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구녕 이효범
어느 날 컵에 있는 물이
화가 난 듯 거칠게 말했다.
나를 물로 보지 마세요.
아니, 너는 불이 아니고
내가 마시는 물이야.
그 말에 더 화가 난 듯 물이 소리쳤다.
나는 시간처럼 흐르는 것이지
정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영혼처럼 생기 있는 것이지
딱딱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언어처럼 투명한 것이지
색깔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비록 거시기일망정
그 무엇은 결코 아닙니다.
그 무엇이 아니라면 그 무어란 말인가.
나는 늘 낮은 곳으로 향해요.
나는 늘 유약한 생명과 함께 하지요.
나를 그냥 물로만 보지 않으면
당신은 비로소 진리를 볼 수 있어요.
나는 물의 말을 가만히 듣고 나서
알 듯 모를 듯 엷게 미소를 지으며
컵에 있는 물을 남김없이 마셔버렸다.
후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람들과 관계가 끊어지니 자연과 접할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매일 세종호수공원이나 아파트 앞에 있는 금강 둑을 걸으면서 물을 접한다. 예전부터 물은 내게 참으로 친근하고 신비스러웠다.
그래서 아마 서양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탈레스도 지중해 해변에 살면서, 세상을 구성하는 근원적 요소를 물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물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얼음과 같은 고체, 수증기와 같은 기체, 물과 같은 액체를 유지하는 독특한 물체이다. 우리 몸도 70%가 물이다. 탈레스는 비록 물이라고 했지만 그가 묻고 찾았던 세상의 근본적인 原質은 무엇인가? 지금도 탈레스의 후손인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이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그것은 정신인가? 물질인가? 그것은 단지 쿼크와 같은 입자에 불과한가?
세상을 정확히 아는 것이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진리이다. (진리를 이렇게 인식론적으로 좁게 한정시킬 수 있을 런지는 더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래서 진리는 물을 물이라고 하고, 불을 불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물은 진정으로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