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아파트 101동 905호
[사장님 너무 좋으신 분이네요. 조만간 통통 치킨에서 시켜먹어야겠어요.]
[이 글 보고 바로 통통 치킨에 전화 주문 넣었습니다 ^^ 사장님 더욱 번창하시길~]
[요즘 다들 살기 팍팍한데 이런 좋은 분들 덕분에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걸 느끼는 것 같아요.]
옥자 할머니 댁으로 출근하는 길, 경숙은 동산07 버스 좌석에 앉아 맘 카페 알림을 확인했다. 며칠 전에 올린 통통 치킨 글의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댓글도 덩달아 많이 달린 것이다.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자신도 아니고 통통 치킨 사장님인데 경숙은 맘 카페 회원들의 따뜻한 댓글을 읽고 괜스레 뿌듯함을 느꼈다.
경숙이 통통 치킨 사장님의 선행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그날따라 치킨이 먹고 싶다고 보채는 서연 때문에 경숙은 통통 치킨을 포장하러 늦은 저녁에 집을 나섰다. 배달을 시켜먹자니 요즘은 배달비가 최소 2-3천 원부터라 그 돈을 내는 게 너무 아까웠고, 포장할인 2천 원까지 받으면 배달시켜먹을 때보다 5천 원은 절약하는 거니까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직접 치킨을 포장해오려는 것이었다. 명랑 아파트에서 치킨집까지 걸어가면 편도 15분 이상은 걸리지만 저녁 바람도 시원하니 경숙은 운동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갔다.
미리 전화로 주문해놨기에 가게에 들르자마자 계산만 하고 치킨을 들고 나오면 될 일을 주춤하게 만든 것이 있었다. 바로 통통 치킨 앞에 세워진 경찰차 한 대였다. 경광등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는 경찰차를 사람들이 저마다 힐끗 쳐다보고 지나갔다. 경숙도 마찬가지였다. 이 주변에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서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통통 치킨에 들어갔는데 사장님이 경찰 두 명과 이야기하는 걸 보게 되었다. 워낙 간섭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 데다가 10년째 단골이어서 사장님과도 잘 아는 사이인 경숙은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알바생이 포장된 치킨을 준비해줬는데도 굳이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 그들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경찰관이 구석 테이블에 앉아있던 어린아이들을 데려간 후에 사장님으로부터 이런저런 사연을 전해 들은 경숙은 아이들의 사정이 딱해서 몇 번이나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배를 굶주린 아이들에게 대가 없이 저녁밥을 차려준 사장님이 너무 고마워서 이 사연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오로지 선행을 알리려는 마음으로 맘 카페에 글을 올렸을 뿐인데 그 글이 이렇게까지 많은 관심을 받게 될 줄은 몰랐던 터라 경숙도 조금 얼떨떨하긴 했다. 그래도 기분 좋기는 매한가지였다. 통통 치킨 사장님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읽고 날이 지날수록 배달어플에서 통통 치킨 리뷰수가 증가하는 걸 구경하는 게 경숙이 요즘 즐겨하는 취미였다.
"어르신, 저 왔어요."
옥자의 집에 도착한 경숙은 꽉 닫혀있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방 안에 앉아있는 그녀가 왔냐면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경숙은 옥자가 잘 있는 걸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 어느 날, 현관문은 열려있고 아무도 없는 방안을 목격했을 때 심장이 철렁했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바람에 경숙은 옥자의 집에 올 때마다 이렇게 가슴을 졸이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경찰까지 동원해 사라진 옥자를 찾아다녔던 그날 일은 요양보호사 경숙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없어야 할 끔찍한 사고였다. 옥자가 다친 곳 없이 무사히 발견됐으니 망정이지, 최악의 상황까지 갔을걸 생각하면 경숙은 지금도 눈앞이 아찔했다.
"아버님은 안 들어오셨어요?"
"잠깐 와서 밥 묵고 갔어."
"어머님은 그새 혼자 나갔다 오신 거 아니죠?"
"아유, 이제 안 그러니까 걱정 말어."
경숙이 농담 반 진담 반씩 섞어 한 말에 옥자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경숙은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며 호탕하게 말했다. 그날 일을 이렇게 웃어넘기면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실종사건 이후 노부부에게 이런저런 지원이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경찰이 연계해준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사람이 집으로 방문해 옥자의 상태도 진단해주고 영수에게 치매 가족을 돌보는 법에 대해 교육해줬다. 그리고 옥자가 자주 입는 옷에는 고유번호가 표기된 인식표를 부착했다. 이 인식표는 치매 증상 때문에 옥자가 또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어디선가 발견된 옥자의 인식표를 경찰이 확인해서 가정으로 복귀시킬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안되겠지만 만에 하나 또 옥자가 혼자 사라질 것을 대비해 옷마다 인식표를 부착한 것이다.
무엇보다 노부부를 집에 데려다준 경찰관이 방송사에 제보를 해준 덕에 취재팀이 다녀갔고, 다음날 밤에 옥자 부부의 사연이 전국적으로 보도되었다. 뉴스가 나간 이후로 노부부의 집으로 쌀, 라면, 김치 같은 식량과 각종 생필품이 많이 들어왔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때문에 라면 한 봉지 사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던 영수에게 여러 단체나 개인이 보내준 마음들은 큰 보탬과 위로가 되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형편이 눈에 띄게 나아진 것은 아니기에 영수는 여전히 새벽부터 저녁까지 폐지를 주우러 다녔다.
"그럼 이 집은 어떻게 안된대요?"
"셋방이라 고쳐줄 수가 없대. 우리 집이었으면 몰라두."
노부부의 열악한 집 상태를 보고 전액 무료로 보수 공사를 해주겠다는 업체들도 나타났으나, 이 집이 월 25만 원씩 세를 내며 살고 있는 남의 집이라 멋대로 보수 공사하는 건 불가능했다. 경숙은 지은 지 최소 40년은 훌쩍 넘었을 이런 쪽방도 월세를 25만 원씩이나 받는 집주인이 도대체 어떤 사람일지 참 궁금했다. 주변 부동산 사장들한테 물었더니 칠복동 일대의 집주인들은 훗날 동네가 재개발되는 것을 노리고 이런 무너져가는 집들도 세를 놓고서 버티는 거라고 했다. 이런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돈 없고 갈 곳 없는 빈곤층이라 집에 하자가 있어도 영수네처럼 그냥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집주인한테 보수 좀 해달라고 연락해봤자 고치는 비용이 월세보다 비싸다며 퇴짜 맞을게 뻔해서였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여러 노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봐온 경숙은 여태 모신 노인들 중에 옥자네 부부가 가장 안타까웠다. 그래서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워도 불평 한번 하지 않고 친 부모를 모신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돌봤다. 장도 대신 봐주고, 반찬도 맛있게 만들어 놓고, 수다도 많이 떨어드리고, 방 구석 구석 청소도 열심히 해주고. 특히 영수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참전유공자 증서 액자와 옥자가 가장 아끼는 가족사진 액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닦았다. 그전에도 깨끗했던 액자들은 경숙이 온 뒤로 반짝반짝 광까지 났다.
"어머님, 물 드셔요. 오늘따라 기침이 심하시네."
"약 먹었는데두 요래."
천식 때문에 잔기침이 잦은 옥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침소리가 안 좋아지고 있었다. 치매며 천식이며 그녀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경숙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영수나 옥자 앞에선 그것을 티 내지 않았다. 오히려 너스레를 떠는 방법으로 그들이 은연중에 느끼고 있을 임종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우리 김옥자 여사님, 나중에 아들들한테 따뜻한 밥 한 끼라도 해주려면 무조건 건강하셔야 돼. 아셨지요?"
"아이, 알았대두."
"아니, 시청은 구청에 문의하라고 하고, 구청에서는 버스회사에 문의하라고 하고, 버스 회사는 구청에 문의하라고 하면 대체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 거예요?"
경숙은 버스 회사 직원과 통화하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매일같이 타는 동산07 버스의 배차간격이 너무 길어져 불편했던지라 참다못해 오늘 동산 구청으로 민원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 시청에 민원 좀 넣어달라는 버스기사의 말이 생각나서 실행에 옮긴 거였다. 그런데 시청에서는 버스가 운행 되는 지역 구청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했고, 구청에서는 버스 배차간격은 회사 내부에서 결정하는 일이라 구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버스 회사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했다. 그래서 버스 회사에 문의했더니 회사 경영난으로 정상적인 버스 운행이 어려운데도 정부에서 손 놓고 있는 거라며 회사 측이 오히려 경숙에게 하소연을 하는 중이었다.
지금 동산07 노선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으니 구청이나 시청에 전화해보라는 회사 측의 답변을 받고 경숙은 짜증만 실컷 내다 전화를 끊었다. 버스회사와 지자체 양쪽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건 마을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일반 시민들이었다. 특히 버스 이용이 생계와 연결되어있는 사람들일수록 타격이 더욱 컸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이후로 재택근무방식이 보편화되었지만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업도 분명 많이 존재한다. 오전, 오후에 한 군데씩 어르신들의 집에 방문하며 요양보호 일을 하고 있는 경숙은 만약 동산07 버스가 없어진다면 편도 30분이 넘는 거리를 매일 몇 번씩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날씨가 좋으면 운동삼아 걸어 다니겠지만 요즘처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소나기가 시도 때도 없이 오는 날씨에는 도저히 걸어 다닐 수가 없다. 남편이 사용하는 차를 빼앗아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 겨우 운행되는 버스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절하며 타야 하는 실정이었다.
"오후 출근하세요? 근데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
동산07 버스를 이용하며 불편함을 겪는 승객은 경숙 말고도 더 있었다. 명랑 아파트 경비원인 정호였다. 긴 빗자루로 아파트 입구를 쓸고 있던 그는 부랴부랴 나오는 경숙에게 말을 걸었다. 경숙은 잠시 멈춰 서서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속사포로 털어놨다.
"글쎄, 전부 다 자기들은 어쩔 방법이 없다면서 여기 전화해봐라, 저기 전화해봐라 하는데 속이 터져서 죽을 뻔했다니까요? 나 그 버스 없으면 일 못하는데 이걸 어떡해. 지금도 버스 놓칠까 봐 일찍 나온 거예요. 놓치면 30분은 기다려야 하니까."
"아 나도 버스 때문에 아침 출근할 때마다 죽겠어요. 여기까지 걸어와도 힘들고, 버스 탄다고 새벽에 20분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우리 딸내미도 공부하고 늦게 들어올 때 버스 타고 오는데 큰일이네 이거. 아이고, 늦겠다. 저 시장 들렀다 가야 해서요. 고생하셔요!"
"예예. 가보세요."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마음이 급해진 경숙은 부리나케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때마침 멀리서 동산07 버스가 스르륵 다가오고 있었다. 경숙이 정류장에 도착함과 동시에 버스도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삐- 소리와 함께 열린 문 안으로 올라탄 경숙은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했단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고 옥자네 집에 방문하는 경숙은 오늘 마트가 아닌 평안 시장에 들렀다. 어제저녁 마트에 갔다가 애호박 한 개에 4,500원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뒤로 넘어갈뻔했기에 백 원이라도 더 저렴하게 식재료를 구매하고자 시장까지 온 거였다. 오전에 모시는 어르신은 형편이 넉넉하고 가족들이 수시로 냉장고를 채워놔서 별 걱정 없지만, 일주일 식비를 2-3만 원 안으로 해결해야 하는 옥자 부부를 생각하면 단 돈 100원, 200원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시장 상인들에게 최대한 흥정도 해보고 덤 하나라도 받아내며 장을 본 경숙은 또 부랴부랴 움직여 동산07 버스를 탔다. 버스 타이밍을 놓칠까 봐 하도 급하게 움직였더니 이마와 등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10분 이상은 걸어야 나오는 옥자네 집엔 그 흔한 파란색 번지수 표시판도 붙어있지 않았다. 녹슨 대문 옆 담벼락에 희미한 글씨로 숫자 몇 개가 적혀있는 게 전부였다. 경숙은 요양보호센터에서 옥자를 배정받고 처음 이 집에 방문할 때 집을 찾느라 고생했던 일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했다. 작년에 벚꽃이 필 때쯤 처음 방문했는데 몇 개의 계절을 지나 보내도록 들락날락했더니 이제 이 집이 내 집처럼 익숙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아버님이 계시나 보네."
비 오는 날을 제외하면 경숙이 출근하는 시간에 거의 보이지 않던 리어카가 오늘은 대문 옆에 세워져 있었다. 경숙은 리어카를 보고 영수가 집에 있음을 짐작했다. 아무래도 그는 날이 많이 더워서 폐지를 줍다가 잠깐 쉬러 온 듯했다. 폐지를 주울 때 줍더라도 요즘 같은 날씨에 더위 먹고 쓰러지면 큰일 난다고 몇 번이나 잔소리했더니 영수가 이제야 말을 듣는 모양이었다.
"어르신들, 저 왔어요."
양손에 검은 봉투를 든 경숙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역시나 영수와 옥자가 방 안에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영수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 경숙이 들고 온 봉투를 받았고, 옥자는 어여 들어와 앉으라며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자리에 앉은 경숙은 시장에서 사 온 것들을 설명하며 주절주절 떠들었다. 상추값이 얼마나 비싼지 말도 말라며 혀를 내두르고, 애호박이 마트에서는 한 개에 4,500원이라며 이러다간 된장국도 못 끓여먹겠다고 한탄하고, 버스 회사와 시청, 구청에 전화했던 이야기까지 하며 답답해 죽겠다고 가슴도 두드렸다. 옥자는 경숙에게 부채질을 해주며 욕봤다고 위로했다. 경숙이 떠들 동안 냉장고에 식재료를 정리한 영수는 홍삼팩 하나를 들고 오더니 마시라며 경숙에게 건넸다.
"웬 홍삼이에요? 이것도 어디서 들어왔어요?"
영수에게 받은 홍삼 팩은 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브랜드 제품이었다. 어르신들한테 들어온 이 귀한 음료를 넙죽 받아 마시기가 죄송해서 들고만 있는데 옥자 옆에 앉는 영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경숙은 어리둥절해하며 노부부를 쳐다봤다. 그리고 입을 뗀 영수에게서 나온 말을 듣고 들고 있던 홍삼팩을 떨어뜨렸다.
"어제 며느리가 찾아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