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侍)가 있는 풍경 1-여산(廬山)

여산, 여산고도(廬山高圖), 소동파, 칼릴지브란, 류시화, 고통

by 시산

고요한 물살 위

서쪽 하늘에서 흘러온 물이
그의 발을 씻어 내리고
아침저녁으로 구름과 노을을
들이마시고 내뿜네
(西來天壍濯其足,雲霞日夕吞吐乎其胸)

- 심주(沈周, 1427-1509)


1. 시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여산(廬山)


중국 장시성에 있는 명산 '루산(여산-廬山)'은 시인들을 비롯한 중국 문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산이다.


당송시기 여산을 왕래한 시인은 170여 명에 달하고, 역대 여산 관련 시는 4,200여 수에 달한다. 한마디로 여산은 당시 중국인들에게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창작의 원천을 제공한 곳이었다.

출처: 구글맵 캡처

여산 전 지역에는 도교, 천주교, 기독교, 동방정교, 이슬람교가 공존하며, 도처에 서당, 불교사원, 도관, 교회가 즐비해있다.


여산 문화는 화합과 공존을 추구하였으며 이러한 너그러운 문화융합은 여산 문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다원문화를 수용하면서 “화(和)”를 추구하는 여산의 독특한 문화적 속성을 대변한다.

여산의 오로봉(五老峰)에서 본 부처의 후광(Buddha’s Halo, 불광-佛光), 출처: 유네스코
Buddha’s Halo (부처의 후광 / 불광 佛光): 고산지대에서 태양을 등지고 서 있을 때, 안개나 구름에 자신의 그림자가 투영되며 그 주위로 원형 무지개 같은 후광이 생기는 자연 현상. 티베트, 중국, 일본의 불교 성지에서 자주 관측되며, 이를 신성한 체험으로 여기는 전통이 있다.

이런 문화적 측면으로 여산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이 아닌 문화유산이다.



2. 여산(廬山)을 사랑했던 소동파

여산진면목


우리가 소동파로 알고 있는 송나라 대문호 소식(蘇軾)(호: 동파(東坡))은 여산을 사랑했다.


소동파는 모처럼 기회를 얻어 48세 되던 1084년 여산(廬山)을 방문했고, 아래 題西林壁(제서림벽)이라는 시를 남긴다.


제서림벽은 '서림사(西林寺)의 절벽에서 시를 짓다'라는 의미다.


비스듬히 보면 능선, 옆에서 보면 봉우리

멀게 가깝게 높게 낮게 시시로 다르게 보인다네

여산의 참된 모습을 알기 어려운 것은

이 몸이 지금 이 산속에 있기 때문일세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그는 여산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보기 위해 여러 날 애를 썼지만 여전히 여산의 진정한 면모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여산은 운무로 둘러 쌓여 있는 날이 많다.

Flowing Clouds and Valleys (구름이 흐르고 골짜기가 숨 쉬는 여산의 풍경), 출처: 유네스코

이런 느낌을 시에 담아 표현한 ‘여산의 참모습을 모른다’는 의미의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은 후대 앞의 두 글자를 빼고 ‘廬山眞面目(여산진면목)’이라는 성어가 되어 ‘어떤 사태나 사물의 본질’을 가리키는 성어로 사용되었고,

우리가 사용하는 '진면목'의 기원이 되었다.

참고로 소식은 미식가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그가 개발한 레시피의 요리는 그의 호를 따서 동파육, 동파족발, 동파두부 등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3. 우리 삶의 진면목

칼릴지브란 예언자 중 '고통에 대하여'


우리는 현재 처한 '어려운 상황'에 매몰되어 그러한 어려운 상황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가치'를 모르고 낙심하며 힘들어할 때가 많다.


우리는 '삶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우리 삶의 진면목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힘든 시기'속에 갇혀 있을 때는 그 시기가 얼마나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성숙시키는 축복의 시간이 되는지 알기 힘들다.


그래서 그토록 '힘들었던 시기'를 빠져나와야, 마치 헬리캠을 통해 '여산'밖에서 여산을 바라보듯이, 비로소 과거를 돌아보며 힘들었던 시절의 아름다움과 참된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여산의 겨울, 출처: 유네스코

여러 시인들은 이 '고통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그중에서도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고통에 대하여(On pain)'는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역시 시인은 남의 시를 자신의 것으로 토해낸다.



칼릴지브란 예언자 중 '고통에 대하여'

The Prophet, Kahlil Gibran, On pain


이번에는 한 여인이 말했다.

우리에게 고통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가 대답했다.


그대의 고통이란

그대의 깨달음을 가두고 있는 껍질이 깨어지는 것.


과일의 씨도

햇빛을 보려면 그 굳은 껍질을 깨야 하듯이,

그대 역시 고통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 만일 날마다 일어나는 삶의 기적들을

가슴속에 경이로움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고통도 기쁨처럼 경이롭게 바라볼 것을.


그러면 들판 위로 지나가는 계절에

언제나 순응해 왔듯이

그대 가슴속을 지나가는 계절도 기쁘게 받아들이리라.


그리하여 그대 슬픔의 겨울들 사이로

고요히 응시할 수 있으리라.


그대의 고통 대부분은 그대 스스로 선택한 것.

그것은 그대 내면의 의사가

그대의 병든 자아를 치료하는 쓰디쓴 약과 같다.


그러므로 그 의사를 신뢰하라.

그리고 그가 내주는 약을 평화와 침묵으로 마시라.


왜냐하면 그의 손이 아무리 매섭고 가혹할지라도

그는 저 '보이지 않는 이'의 부드러운 손길에

인도되고 있으므로.


또한 그가 내주는 잔이 그대 입술을 태울지라도,

그 잔은 저 '도공'이 자신의 성스런 눈물로

반죽한 흙으로 빚은 것이므로.


AND a woman spoke, saying, Tell us of Pain.

And he said:


Your pain is the breaking of the shell that encloses your understanding.


Even as the stone of the fruit must break,

that its heart may stand in the sun, so must you know pain.


And could you keep your heart in wonder at the daily miracles of your life,

your pain would not seem less wondrous than your joy;


And you would accept the seasons of your heart,

even as you have always accepted the seasons that pass over your fields.


And you would watch with serenity through the winters of your grief.


Much of your pain is self-chosen.


It is the bitter potion by which the physician within you heals your sick self.


Therefore trust the physician,

and drink his remedy in silence and tranquillity:


For his hand, though heavy and hard,

is guided by the tender hand of the Unseen,


And the cup he brings,

though it burn your lips,

has been fashioned of the clay

which the Potter has moistened with

His own sacred tears.


구름이 흐르는 여산, 출처: CCTV

4. 시산(詩産)의 메아리

고통의 바람, 마음의 항해


고요한 물살 위

작은 배 한 척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조용히 밀려간다


흔들리는 돛

나는 묻는다


"저것은 바람을 받는 천인가

아니면 내 안의 마음인가"


가만히 갑판 한켠에서

흔들림을 바라보는 나


그제야 안다

고통은 나를 무너뜨릴 수 없고


그 따스한 손길은

게으른 나를 깨워

내가 떠나야 할 곳에서

떠나게 해주는 것임을

이 이미지는 시산(詩産)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AI 도구를 사용하여 생성되었습니다. CC BY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5. 여산고도(廬山高圖)의 시문(詩文)

여산고(廬山高)


표지 그림인 심주의 여산고도 그림에 적혀있는 시문 여산고를 국문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산고(廬山高)여산고(廬山高)


)여산고

여산은 높도다 아 얼마나 높은가

이백 오십 리의 울창한 숲이 둥지를 틀고 있으며

이천 삼 백 척의 높이까지 가파른 봉우리가 솟아 올라가는 곳

바로 부천원(敷淺原, 여산 일대의 옛 말)을 일컫는다


어찌 작은 언덕들이 감히 여산과 자웅을 겨루겠는가

서쪽 하늘에서 흘러온 물이 그의 발을 씻어 내리고

아침저녁으로 구름과 노을을 들이마시고 내뿜네


휘도는 절벽과 겹겹의 봉우리들은 귀신의 손이 갈라놓은 듯하고,

협곡의 길은 천 길이나 뻗어 홍몽(鴻蒙, 천지개벽)을 열었도다

폭포는 소리 내며 끝없이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땅을 울려 귀가 멀어지려 하도다


때로 그 사이에 낙엽이 떨어져

곧장 팽려호(*)로 흘러가 붉게 서리 내린 듯 물든다

(* 중국 최대의 담수호인 지금의 포양호)


황금빛 기름과 옥빛 물(뛰어난 인재)은 찾을 수 없고,

돌무더기 숲은 어둡고 깊어 푸른 곰이라 불리도다

태양이 비치는 곳에는 오로봉 굳게 서 있으니

혹자는 별의 정기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 하도다


(중략: 스승 진관(陳寬)에 대한 내용)


여산의 높이는 오를 수 없도다

구름과 안개 위에 있고, 바람과 비의 관문이로다

위로는 날아오르는 폭포가 있고, 아래로는 깊은 못이 있도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푸르고, 원숭이와 새들은 한가롭도다


나는 이를 따라 꿈속에서 그 사이를 노닐도다

깨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마음이 허전하도다

어떻게 하면 신선을 만나 날개를 빌려,

날아가고 날아와 그대와 함께 머물리오


6. 여산의 영상감상


아래 짧은 두 영상을 통해 여산의 일면목을 감상하자.

유네스코 영상

(표지 그림: 여산고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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