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는 안 돼, 시혜를 베풀어 주마

by lightjc

요란해진 막걸리통, 4번 5번.


머리 위에서 교반기가 서서히 내려온다. 회전이 없고 속도는 느리지만, 하강이 멈추지를 않는다. 그들은 입을 벌리고 내려오는 물체를 쳐다본다.

“살려줘, 어떻게든 해봐”

“펌프질 한 번 해봐”

최상견이 소리치고 꾸부정하게 일어선 김세전과 진형세가 얼굴에 막걸리를 튀기면서 펌프질을 한다.


“좀 더 해봐, 뭔가 소리가 달라졌어”

“그런 거 같아. 더, 더 눌러봐”

나머지 사람들이 응원하듯 소리친다. 4번 김세전의 교반기는 서서히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5번 진형세 쪽은 하강만 멈춘 것 같다. 두 사람의 얼굴이 시뻘게진다.


“아, 더는 못 하겠어”

얼굴이 땀과 막걸리로 범벅이 된 김세전이 주저앉는다. 그런데 그의 교반기는 계속 멈춰 있고 진형세의 것이 다시 우웅 소리를 내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왜 이래 이거, 계속 누르는데 왜 또 내려오는 거야”

최상견이 펌프질을 해 본다. 차영치와 주양직도 따라 한다. 다시 소리가 잦아드는 것 같다.

“김세전 이 새끼야! 너도 계속 눌러봐”

진형세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친다. 김세전이 다시 펌프질을 하자, 두 개의 교반기가 올라간다. 김세전의 것이 먼저, 이후에 진형세의 교반기가 다 올라간 뒤 소리가 멈췄다.



* * *


절인 배추처럼 늘어진 진형세와 김세전.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한동안 펌프질을 멈추고 앉아 있다.

“아, 펌프질 좀 쉬었더니 이제는 왜 숨이 막히냐, 숨을 쉴 수가 없어”

“나도 그런 거 같아”

“또 눌러봐 이 병신들아”

“아! 담배나 피우고 싶다”


주양직이 앉아서 소리친다. 숨이 막히지는 않지만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갑자기 10년 정도 된 고아원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 이후엔 친구라고 할 사람들이 없었다. 근데, 내 스마트폰은 어디에 있을까. 성인태가 망치로 머리를 친 이후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수백 개, 수천 개의 배달을 그냥 보내지 않았을까. 배터리는 이미 꺼지지 않았을까.


진형세와 김세전이 앉은 채로 펌프의 손잡이를 눌러본다. 서 있을 때 보다 누르는 속도가 느리다. 곧이어 일어나서는 통 위쪽으로 바짝 고개를 들이대더니 손잡이를 누를 때마다 ‘흐읍, 흐읍’하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답답해 죽겠네”

주양직이 일어나서 펌프질을 한다. 누를 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막걸리도 한 모금 마신다. 차영치, 최상견도 따라 하는데 진형세가 소리친다.

“오, 숨쉬기가 더 편해졌어. 막걸리도 나오고… 좀 더, 좀 더 펌프질해 봐!”


진형세와 김세전이 더 열심히 펌프질 하는데, 차영치가 한동안 손을 놓더니 말한다.

“근데, 난 가만히 있는데도 막걸리가 나오네. 공기도 더 들어오고”

“그러네, 아랫것들이 움직이니까 가만히 있어도 되네”

주양직도 한마디 한다. 그들은 이제 앉아서 쉬고 있다.


“일 좀 해, 이 나부랭이 새끼들아”

진형세가 소리친다.

“뭐 이 새끼야!”

“아니요, 좀 도와주세요. 주…...사장님”

“네, 사장님 부탁입니다”

“누가 사장이야!”

“주양직 선생님이요, 주양직 사장님”

“아, 일하기 싫어?”

“아닙니다 차영치 전무님. 부탁드립니다. 전무님, 아니 부사장님 덕분에 제가 살 수 있어요”


모두들 일어나 펌프질을 한다. 다시 통 5개에 불빛이 들어오고 사람들의 숨소리가 부드러워진다. 오랜만에 5개의 불빛이 전부 반짝거린다.


최상견이 한 손으로 펌프질을 하며 바닥에 떨어진 종이 하나를 읽어본다. 낙찰자 진명석이 이 상가의 소유권을 취득했으니 관계인 외 출입을 삼가라는 공고문이다. 최상견이 직접 작성해서 진명석에게 상가입구에 붙이라고 준 것인데, 누군가가 보고는 바닥에 버린 것 같다.


“차대리, 이 상가 진사장님 사촌 명의로 낙찰받고 인도 명령 신청했지?”

“몰라요, 그때 주신 서류 법원에 접수하긴 했어요”

“됐어, 곧 집행관 온다”

“집행관!”

“집행관!!”


모두들 일제히 일어나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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