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에서 기어 나온 민정희는 한동안 바닥에 누워있었다. 며칠째 웅크리고 있어 펴지지 않는 몸이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들러붙고 있었지만, 충분히 숨을 들이쉬고 일어난다. 잠깐 비틀거렸지만, 똑바로 걸어가더니 수도꼭지 하나를 찾아냈다. 입고 있던 속옷을 다 벗어던진다. 빨간 호스가 꿈틀거리며 찬물을 뿌려대자, 날것의 온몸이 탱탱해진다. 웅크렸던 몸이 매끈하게 부풀며 솟아오른다.
민정희는 쌍둥이 자매가 놓고 간 빨간색, 파란색 옷을 입었다. 얼굴도 모르는 여대생들의 옷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간다. 천천히 손잡이를 돌리다, 다시 계단을 내려온다. 오색으로 빛나던 술통들이 조용한데, 그 안에서 유리벽에 얼굴을 묻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동안 술통들을 바라보고는 한쪽 벽에 있는 버튼에 손을 얹어본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버튼을 누른다.
“술통이 아니라 땅 속에서 썩어야지, 밀알답게”
뚜껑이 열리고 걸쭉한 숨 5개가 한꺼번에 천정을 때린다. 썩은 계란에 암모니아를 부은 듯한 냄새가 확 퍼진다. 다시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여는데 잠꼬대 같은 소리 하나가 들린다.
"...... 아이, 이 술통 땡겼으면…… 10억, 꽉 채우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