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와우 낙화장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들이 속절없이 날리는 봄날의 아침, 밤새 이어진 비바람은 봄의 절정을 화려한 장례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눈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분홍빛 꽃잎들에 고정되었지만 다리는 여느 때처럼 바쁘게 내딛고 있었다. 갑자기 개똥이라도 발견한 듯 무릎이 브레이크를 걸었고 앞으로 내딛던 발은 “뭔데?” 하며 움찔했다.
아스팔트 바닥 위, 아주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힘겹게 기어가고 있었다. 위험한 줄도 모르고 더듬이를 쫑긋 세운 채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잠시 넋을 놓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한여름에 분수대 위를 뛰어가는 어린아이 같았다.
문득 섬뜩한 생각이 스쳤다. ‘이 빗길에 밟힌 것들도 있겠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자, 제구실을 못 하고 뭉개진 여린 생명의 흔적들이 보였다.
트럭에 뭉개진 작은 돌멩이 조각들, 총칼이 난무했던 백병전이 끝나고 혼이 빠져나간 육체들이 스러진 전쟁터, 남편과 오빠를 잃은 여인네들처럼 빗물에 쓸린 벚꽃들이 만드는 아우성……
잠시나마 뭉개진 정신을 다잡기 힘들었다. 길 한복판에는 빗물에 쓸려 파닥이는 지렁이도 보인다. 곧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쬐면 빗물 대신 시꺼먼 개미들에 둘러싸이겠지…
스위치는 빠르게 내려지고 있었고 전등들은 차곡차곡 꺼져갔다. 녀석들 전부 다른 곳으로 옮겨주고 싶었지만, 너무 많다……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출근해야 했으니까.
사무실에 앉아서도 내내 궁금했다. ‘녀석들은 도대체 왜 이 위험한 곳으로 나오는 걸까?’아니, 비 오는 날이면 달팽이뿐만 아니라 지렁이들은 왜 또 나오는 걸까
녀석들이 목숨을 걸고 땅 위로 올라오는 이유는 허무할 만큼 단순했다. 흙 속을 채운 물이, 살기 위한 숨구멍을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야만 되는 것이었다.
그 작은 생명체가 살기 위해 나온 길 위에서 죽을 줄은 상상이나 했을까. 죽을 줄 알았으면 나왔을까. 나오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가만히 있어도 죽을 판인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야만 되는 것이었다……나도…그랬다…… 나도 살기 위해 이 빗속을 뚫고 나온 것이고, 일터로 향하는 위험한 도로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다.
오늘 사고가 날 줄 알았다면 누가 차를 몰고 집을 나섰을까? 산 물건에 문제가 있을 줄 알았다면 누가 기꺼이 지갑을 열었을까? 문제가 될 줄 알았다면 누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좌이체 버튼을 눌렀을까.
응축된 수증기는 내려와야 했고, 달팽이는 숨을 쉬어야 했으며 출근하는 사람들은 도로를 밟아야만 했다. 그게 전부다. 부스러진 돌멩이들이 생성된 이유.
그게 전부다. 숨을 쉬기 위해,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각자의 길을 나섰지만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발자국들이 우리 위에서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기어가는 달팽이나 세상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이나 별다를 바 없다.
퇴근하며 아침의 그 길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더 이상 벚꽃은 날리지 않았고 추적추적하던 비도 없는데, 달팽이 한 마리가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마디 하는 것 같았다. ‘내일은 비가 오지 않아, 난 나갈 필요 없어, 근데 넌 내일도 이 길 위에 서 있어야 되는 거야?’
…… ‘그래… 그렇지……’
그래
숨을 쉬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하지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화려한 장례식이 아니다. 벚꽃처럼 온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이름 없이 평온하기를 바란다.
비 오지 않는 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조용히 흙 속에서 숨 쉬는 저 달팽이처럼 그저 차분한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내가 내일 이 길 위에 다시 서는 이유이자, 소박한 나의 희망이다.
화려함은 벚꽃이 만들면 충분하다.
나의 인생은,
화려한 장례식이 아닌
차분함 뒤의 장례식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