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시간이 내 편이었다. 제대 한 달 전!
마지막 일직근무인데, 밤새 투하된 당직사관의 개똥철학 어택에 뇌신경은 푹 퍼진 우동사리가 되어버렸다. 모자 벗고 앞단추 풀어헤치며 내무반에 들어오는 순간, 찬물에 헹군 면발처럼 정신이 탱탱해진다.
평소 아끼던 이등병 막내 녀석이 내무반 명당자리에 각 잡힌 매트리스와 침낭으로 말년병장용 특급호텔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 위에 가지런히 정돈된 세면도구! 호텔 웰컴기프트가 따로 없다.
그 소리 없는 배려는 취사장에서 갓 튀겨낸 건빵에 설탕 대신 연유를 뿌린 맛이었다.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생선튀김의 가운데 토막만 쏙 발라먹는 느낌이랄까. 난 지상 최고의 평온함을 누리기 직전이다.
훈련도, 검열도, 특별한 작업도 없는, 그저 따사로운 햇살만이 가득한 완벽한 봄날의 토요일이다. 교체된 일직사관은 상급자 대신 대체근무를 서게 된 젊은 부사관. 산책대신 목줄 쓰고 기둥에 묶인 견생 같다.
어떤 녀석이 비디오 하나 빌려보자고 넌지시 들이대자, 뒤늦게 밥통에 눌어붙은 고기국물 발견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면서 허락한다. 제목은 <식스센스>.
대충 전투 세면을 마치니 정신도 말짱해졌다. 세기의 명작이라는 소리에 나도 집중해서 감상을 시작했다. 브루스 윌리스가 부인과 뜨거운 밤을 보내려는데, 웬 미친놈이 빤스만 입고 들어와 중얼거리더니 총을 쏴버린다. 브루스 주인공은 그대로 쓰러지고……. 그 외에 다른 사건은 없다. 재미는 무슨, 밤새 들은 개똥철학들이 벌레처럼 기어 나오는 것 같았다. 누적된 피로에 어느새 의식의 퓨즈가 나가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자 정적에 쌓인 내무반이 기묘하다. 여남은 개의 빡빡이들이 TV 화면 앞에 미동도 없이 모여 있는데 마려운 똥 꾹꾹 밀어 넣으며 주인이 주는 간식을 기다리는 똥개들 같다.
모처럼 일치단결된 변견들의 관심사가 궁금하다. 느릿느릿 대열을 비집고 한가운데 엉덩이를 포갠다.
그런데…어? 잠깐.
이런 것도 짬밥인가. 영화초반 분명히 총을 맞고 쓰러졌던 브루스 윌리스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히 돌아다닌다. 유리컵 깨지는 장면을 역으로 재생하는 것처럼 뭔가가 맞춰진다. 무지몽매한 똥개들 계몽시킨다는 선의 따위는 너무도 귀찮았지만, 총 맞았던 놈이 멀쩡히 돌아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야, 저 새끼 귀신 아니냐?”
수십 개의 똥개 눈알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고기 듬뿍한 뼈다귀를 눈앞에서 강탈당한 애절한 눈빛들. 희열에 차서 꿈틀대다 고여버린 멀건 침만 갈곳 없이 굴려야만 하는 야속한 혓바닥들… 실수로 밥통을 차버린 느낌.
막내는 좀 안쓰러웠다. 불침번 마치고 말년의 엄호아래 뽀글이 끓여 먹는데, 그 영혼의 뽀글이가 마우스(mouth) 인풋직전 터진 봉투로 산화하여 나무젓가락만 빨고 있는 것 같은 가여운 작대기 하나.
난 아무 잘못 없다. 밤새 개똥철학 어택으로 풀려버린 뇌의 나사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을 뿐(막내한테 뽀글이나 하나 만들어줄까……)
식스센스가 왜 최고의 스릴러 영화로 인정받는지, 난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