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세가 순식간에 1위로 올라갔고, 최상견은 제일 끝에서 가끔 힘들게 펌프를 누르면서 ‘집행관, 집행관’하고 중얼거린다.
“그래, 집행관 금방 올 거야. 이제 좀 편하게 쉬면서 기다리자”
어제 운동하고 씻지도 못했는데, 성인태로부터 입은 상처와 함께 온몸이 땀과 피와 막걸리로 범벅이 되어 있다. 상의 티셔츠를 벗으려는데, 문득 자신이 처량해진다. 하루 종일 일하고 운동하고 혼자 일어나면 곧 회사다. 운동 안 하면 사람들 만나 쓸데없는 이야기에 술이나 먹는데 다시 혼자 일어난다. 몇 년째 같은 생활이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가족들과 같이 비행기를 타고 있었을 텐데……
* * *
[같은 시각, 미국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진형세의 딸이 말한다.
“엄마, 근데 이번 주에 아빠 오신다고 안 했어?”
“지난주에 온다더니 아직까지 연락 없다. 얼른 가자. 비행기 놓치겠다”
“상습범이지. 에이, 모르겠다”
엄마가 딸을 재촉하며 프랑스행 국제선 게이트로 들어선다. 아들은 이미 그들보다 앞서가고 있었다.
* * *
진형세가 주저앉아 쉬는데, 갑자기 지하실 전체가 환하게 밝아진다.
“어, 사장님!”
"사장님! 저 진아랑 잘 놀아주고, 열심히 일했잖아요. 그래서 용돈도 많이 주시고……저는 사장님 부하잖아요, 다르잖아요!”
"사장님, 제 덕에 계약하고 장사 잘 됐지요? 제가 수시로 무료 알바도 해 드렸는데, 저도 밑바닥이에요, 저도 저 사람들하고 다른 거 아시잖아요"
주양직과 차영치가 펌프질을 멈추고 유리벽에 매달려 소리친다.
성인태가 버튼 두 개를 누른다. 주양직과 차영치의 위에서 교반기가 내려온다.
“아, 아… 잘못했습니다.”
“조용히 할게요 사장님. 조용히 할게요!”
“악”
“아악”
교반기는 계속 내려온다. 주양직과 차영치가 주저앉는다. 최상견과 김세전은 거의 기절한 상태고, 진형세 혼자 입을 막고 키득거린다.
성인태가 다시 버튼 두 개를 누른다. 진형세의 통이 금빛으로 반짝거린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 진형세는 열심히 펌프를 누른다. 그런데 ‘윙, 위이잉’하는 두 개의 기계음이 들리더니 교반기가 내려온다. 진형세는 더 펌프질을 해대지만 교반기는 멈출 줄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통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금색에서 보라색, 파란색, 백색, 회색으로 통 색깔이 순식간에 바뀐다. 색깔이 바뀔 때마다, 통이 아래로 이동할 때마다 진형세의 등과 허리가 점점 굽어진다. 결국은 주저앉는다.
정신을 차린 최상견이 열심히 펌프질을 해대더니 본래의 파란색으로 돌아왔다. 이제, 모두의 순서는 다시 처음으로 원위치되었다. 그리고 이제 최상견뿐만 아니라 김세전과 차영치도 ‘집행관’ 읊조림에 동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