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을 지키는 사람들
원래도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동현은 경찰이 된 후로 술을 더 멀리하게 되었다. 야간 근무하는 날마다 보게 되는 인사불성의 주취자들 때문이었다. 내가 술 취한 사람이랑 싸움이나 하려고 그리 열심히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나. 술 취한 아저씨가 가게에서 행패를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동현은 주취자를 말리며 회의감을 느꼈다. 가게 사장에게 삿대질하며 욕을 내뱉던 주취자는 자신의 팔을 붙잡는 동현으로 화풀이 대상을 바꿨다.
"이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 어른 팔을 잡아당겨!"
"아저씨, 이제 그만하세요! 자꾸 이러시면 공무집행 방해죄로 체포됩니다."
"뭐? 체포? 내가 뭘 어쨌다고!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막 체포해가도 되는 거야? 어?!"
경찰이 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동현은 아직도 인사불성의 주취자를 상대하는 게 어려웠다. 더군다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일수록 아들 뻘 되는 동현에게 큰소리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술에 취해 사리분별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장유유서라는 뿌리 깊은 유교 문화는 잊는 법이 없었다.
지금처럼 동현이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을 정리해주는 사람은 언제나 선배들이었다. 파출소 막내 동현보다 주취자를 수백 명은 더 상대해봤을 선배 순경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도 노련하게 다루며 집으로 귀가시키거나 파출소로 데려왔다. 오늘 함께 온 선배는 정환이었다. 동현에게 욕을 하던 남자도 단호하게 나오는 정환에게 기가 꺾여 마지못해 경찰차에 올라탔다. 뒷좌석에 앉은 그는 경찰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곯아떨어졌다.
평안 파출소 앞에 경찰차를 세운 동현은 후다닥 차에서 내려 정환과 함께 깊게 잠든 남자를 부축했다. 파출소 문 바로 옆에 있는 소파에 남자를 눕히자 그는 입맛을 다시며 몸을 뒤척였다. 숨을 내쉴 때마다 지독한 술냄새가 주변으로 번졌다. 업어가도 모를 것 같은 남자를 한심하게 내려다보는 두 순경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수고했어 김 순경."
"선배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이 아저씨 가족들한테 연락할까요?"
"일단 재우고 나중에 일어나면 그때 상태 보고 하자."
"알겠습니다."
가족들에게 바로 연락을 하지 않는 이유는 대개 이런 고주망태 주취자들은 자고 일어나면 온순한 양이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남자도 그런 부류였다. 3시간쯤 뒤에 눈을 뜬 남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파출소 안을 둘러보더니 곧 벌떡 일어나 겸손한 자세로 앉았다. 아저씨, 잘 주무셨어요? 남자에게 말을 건 정환이 파출소 오기 전까지의 일들을 꼬집어주자 남자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물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순경들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사과를 거듭했다.
"아저씨! 여기 김 순경한테도 사과하세요. 아무리 취하셨어도 경찰한테 이 새끼 저 새끼가 할 소리예요?"
"죄송합니다... 제가 술만 마시면 정신이 나가는 바람에..."
정환 덕에 사과를 받아낸 동현은 다음부터는 술을 적당히 마시라고 남자에게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다는 말을 남긴 남자는 도망치듯 파출소를 나갔다.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 위로 보이는 하늘이 밝았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4조 2교대근무의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동현의 어깨와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어떤 직업이든 미디어에서 나오는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다르겠지만, 요즘 동현은 상상 속에서 그리던 자신과 현실에서의 자신이 많이 다른 것 같아 생각이 많아졌다. 경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처음 제복을 입었을 땐 시민의 안전을 지킬 생각에 그렇게 가슴 설레고 벅찰 수가 없었다. 그런데 현장에서의 자신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듬직한 경찰이 아니라 매일같이 벌어지는 갈등을 중재하는 분쟁조정위원회의 한 중재자였다.
술에 취한 사람들의 주먹다짐,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의 갈등, 접촉사고의 과실 비율을 따지면서 벌어진 싸움,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의 싸움.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개인과 개인의 갈등 중심엔 언제나 경찰이 있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것도 아닌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며 싸워대는 사람들 때문에 평안 파출소의 말단 순경인 동현은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키다가 혼이 쏙 나가기 일쑤였다.
파출소에 접수되는 사건은 싸움만 있는 건 아니었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사람을 찾는 등 개인적인 일로 경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건도 많이 접수되었다. 동현은 함께 근무에 배치되는 선배들의 사건 처리 방식을 보고 배우며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경찰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경찰관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낄만한 일이 딱히 생기지 않아 직업정신이 해이해지고 있음을 스스로도 느끼는 중이었다.
"사람을 좀 찾고 싶은데요. 얼마 전에 쓰러진 저희 아버지를 병원까지 데리고 오신 분이 어떤 버스기사님이었대요."
휴무를 보내고 온 동현이 주간 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파출소에 모녀로 보이는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방문했다. 아주머니는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며 아버지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을 꼭 찾고 싶다고 사정했다. 기사가 연락처를 남기지 않아 모녀가 병원에 기사님이 몇 번 버스를 몰고 왔는지 응급실 앞 CCTV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가족들은 혹시 경찰의 도움을 받으면 버스기사님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파출소에 방문한 것이라고 했다.
버스기사님께 꼭 사례를 하고 싶다며 사정하는 모녀의 민원은 동현과 정환이 담당하게 되었다. 그들에게서 구체적인 정보를 받아낸 두 사람은 곧장 해당 병원으로 출동했다. 일반인에겐 CCTV 열람을 허락하지 않았던 병원 측은 경찰관이 등장하자 조사에 순순히 협조했다. 할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왔을 당시의 병원 안팎 영상을 확인한 두 순경은 할아버지를 업고 들어온 기사님의 버스가 동산07 번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이후에는 버스 기사를 찾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다. 동산07 노선이 속한 버스 회사에 찾아가 해당 기사님을 수소문하고 할아버지의 가족이 찾는다는 사실을 전달하면 되는 거였다. 버스 회사에 도착했을 때 마침 퇴근시간이었다던 기사님을 경찰차에 태운 두 순경은 병원으로 향하면서 민원인에게 연락을 취했다. 버스 기사님이 병실에 도착하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기는 민원인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 두 순경은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나저나 할아버지는 정말 천운이네요. 마침 버스기사님 눈에 띄어서 목숨도 건지시고."
"그러게 말이야. 가족들도 대단하지. 요즘 세상에 은혜를 잊지 않고 꼭 갚으려고 한다는 게."
파출소로 복귀하면서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동현은 근래 느끼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감을 정환에게 슬쩍 내비쳤다. 경력이 5년 차인 정환은 동현에게 하늘 같은 선배님이자 배울 점이 많은 멘토였다. 그래서 동현은 선배들도 이런 회의감을 느껴본 경험이 있는지 궁금했다.
"나도 다 그런 생각하는 시절이 있었지. 연차 쌓여도 똑같아."
"정말입니까?"
"게다가 지금은 사람들한테 경찰 인식도 완전 바닥이잖냐. 무슨 사건 터졌다 하면 경찰은 뭐했냐 소리 듣고. 그럴 때 제일 회의감 많이 느끼지."
운전대를 잡은 동현은 정환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정환은 경찰관으로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화 하나를 말해주며 지금 동현이 느끼고 있을 감정에 공감해줬다.
"그래도 우리 같은 경찰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위험에서 벗어나고 누군가는 억울함을 풀고 누군가는 혼자서 해결 못할 일을 해결하는 거야. 아까 그 할아버지네 가족처럼."
파출소에 와서 기사님을 찾아달라고 사정했던 모녀와 기사님을 만나고 기뻐하던 할아버지 가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경중을 굳이 따지면 이번 일은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경찰이 버스기사님을 찾아줌으로써 노인의 가족들은 어떤 때보다 큰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동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가 시민들한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란 거. 그거 하나만 기억하면 돼 이 직업은. 알겠어?"
"알겠습니다."
정환의 조언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동현은 어느새 다다른 평안 파출소를 향해 경찰차를 힘차게 몰았다.
쓰러진 할아버지를 병원까지 데리고 간 버스기사님은 구청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정환이 해당 사건을 윗선에 적극적으로 알린 덕이었다. 버스기사의 선행을 굳이 알리려는 정환이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던 동현은 그에게 왜 그렇게 사건을 알리려고 애쓴 건지 이유를 물었다. 누군가의 선행은 타인에게 귀감이 될 거고, 그게 또 다른 선행을 만들어 낼 거다. 정환의 대답을 듣고 동현은 그가 사서 귀찮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 자신을 깊이 반성했다.
경찰이 된 이후로 온갖 비상식적인 사람들을 상대하고 기상천외한 사건을 접하다 보니 동현은 성격이 많이 매정해지고 팍팍해진 상태였다. 이미 산전수전을 겪을 대로 겪은 선배들과 달리 아직 경찰 제복을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더욱 그런 듯했다. 그래서 동현은 요즘 흔한 말로 슬럼프라 불리는 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 국민을 돕는 경찰!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경찰! 그것이 동현이 되고자 하는 경찰이었다.
"실종사건 발생했습니다. 전원 수색 지원 바랍니다."
파출소에 비상이 걸렸다. 실종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실종자는 칠복동에 거주하는 80대 노인 여성이고, 신고자는 노인의 방문 요양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였다. 매일 2시에 실종 노인의 집에 방문한다는 신고자는 집에 도착했더니 대문이 열려있고 집안에 할머니가 없었다고 했다. 치매를 앓고 있기에 혼자서는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할머니가 혹시 남편과 함께 나간 게 아닐까 싶어 할아버지께 연락했지만, 그 역시 할머니의 행방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신고자가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한 거였다.
실종자가 발생하면 관할 파출소, 지구대 인력은 물론이고 구 내 모든 경찰 인력이 실종자 찾기에 동원됐다. 실종사건은 골든타임을 놓치면 실종자가 살아있을 확률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실종자를 찾아내야 했다. 동산구를 포함한 서울 전역에 실종자를 찾는 재난문자가 발송되고 경찰들은 2인 1조로 팀을 나눠 수색을 시작했다. 동현도 선배 한 명과 함께 순찰차를 타고 칠복동 일대를 수색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집을 나선 시각이 특정되지 않아 수색은 난항을 겪었다. 넘어온 정보에 의하면 할아버지가 집을 나선 시각부터 요양보호사가 집에 도착한 시각까지 범위가 너무 넓어서 할머니의 거동으로 얼마큼 이동했을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어디까지 갔을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할머니가 사는 집 주변이 워낙 노후되고 후미진 곳이라 방범용 CCTV도 제대로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수색 중에 발견하거나 시민들의 제보로 발견하는 것에 희망을 걸어야 할 상황이었다.
-제보 들어왔습니다. 동산07 버스기사님이 실종자로 추정되는 할머니를 1시 40분경에 명화 초등학교 정류장에 내려줬다고 합니다.
막막하던 수색 진행 중에 반가운 무전이 들려왔다. 1시 40분이면 지금으로부터 약 두 시간 전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할머니가 걸어서 이동했다면 목격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칠복동 일대를 수색하던 팀은 명화 초등학교 주변을 낱낱이 수색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동현은 명화 초등학교 방향으로 급히 경찰차를 몰았다.
"할머니가 왜 명화초등학교에서 내렸을까요?"
"그러게. 스스로 버스까지 탄 걸 보면 목적지가 분명한 것 같은데."
동현은 선배와 나름의 추리를 해봤다. 혼자 집을 나온 노인이 스스로 버스를 타고 한 정류장에 내린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평소엔 혼자서 절대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노인에게 무슨 목적이 생겨서 밖을 나가게 된 건지 문득 이유가 궁금해졌다. 단순히 길을 잃고 헤매다가 실종신고가 된 노인들과는 경우가 조금 다른 것 같아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봤는데 이렇다 할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제보 들어왔습니다. 현재 실종자로 추정되는 할머니를 제보자가 보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치는 명화초등학교 앞 GS편의점. 즉시 출동 후 확인 바랍니다.
명화초등학교에 다다랐을 무렵 또 하나의 무전이 들어왔다. 동시의 동현은 조수석에 앉은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반짝거리는 눈빛에서 희망이 보였다. 여기는 수색 3팀, 지금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선배 순경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운전대를 잡은 동현도 명화 초등학교 앞 GS편의점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편의점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이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 실종자의 인상착의와 일치하는 할머니가 편의점 알바생과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곧바로 할머니에게 다가가 이름을 물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옥자. 가족과 경찰이 애타게 찾던 실종자임이 틀림없었다.
"김옥자 씨 찾았습니다. 현재 위치 명화 초등학교 앞 GS편의점입니다."
선배가 보고할 동안 동현은 할머니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울상이 되어 어떡하냐는 할머니에게 다친 곳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말로 달랬다. 실종사건 발생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점은 실종자를 안전한 상태로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80세가 넘는 고령의 치매노인이 무탈하게 발견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동현은 편의점 알바생과도 짧은 대화를 나눴다. 만약 이 제보자가 할머니를 그냥 지나쳤다면 경찰은 아직도 김옥자 할머니를 찾느라 온 동네를 뛰어다니고 있을 터였다. 한 시민의 세심한 관심이 한 할머니를 살리고 한 가정을 살린 것이다.
편의점 알바생은 할머니가 경찰차에 오를 때까지 편의점 밖에 서서 지켜보고 할머니의 건강을 빌어줬다. 알바생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던 할머니는 자신 때문에 고생이 많다며 두 순경에게도 미안함을 표현했다. 동현은 또 한 번 할머니를 달래며 경찰차를 출발시켰다.
"여기는 수색 3팀, 동산 경찰서로 실종자 인계하겠습니다."
무전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색을 종료한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동산구에서 벌어진 치매 노인 실종사건은 두 시간 반 만에 무사히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