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구녕 이효범
거울을 보니
똥덩어리 하나 떠 있다.
이크, 재수 없는 것
얼른 피해야겠다.
내가 봐도 그러한데
남이 보면 오죽할까.
후기:
거울을 보기가 두려워졌습니다. 35세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데. 이제 얼굴은 제멋대로 굴러가 막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보석처럼 곱게 늙는 것이 참으로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일부는 나의 책임일 것입니다. 퇴직 이후에는 웃을 일이 별로 없어졌습니다. 세상은 코로나가 창궐하고, 사람들은 염치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웃을 일이 있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으면 웃게 된다고 말하지만, 억지로 크게 소리 내어 웃는 것도 어색하고 또한 마음대로 되지도 않습니다. 오래 웃지 않으니까 얼굴이 독재자의 얼굴처럼 근엄하고 살벌해졌습니다.
혹 내면에 사랑의 마음이 꺼지지 않는다면 얼굴에도 자비스러운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겠지요. 사랑은 남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고 그의 기쁨과 슬픔이 나의 기쁨과 슬픔과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의 에너지는 오랜 삶 속에 너무나 많은 실망과 상처 때문에 이제 거의 소진된 것 같습니다.
내면이 마른 인간은 생기가 사라진 고목과 같습니다. 봄이 와서 뭇 꽃들이 피어나고 새들이 흥겹게 지저귀는데, 고목은 그런 분위기를 망칩니다. 나의 얼굴이 그럴까 봐 나는 한없이 조심스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