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을 지키는 사람들
실종됐던 할머니가 동산 경찰서에 도착했을 땐 그녀의 남편과 신고자인 요양보호사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신고자는 할머니와 재회하자마자 두 손을 덥석 잡으며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물었고, 할머니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며 울먹거렸다. 할머니의 남편인 할아버지는 아내에게 혼자 어딜 나갔느냐며 호통쳤지만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는 모습에서 누구보다 실종된 아내를 걱정했음이 보였다.
할머니가 경미한 치매를 앓고 있고, 오늘 혼자서 집을 나선 이유도 치매 증상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실종수사팀 총괄 지휘자는 할머니가 지역 치매 안심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구청과 주민센터에 연락을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종자 수색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면서 서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핸드폰엔 실종자를 안전하게 찾았다는 문자가 발송되었다.
사건이 종결되면서 노부부를 집에 모셔다 드리는 역할은 동현이 맡게 되었다. 동현은 경찰차 뒷좌석에 노부부를 태우고 그들의 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덕분에 편하게 집에 간다며 동현에게 고마워했다.
"할아버님, 혹시 참전 유공자세요?"
너무 말없이 운전만 하면 노부부가 불편해할까 봐 동현은 일부러 말을 꺼냈다. 사실 경찰서에서 할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의 모자와 조끼에 새겨진 문양이 눈길을 사로잡았었다. 조끼 한쪽에 버젓이 쓰여있는 6·25 참전유공자회라는 글씨가 이 노인이 역사 속에 살아있던 인물임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동현이 묻자마자 노인은 그렇다며 어느 부대 소속으로 어느 전투에 투입됐었는지까지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옛날 분이라 말투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가 자신이 참전 용사인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동현은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하시다며 할아버지를 치켜세워드렸다. 이에 할아버지는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을 한 거라며 손사래를 쳤다. 옆에서 할아버지의 말을 계속 거들었던 할머니도 허허 웃었다.
한층 훈훈해진 경찰차 안의 분위기와 달리, 노부부가 사는 집이 가까워질수록 동네 풍경은 다소 썰렁하고 황량한 느낌만 났다.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고 점점 좁아지는 길을 굽이굽이 넘었을 즘엔 차가 진입할 수 없는 골목길이 나왔다. 동현이 노부부에게 이 골목 안쪽에 집이 있는 게 맞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적당한 위치에 경찰차를 세운 동현은 뒷좌석 문을 열고 노부부를 내려줬다.
노부부를 집 안까지 안전하게 들여보낼 의무가 있기에 동현은 이제 그만 가봐도 된다는 그들의 말을 한사코 거절했다. 편의점에서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한 할머니는 온 김에 찬물이라도 마시라며 동현의 허리를 토닥였다. 마침 목이 말랐던 동현은 앞장서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여가 우리 집이여."
할아버지가 멈춰 선 집 앞을 보고 동현은 속으로 흠칫 놀랐다. 녹이 슬어 부서질듯한 대문 옆엔 폐지와 재활용품이 담긴 리어카가 세워져 있었고, 그 뒤쪽으로는 산더미처럼 쌓인 폐지들이 천막 같은 것으로 덮여있었다. 그보다 동현을 더 놀라게 한 것은 노부부의 방 상태였다. 다섯여섯 평쯤 될까 하는 쪽방은 화장실과 부엌의 경계가 거의 없을 정도로 낡고 허름했다. 이 손바닥만 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동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음료수 받어. 시원허이 마시구 가."
차마 현관 안쪽으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동현에게 할아버지가 포카리 스웨트 한 병을 내밀었다. 동현은 얼떨결에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았다. 냉장고에서 방금 막 꺼내서 그런지 음료수는 당장 목으로 넘기고 싶을 만큼 차가웠다. 그러나 지금은 목마름도 잊을 정도로 충격에 빠진 상태여서 동현은 음료 뚜껑을 따긴커녕 우두커니 서있기만 했다.
그 와중에 동현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한쪽 벽에 나란히 걸린 두 개의 액자였다. 참전용사 증서, 그리고 국가유공자 증서. 색이 누렇게 바랜 종이를 담은 두 개의 액자는 삐뚤어지지도 않았고, 먼지가 쌓여있지도 않았다. 노부부가 아끼고 신경 써서 관리하는 물건이라는 게 확연히 티가 날 정도였다.
"안 바쁘면 좀 앉어. 고생혔는디."
액자를 한참 바라보던 동현은 그 밑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할머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주변엔 두툼한 약봉지와 물컵이 담긴 쟁반, 구멍 뚫린 부채가 있었다. 할머니 옆에 앉는 할아버지 주변의 물건들도 온통 기나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들 뿐이었다.
[귀하는 6·25 전쟁에 참전하여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였으므로 그 명예를 선양하기 위하여 이 증서를 드립니다]
"할아버님, 저 액자 정말 멋있습니다."
"그려?"
방에 들어와 앉은 동현이 액자를 가리키자 할아버지는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동현은 그가 아직 벗지 않은 모자와 조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어떤 노인을 떠올렸다. 칠복동 일대에 순찰을 돌거나 출동할 때 종종 봤던 폐지 줍는 할아버지. 그도 항상 화려한 문양이 있는 흰색 모자와 남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이 황영수 할아버지일 터였다. 그저 어디에나 존재하는 가난한 노인이겠거니 하고 스쳐 지나갔던 이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위인이었던 것이다.
왠지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된 것 같아 동현은 마음이 불편했다. 어릴 적부터 직간접적으로 겪어온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이런 게 아니었다. 매년 6월 25일엔 전국에서 커다란 행사장에 참전유공자들을 초대하여 그들을 위한 연설을 하고 그들에게 꽃다발과 감사패 같은 것을 전달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교가 6월만 되면 호국보훈의 달이라며 참전유공자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은 각종 글짓기와 그림 그리기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그들의 희생을 기리곤 했다. 그 시기엔 길거리에서나 인터넷에서나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노라는 문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동현이 목격한 참전유공자의 삶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잊지 않겠다는 온 세상의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할아버지는 국가로부터, 국민으로부터 잊힌 존재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을 알고 나자 동현은 노부부에게 죄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두 분, 자녀는 없으세요?"
"아들 두 놈 있제. 딸은 일찍 죽고."
"아드님들은 지금 어디 계세요?"
"우리도 몰러.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그렇게 대답하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할머니의 표정도 다를 게 없었다.
찾아온 정적에 주위를 둘러보던 동현은 낡은 서랍장 위에 놓인 작은 액자를 발견했다. 색이 연해지고 주름진 사진 속엔 지금보다 훨씬 젊은 노부부와 그들의 뒤로 두 청년이 서 있었다. 동현이 물으니 할머니가 그 사진은 30년 전쯤 찍은 것이라고 했다. 또다시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쪽방 안에 갇힌 것처럼 노부부의 시간도 과거 속에 갇혀있는 듯했다.
"아드님들 보고 싶진 않으세요?"
정적을 무마하고자 동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노부부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서로의 눈을 피한채, 쪽방 어딘가만 바라볼 뿐이었다.
노부부의 집에 다녀온 이후로 동현은 줄곧 마음이 좋지 않았다. 판잣집이나 다름없는 쪽방에 사는 그들은 낡은 선풍기와 구멍 뚫린 부채에 의지해 이 무덥고 습한 여름을 나고 있었다. 에어컨 설치 안된 장소를 찾기 힘든 세상인데 누군가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여전히 문명과 뒤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다. 심지어 노부부 중 남편은 6·25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유공자였다. 나라를 지킨 영웅이 폐지를 주워야 할 만큼 열악한 삶을 살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해봤기에 동현은 받은 충격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동현이 할아버지에게 참전 유공자로서 나라에서 받는 혜택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대답했다. 매월 참전 명예 수당 35만 원과 생계지원금 10만 원이 들어오고, 국가 보훈병원에 가면 진료비와 약값이 거의 면제된다고. 하지만 서울에 딱 한 곳 있는 보훈병원은 너무 멀어서 90넘은 노인네의 몸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다고 했다. 때문에 몸이 아플 땐 가까운 위탁병원에라도 가는데 진료비 혜택은 받아도 약값 혜택은 받지 못해서 약값으로 나가는 돈이 크다고 했다.
노부부가 당연히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을 줄 알았던 동현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연락 끊긴 지 20년이 넘었다는 자식들의 재산 때문에 수급자 선정이 안된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서는 자식들을 찾아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몰라도 부모 자식 간 갈등의 골이 상당히 깊은 듯했다.
노부부를 한번 떠올리면 동현은 자기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빠져버렸다. 그러다 보니 근무 중에 넋을 놓을 때가 종종 있었다.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현이 눈에 띄었는지 믹스커피를 타던 정환이 동현에게 다가왔다.
"뭐해?"
"예? 아, 아닙니다."
"또 그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하지?"
정곡을 찔린 동현은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서 정환에게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선배님, 요즘 군인들 월급이 얼마인지 아세요?"
"글쎄. 얼마인데?"
"제 친구 동생이 지금 육군 병장인데 월급이 60만 원 넘게 나온답니다."
종이컵을 입에 갖다 대던 정환은 그렇냐며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참전 유공자들은 그것보단 많이 받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분들인데 보상금이 겨우 35만 원인 건 대우가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정환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종종 순찰 돌다 본 적 있는 폐지 줍는 할아버지가 참전용사일 줄은 몰랐다며 따뜻한 나랏밥을 먹고 사는 자신이 괜히 다 송구스럽다고도 했다.
"자식들도 참 너무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님이 그렇게 사시는 거 알기나 할까요? 근데 할아버지는 자식들 찾아볼 생각도 없으시고..."
"원래 남의 가정사는 속까지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모르는 법이야. 자식들이 부모를 떠난 것도, 할아버지가 자식들을 찾지 않는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다 있어서겠지. 이건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가타부타할 문제가 아니야. 특히 남의 가정사 이야기할 땐 더욱더."
넉넉하진 않았어도 큰 어려움 없이 자라온 동현에겐 자식이 부모와 연을 끊는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환의 말을 들어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참전유공자 노부부가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듯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사연이 있을 것이고 세상엔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으리란 걸. 경찰이 되고 나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건과 사연을 많이 접했음에도 동현은 아직도 자신의 시야가 좁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노부부의 사정이 안타까웠던 동현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고민했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끔찍이 아껴준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더더욱 그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경찰이라는 지위를 남용해서 함부로 그들의 가족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해서 금전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줄만한 상황도 되지 않으니 어려웠다. 파출소 선배들은 동현의 이런 고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막내니까 할법한 고민이라며 가볍게 웃어넘기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아마 그들은 노부부의 집을 두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동현이 설명하는 열악한 환경이 별로 와닿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딱 한 사람, 정환만큼은 동현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어떻게 하면 노부부가 남은 삶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줬다.
"제보요?"
동현과 정환이 신고 접수를 받고 함께 출동하던 중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정환이 언론사에 노부부의 사연을 제보하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제안했다. 그런 쪽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터라 동현은 선뜻 동의하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할머니 실종됐던 날 서울 사람들은 재난문자 다 받았을 거 아니야. 보통 사람들은 그런 문자 받으면 그냥 누가 실종됐구나, 실종됐다더니 찾았구나, 하고 말 텐데 자세한 사연을 접하면 재난문자 받았을 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겠지."
"듣고 보니 그렇네요."
"할아버지 부부가 사는 환경이 널리 알려지면 여러 단체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거고. 혹시 또 모르잖아. 뉴스에 나왔다가 자식들이랑 다시 만나게 될지. 안 그래?"
동현은 아드님들이 보고 싶지 않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았던 노부부의 모습을 떠올렸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자식들을 마음에서 완전히 떠나보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몇십 년 전 찍은 가족사진을 눈에 잘 띄는 곳에 올려두고 사는 그들은 어쩌면 넓은 집이나 풍족한 돈 보다 자식들과의 재회를 원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정환의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다. 노부부의 사연을 언론사에 제보하기로 결심한 동현은 내일 일찌감치 노부부의 집에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