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와인통

by lightjc

수직으로 솟구치다 옆으로 흐르는 뭉게구름. 찬물에 퍼져가는 먹물처럼 붉게, 검붉게 스며든다. 저녁이 되자 끈적한 안개비가 팔등을 적신다.


퇴사 후 10일 차.


이렇게 큰 숨을 쉬어 본 적이 있었을까. 하루 종일 서울의 모든 공기를 들이마신 듯하다. 지하철에 이렇게 많은 자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입사보다 어렵지만 그 보다 더 상큼했다. 하나만 빼면.


1년 전 퇴사하신, 퇴사당하신, 성인태 과장님. 야심 차게 "세게위인전집" 차리시고, 커다란 막걸리통도 5개나 놓으시고, 그러다 그러다, 또다시 들러붙는 이상한 기운들...... 전화를 눌러본다. 벨소리만 길게 울리다 멈춘다. 메시지만 하나 보내 본다.


다시 걸어가는데 도착한 메시지 하나.


‘덕분에 가게는 잘 정리했어. 인간들한테 애 병원비도 조금 받았고’

‘내일 진아나 한번 보고, 난 대구에 있는 형에게나 가보려고. 잘 지내.’


숨을 크게 들이쉬고 걷는 그녀..... 다시 스마트폰을 든다

‘과장님, 잠시 뵐 수 있을까요 잠깐만, 진아에게 전해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서요’

‘…………’


‘그럼... 지금 가게 앞으로 와 주실 수 있나’

민정희는 얼른 인형 하나 사 들고 뛰어간다.


...... 불빛도, 바람도 없는데 ‘세계위인전집’이라는 간판만 멋쩍게 비친다. 빠르게 걸어서 문 앞에 왔지만 문에 손을 대지는 않고 서 있다. 고개를 내밀고 안을 살펴보는데 조용히 들려오는 발소리, 점점 커지는 발소리, 뒷걸음질 친다. 문이 열리더니 검은 냉기 덮쳐오고 상체가 빨려 들어간다. 무릎이 풀리는 민정희.



‘어둡고 텁텁하다. 뭔가 번쩍이는 듯했는데, 감전된 듯 저린 코 속에서는 알코올 냄새가 시큼하고 손발이 저릿하다. 근데 앞에 있는 저 통들은 뭐지? 안에서 뭐가 꿈틀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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