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을 이루는 풀꽃 18

명랑 일보의 기적

by 김유수

경찰이 오길 기다리던 정호는 경광등이 빛나는 경찰차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1층으로 내려왔다. 아파트 바깥으로 뛰어나가 여기라고 양팔을 흔들자 주차장을 배회하던 경찰차가 101동 앞에 멈춰 섰다. 곧이어 안에서는 덩치가 듬직한 순경 두 명이 내렸다.



"신고하신 집이 몇 호죠?"

"여기 902호요. 그 집 아빠가 마누라랑 애들을 그렇게 패요. 내가 듣다 듣다 못해서 신고까지 한 거라니까."



정호는 순경들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902호가 시끄럽다는 민원을 받고 올라간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마다 902호 안에서 매질하는 소리와 우는 소리를 들었고, 집주인 남자에게 주의를 줘도 당시에만 조용해질 뿐 하루 걸러 폭력이 반복된다고. 902호 아이들에게 아빠로부터 폭력을 당한다는 말을 직접 들은 이웃도 있다고 덧붙이자 경찰은 우선 902호의 상황을 직접 확인해보자며 걸음을 서둘렀다.



정호가 순경들과 902호 앞에 섰을 때 현관문 안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할 당시에만 해도 들리던 무시무시한 소리들이 지금은 멎은 것이다. 순경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문을 다시 두드리며 안에 계시냐고 묻자 잠시 후 누구냐고 묻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니 문 좀 열어보라는 순경의 요청에 902호의 현관문이 덜컥 열렸고, 동시에 지독한 술냄새가 복도 바깥으로 퍼져 나왔다.



"신고요? 무슨 신고를 받았다는 말입니까?"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불쾌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발음도 어눌한 것이 만취상태인 듯했다.



"이 집에서 가정폭력이 일어난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잠시 안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가정폭력이요? 참나. 누가 그러는데요. 이봐요, 아저씨가 신고했어요?"



험상궂은 눈매가 정호에게로 향했다. 한쪽으로 물러나 있던 정호가 당황한 사이, 한 순경이 대신 대답했다.



"원칙상 가정폭력의 신고자가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고요, 경비원 아저씨는 저희가 요청해서 함께 올라오신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누가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우리더러 가정폭력이니 뭐니 신고한 거냐고요. 내가 그 양반이랑 직접 얘기해보겠다니까? 예?"

"아저씨 일단 진정하세요. 안에 가족분들 계시죠? 잠깐 들어가서 확인 좀 하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어딜 맘대로 들어와 남의 집에? 경찰이라고 이렇게 주인 허락도 없이 막 들어와도 되는 거야? 이거 완전 주거 침입이네. 어?"



남자는 현관문을 아예 닫고 막아서며 막무가내로 굴었다. 실랑이가 이어지자 옆집에서 하나둘 현관문을 살짝 열고 902호를 주시했다. 무슨 구경 났냐고 이웃들에게 윽박지르는 남자를 순경들이 조용히 하라고 말렸다. 정호는 905호 문틈으로 얼굴을 빼꼼 드러낸 경숙에게 손짓하며 들어가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 알겠어요. 와이프 데리고 나올 테니까 기다리세요."



순경들이 조사에 불응하면 경찰서까지 함께 가야 한다고 강경하게 나오자 남자는 알겠다며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남자가 현관문을 쾅 닫고 들어가자 순경들이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문이 잠깐 열렸던 사이에 정호가 안쪽을 살펴봤으나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호가 안에 들어가서 아이들부터 만나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순경들을 보챘지만 그들은 일단 아이들의 엄마와 먼저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했다. 정호는 시간이 지체될수록 속이 타기만 했다. 집으로 들어간 남자는 잠시 후 문을 열고 아내와 함께 나왔다.



"무슨 일이세요?"



긴팔 가디건을 입고, 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나온 여자는 다소 멀쩡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 순경이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말하자 그녀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대답했다.



"가정폭력이라뇨.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냥 남편이 애들 훈육하다가 저랑 말다툼 좀 한 거예요."

"훈육과 폭력은 명백한 차이가 있어요. 신고가 들어온 이상 사실관계 확인은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은데요."

"이봐요. 지금 시간이 열두 시가 다돼가는데 애들 벌써 잠들었지. 자는 애들 깨워다가 물어볼 거야?"



남자는 삿대질까지 해가며 불만을 표시했다. 아내의 대답을 듣고 순경들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순경들이 계속 회유했지만 그녀는 정말 별일 없던 것처럼 태연히 대답했다. 대체 누가 가정폭력으로 신고했는지 물으며 기분 나빠하는 기색까지 내비치기도 했다. 아이들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는 순경의 말에 잠든 지 얼마 안 된 애들을 지금 깨우면 언제 다시 자겠냐는 말로 거부했다.



정호는 돌아가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아이들의 엄마도 분명 남편에게 폭행당한 사실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는커녕 남편의 편을 들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아이들이 경숙에게 했던 말들을 증거 삼아 남자를 몰아세우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아이들에게 더 큰 피해가 갈까 봐 이도 저도 못하는 상태였다.



남편이 화가 나서 소리를 몇 번 지른 거지 자신과 아이들이 폭행당한 사실은 없다고 완강히 부정하는 아내의 말 때문에 경찰은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했다. 순경들은 부부에게 만약 한번 더 신고가 들어오면 그땐 정말 경찰서까지 와서 조사받게 될 거라고 주의를 줬다. 갑자기 마무리되어가는 분위기에 정호는 당황했다.



"거 참 누가 신고했는지 몰라도 남의 집 일에 신경 끄고 본인이나 잘살라고 해요. 알겠어요?"



주변이 들으라는 듯, 남자는 현관문을 닫기 전에 큰 소리로 비아냥댔다. 쾅 소리가 나며 문이 닫히고 정호는 허탈한 얼굴을 했다.



"아니 진짜로 이렇게 그냥 가는 거예요? 애들이 저 양반한테 또 맞으면 어떡해요...!"



9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호는 순경들에게 답답함을 호소했다. 순경들 역시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당사자가 거부하는데 저희도 무턱대고 집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가 없어요. 확실한 증거도 없이 남편분을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도 없고요. 게다가 아내분께서 저렇게 폭행 사실이 없다고 부정하시는데 그러면 저희가 임의로 가해자랑 피해자를 규정하고 분리해놓기도 애매한 상황이에요."



순경의 설명을 듣고 정호는 낙담했다. 경찰이 오면 무언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해결은커녕 폭행이 반복될 여지만 남긴 것 같았다. 순경들은 902호에서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일이 또 발생하면 그땐 경찰서 조사를 피할 수 없을 테니 꼭 신고해달라고 정호에게 당부했다. 경찰차가 아파트를 떠난 후에 정호는 바로 902호 앞에 찾아가 현관문에 귀를 바짝 대고 소리를 들었다. 언제 아비규환이었냐는 듯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1분이라도 빨리 신고할걸. 뒤늦게 후회가 찾아왔다. 미련이 남아 한참을 9층 복도에서 서성이던 정호는 조용히 905호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정호인 것을 알았는지 문을 열어준 경숙은 그를 현관 안쪽으로 들였다.



"아이고 이걸 어쩌면 좋아..."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경숙은 건우 지우 남매와 아이들의 엄마가 걱정된다며 울상을 지었다. 902호 안에서 났던 소리를 녹음해놓거나 아이들 몸에 난 멍을 사진으로 찍어둘 걸 그랬다며 후회하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상황을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허탈하긴 경숙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일단 며칠 지켜봅시다. 또 그러면 그땐 정말로 경찰서에 불려 갈 거라고 했으니까..."



정호는 경숙에게 늦었으니 얼른 주무시라고 말한 뒤 905호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902호가 있는 복도를 바라보는데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다른 때보다 길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경찰이 다녀간 이후로 902호에서는 더 이상 큰 소리나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낌새가 보이면 바로 연락하겠다고 했던 경숙은 정호에게 요즘 902호가 잠잠하다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정호도 마찬가지였다. 일시적으로 남자의 가정폭력이 멈춘 것 같았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남자의 폭력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정호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남자를 신고할 타이밍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뿐이었다. 경찰에 다시 신고하려면 902호에 가정폭력이 또 일어나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차라리 신고할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사이에 가정폭력이 여전히, 조용히 이루어지는 중일 수도 있기에 정호는 야간 순찰을 돌 때마다 몰래 902호 앞에 가서 별일 없는지 귀를 기울여보곤 했다. 영남에게도 야간 순찰 시에 101동 902호를 예의 주시해달라고 살짝 귀띔해놓은 상태였다.



한편 입주민 대표 회의에서 경비실 에어컨 설치 안건이 최종적으로 가결되었다. 부녀회장으로부터 빠른 시일 내에 에어컨 설치가 될 거라고 전달받은 정호는 하루하루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러다 하루 쉬고 출근했을 때 한쪽 벽에 떡하니 설치되어있는 새 에어컨을 보고 눈물을 살짝 훔쳤다. 80%가 넘는 입주민의 동의로 설치된 에어컨이라 기쁨이 더욱 남달랐다. 명랑 아파트를 위해 묵묵히 애써왔던 자신의 노고를 입주민들이 드디어 알아준 것 같아서였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 같은 존재로 일하던 지난날의 설움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정호는 책상 서랍에 넣어둔 민서의 선물을 꺼냈다. 그리고 모서리에 테이프를 붙여 에어컨 바로 밑에 신문을 붙여놓았다. 알록달록 커다랗게 쓰인 명랑 일보 네 글자와 종이 한 면을 가득 채운 가지런한 글씨들, 일하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세 장의 사진. 정호는 열몇 번도 읽어본 신문 내용을 다시금 읽어봤다. 입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 귀한 신문을 에어컨 밑에 붙여 놓은 이유는 아이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정호는 물론이고 영남도 이 신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형님이 꼬마랑 인터뷰해준 덕에 입주민들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걸 조금이나마 알아준 것 같다며 넉살 좋게 웃기도 했다.



"아저씨, 식사는 하셨어요?"



오전 할 일을 모두 마친 정호가 경비실 앉아서 쉬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경숙이 찾아왔다. 그녀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인 듯했다. 에어컨을 틀어놓느라 창문을 닫아놓고 있던 정호는 경비실 밖으로 나갔다.



"아까 먹었지요. 일 갔다 오시나 봐요."

"네. 경비실에 에어컨 생기니까 어떠세요. 시원하고 좋죠?"

"예. 덕분에 일할 맛 납니다."



오늘은 경비실에 에어컨이 생긴 지 이제 4일째가 되는 날이다. 에어컨 하나로 근무의 질이 몇 배는 향상되었다는 걸 몸소 느끼는 중인 정호는 더욱 성실하게 일했다. 마주치는 입주민들마다 밝게 인사해주고 분리수거장도 열심히 정리했다. 바깥일을 할 때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뜨거운 공기에 숨이 막혀도 괜찮았다. 경비실에 들어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 온몸을 물들인 열기가 금세 식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요즘도 조용해요? 그 집."

"제가 수시로 확인하는데 별소리 안 들려요. 애들한테 괜찮은지 물어보고 싶어도 통 마주치지를 못하네."

"보니까 애들 아침에 학교가던데. 이제 방학 끝났나 봐요."



정호는 최근에 아침마다 아파트에 사는 어린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나가는 것을 보면서 명화초등학교의 여름방학이 끝났음을 짐작했다. 902호 남매가 학교 가는 모습을 본 적도 있지만, 대뜸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집에 별일이 없는지 물어보기도 이상하니 잠자코 있는 중이었다. 얼핏 보기엔 다른 집 아이들과 다른 점이 없어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 아이들이 가정폭력을 당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할 듯싶었다.



남매의 엄마를 직접 만나볼까도 고민했다던 경숙은 남의 집 일에 신경 끄라고 으름장 놓았던 남자가 무서워서 이도 저도 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놨다. 경찰이 왔을 때 사실대로 말했다면 상황이 나아졌을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왜 거짓말을 한 건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정호도 그날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답답했다. 남매의 엄마가 울면서 남편을 말리고 비명 지르는 소리를 분명 똑똑히 들었는데 남편에게 폭행당한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한 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남매의 엄마는 아파트를 드나들다 정호와 마주칠뻔하면 황급히 자리를 뜨곤 했다. 더군다나 남매의 아빠는 정호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대놓고 험악한 시선을 보내왔다. 마치 경찰에 신고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경고하는듯한 시선이었다. 그러니 정호도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일시적이더라도 우선은 남자의 폭력이 중단된 것 같아 정호는 안심했다. 그래도 언제 또 벌어질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근무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학교 갔다 돌아오던 민서가 싱글벙글 웃으며 경비실로 달려왔다. 경비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정호는 창문 너머로 아이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봤더니 경비원 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민서의 손엔 어떤 종이 한 장이 들려있는 게 보였다.



"학교 다녀오는 길이야? 그건 뭐야?"

"할아버지! 저 상 받았어요!"

"상? 무슨 상?"

"신문 만든 거요. 학교에서 대상 한 명, 우수상 두 명 뽑았는데 제가 대상 받았어요!"

"진짜?"



민서가 펄럭이며 내민 종이를 정호가 받아 들었다. 두껍고 빳빳한 종이는 정말로 상장이었다. 신문 만들기 부문 대상 5학년 4반 권민서. 체육관 단상에 올라가 교장선생님께 직접 상장을 받았다고 설명하는 아이는 한껏 뿌듯한 얼굴로 정호를 올려다봤다. 정호는 손녀가 상을 받아온 것처럼 큰 소리로 감탄하며 축하해줬다. 축하선물이라도 주고 싶다고 했더니 민서는 할아버지가 도와줘서 상을 받은 거라며 선물은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아이가 그저 기특한 정호는 집으로 돌아가는 민서에게 흐뭇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민서 덕분에 잠을 깬 정호는 순찰도 한 바퀴 돌고 쓰레기장 점검도 했다. 가을이 찾아오고 있어서 그런지 햇빛은 뜨거워도 바람은 시원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제법 버틸만한 날씨였다. 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정호는 부채질을 하며 하염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어떤 젊은 여자와 함께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건우를 발견했다. 처음 보는 여자인 것으로 보아 아파트 주민은 확실하게 아니었다. 꽤나 친밀해 보이는 두 사람을 경비실 안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정호는 궁금증에 휩싸였다.



남매의 이모나 고모라고 생각하기엔 부모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고, 집에 찾아올 정도면 부모와도 아는 사이일 것 같은데 여자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경비실에 앉아 한창 생각에 빠진 정호는 의자에서 슬슬 일어났다. 쓸데없는 잡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택배실 정리를 하러 갈 생각이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경비실을 막 나서려던 정호를 붙잡은 건 경비실로 걸려온 호출 전화였다.



"네. 경비실입니다."

-아저씨, 저 101동 905호예요. 혹시 지금 우리 집에 와주실 수 있으셔요?

"무슨 일이신데요. 혹시 그 집 일어났어요?"



다급하게 들리는 경숙의 목소리를 듣고 902호에 일이 난 건가 싶어 정호가 얼른 되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이 너무도 의외여서 깜짝 놀랐다.



-지금 우리 집에 남자애 선생님이 와 계세요. 건우 담임선생님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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