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자네티 <영화의 이해>
<루이스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라는 제목의 영화를 아시는지요.
2013년 모 대학 졸업작품으로 제작된 단편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인 학생들의 촬영 현장, 고민에 빠진 감독이 소리칩니다.
“도대체 좋은 영화가 뭔대?”
그때 누군가 책 한 권을 안고 나타납니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루이스 자네티와 그의 저서 <영화의 이해(Understanding Movies)>.
자네티로 분한 배우는,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의 영문 자막을 맡은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입니다. 달시, 아니 영화 속의 자네티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많은 감독들이 고민하는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의 해답이 바로 이 책 안에 있다고. 아주 노골적인 책 광고 같습니다만, 거침없이 자기 주장을 설파합니다.
영화 제목이 짧게 뜬 후,
이번에는 놀랍게도 봉준호 감독이 그 책을 들고 등장합니다. 그는 차분히 말합니다. 나도 처음 영화 공부할 때 이 책으로 했었노라고. 예나 지금이나 이런 개론서는 없다고. 책을 팔러 온 건 아니라고.
칸을 넘어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과 각본상까지 수상한 <기생충>의 감독이 '책 영업'에 동참했을리는 없습니다. 수십년 전 미국에서 초판 발행된 후 쉼없이 개정판이 나오고 있는 책의 지분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봉감독외에도 한 명의 거장이 또 거들고 나섭니다. 이번에는 <범죄의 재구성><타짜><도둑들>과 현재 개봉 대기 중인 <외계+인>의 최동훈 감독입니다. 이 책에 대한 그의 애정 또한 봉감독과 동일했습니다.
학생 감독의 단편 졸업작품에 그토록 유명한 영화인을 출연시킨 섭외력이 놀라웠습니다. 아마도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자네티의 책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애정과 각오, 그리고 고민이 담긴 후배의 열정이 항상 카메라뒤에 있던 그들의 위치를 앞으로 움직였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많은 이들의 꿈입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일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득 나는 언제부터 그런 기적을 꿈꾸었는지 돌이켜 보았습니다.
오랜 세월 영화학도들의 ‘교과서’였던 그 책,
제 책장에도 노란 표지의 <영화의 이해>가 아직 꽂혀 있습니다. L.쟈네티 지음, 김진해 옮김. 현암사. 발행 1987년 10월 31일. 사실주의와 표현주의, 쇼트와 앵글, 조명과 색조, 렌즈, 필터, 필름, 광학기기, 프레임과 구도, 동작, 편집, 음향, 배우 ... 기록영화, 전위영화, 이론. 부록: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
아주, 아주 오랜만에 펼쳐본 책갈피에 적힌... 1991년 12월 26일 천호동 신사거리 교민문고.
이 책을 사던 그날의 그 순간조차 기억나는 듯합니다.
풍납동 작은 골방에 엎드려 탐독하던 젊은 날의 제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두꺼운 책 페이지 페이지마다... 주황색 색연필 밑줄이 가득했습니다.
경향신문에 실린 <내 인생의 책> 원고를 조금 수정 보완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 글을 읽는 작가님들, 특별히 영화인을 지망하는 후배님들께 응원의 인사를 드립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