 세대교체와 디지털 민주주의


노무현의 대통령직은

386세대의 감정적 권력 진입을 대표했다.


가난한 배경의 독학 변호사로서

전통적 엘리트 정치에 대한 감정적 반란을 구현했다.

인터넷 기반 소통을 활용해

젊은 유권자와 감정적 연결을 창출하며

디지털 민주주의를 개척했다.


주요 특징:

- 오마이뉴스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직접 소통
- 역사 기록물 비공개 해제와 열린 정부 추진
- 2004년 탄핵 위기를 오히려 지지 기반 강화의 계기로 활용


그러나 경제 침체와 인식된 무능함은

감정적 지지를 침식했고,

2009년 비극적 자살은

순교와 실망이 혼재된 복잡한 감정적 유산을 창출했다.



8. 이명박 (2008-2013)

CEO 대통령과 실용주의의 한계

dd9d72b6-a6e9-4bbd-baa1-eeeaaf2409ce.png

초월 충동 유형: 촉매자 → 파괴자 – 비즈니스 실용주의의 변질


이명박의 대통령직은

비즈니스 실용주의

건설국가 감정성으로의 전환을 나타냈다.


현대건설 성공 스토리를 활용해

유능한 경제 관리자로서 감정적 신뢰성을 확립했다.

이념 정치 대신 일을 완수하는 것의

감정적 호소력을 촉진했다.


주요 정책:

- 4대강 사업과 메가 프로젝트를 통한 국가 발전 상징 창출
- 개인적인 개천에서 용 난 스토리로 서민 친화적 이미지 구축
-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경제 활성화 도모


그러나 4대강 사업은 환경 파괴와 부패의

감정적으로 유독한 상징이 되었다.

2008년 광우병 시위는 대중 감정 관리 실패를 드러냈고,

소통 스타일은 오만하고 단절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9. 문재인 (2017-2022)

적폐청산의 역설과 진영 논리의 함정

40723bd9-0f98-452e-91be-9518ef9371f3.png

초월 충동 유형: 구원자 → 파괴자 – 도덕적 순수주의의 전도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의 정당성을 등에 업고 출범했지만,

집권 과정에서 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역설을 보여주었다.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의 상징적 정책이었지만,

실제로는 권위주의적 통치의 도구가 되었다:

- 39개의 태스크포스를 통한 이전 보수 정권 조사
- 제도적 무기화(institutional weaponization)의 전형적 사례
- 사법부 독립성 훼손과 편향된 검찰 인사


주요 정책 실패:

- 부동산 정책: 서울 아파트 가격 58% 상승 (2017-2021)
- 탈원전 정책: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원전 산업 파괴
- 최저임금 인상: 청년 실업률 25% 급등과 중소기업 88% 폐업


문재인 정부의 감정적 지배 방식은

도덕적 이분법에 기초했다.

보수 세력을 "친일파", "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을 정의의 수호자로 위치시켰다.



10. 윤석열 (2022-2024)

검찰 공화국의 몰락과 계엄령의 악몽

c9352c03-7b7d-4eff-9c7c-fd49638e9f42.png

초월 충동 유형: 파괴자 – 검찰적 극단주의의 민주주의 파괴


윤석열의 집권은 한국 정치사에서

비정치인 출신 대통령의 실패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27년간의 검찰 경력은 그에게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치명적 약점이 되었다.

그는 정치적 반대자를 협상 파트너가 아닌

"범죄 용의자"로 보는

검찰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건희 리스크는 윤석열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 주가 조작 스캔들과 명품백 스캔들
-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 확인
- 명태균과의 선거 개입 의혹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

한국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자해 쿠데타(autogolpe) 시도였다:


배경: 17% 지지율, 야당의 압도적 의회 다수, 22건의 탄핵 소추안


과정:

- 22시 23분: 긴급 대국민 담화

- 22시 27분: 계엄령 공식 선포

- 새벽 1시: 국회 190명 만장일치로 계엄령 해제 의결

- 새벽 4시 30분: 계엄군 철수


결과:

- 12월 14일: 204대 85로 탄핵 소추안 가결

- 2025년 1월 15일: 현직 대통령 최초 체포

-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 8대 0 탄핵 인용



10. 한국 정치사와 초월 충동의 교훈

e7e734ee-aeec-41bb-a3a6-cbc264334d35.png

한국 현대 정치사를 통해 본 초월 충동의 진화는

다음과 같은 패턴을 보여준다:


(1) 구원자 충동의 변질

이승만,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의 사례에서 보듯, 구원자적 열망은 종종 권위주의적 통치나 진영 논리로 변질된다.


(2) 촉매자 충동의 성공과 실패

박정희, 노태우, 노무현은 변화를 촉진했지만, 이명박처럼 비즈니스 논리가 정치에 부적절하게 적용되면 실패한다.


(3) 파괴자 충동의 위험

전두환과 윤석열의 사례는 파괴적 초월 충동이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4) 신비주의의 지속성

모든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신비주의적 요소에 의존했으며, 이는 한국 정치 문화의 구조적 특성이다.


결국 한국 정치의 성숙은

초월 충동을 건설적이고 민주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키는

제도적, 문화적 역량에 달려 있다.



11. 총정리

한국 정치와 신비주의의 구조적 관계


(1) 신비주의의 지속적 영향


박근혜-최순실, 윤석열-천공·건진법사 사례는

한국 정치에서 신비주의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현상임을 보여준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문화적 배경에서 나타난다:


- 무속 신앙의 지속: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무속 신앙은 현재도 30만 명 이상의 무속인이 활동하는 거대한 문화 영역이다.


- 유교적 운명관: 하늘의 뜻(天命)에 따라 권력이 정당화된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현대 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 급속한 근대화의 부작용: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불안과 불확실성이 초월적 해답에 대한 갈구를 증대시켰다.



(2) 초월 충동의 정치적 변질 패턴


한국 현대 정치에서 초월 충동은

다음과 같은 패턴으로 변질된다:


1단계 - 존재 불안: 정치적 위기나 개인적 트라우마로 인한 존재론적 불안

2단계 - 구원 추구: 초월적 해답이나 신비적 조언에 대한 의존

3단계 - 권력 결합: 신비주의적 충동이 정치적 권력과 결합

4단계 - 현실 왜곡: 현실 인식 능력의 상실과 극단적 결정

5단계 - 체계 붕괴: 개인과 제도 전체의 몰락



(3) 민주주의의 회복력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은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의 강력한 회복력도 보여준다.


2016-2017년 촛불혁명과

2024년 12월 3일의 즉각적 저항은

한국 시민사회가 권위주의적 퇴행에 대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증명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저항이 단순한 정치적 반대가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4) 미래를 위한 교훈


한국 정치가 신비주의의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고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 제도적 견제 장치 강화: 개인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제약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

- 정치 문화의 합리화: 신비주의적 의존보다는 합리적 토론과 증거 기반 정책 결정

- 시민 교육의 확대: 민주주의 원칙과 비판적 사고 능력 함양

- 다원주의 수용: 정치적 반대자를 적이 아닌 민주주의의 구성원으로 인정



(5) 마무리


한국 현대 정치에서 신비주의는

개인의 정치적 실패를 넘어

민주주의 체제 전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 요소로 작용해왔다.


박근혜-최순실은 구원자 충동이 기생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윤석열-천공·건진법사는 파괴자 충동이 체제 전복으로 이어지는 과정

각각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의 시민사회와 민주적 제도는

이러한 위협에 대해 강력한 저항력을 보여주었다.


초월 충동 자체는 인간 정신의 본질적 특성이지만,

그것이 정치적 권력과 결합할 때는

반드시 민주적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

한국 현대사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keyword
이전 12화제3부-6: 초월 충동을 다시 정직하게 꺼내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