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보내미 이 복 희
Nov 19. 2023
구제 신발
이 복 희
살 때보다 버릴 때 마음이 커버린 걸 어떡해요
재래시장 한적한 모퉁이 살아남은 신발들
주인의 행적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함구령이라도 내려진 듯
햇살 품고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네요
한 생의 기울기를 막아 주려고 왼쪽 뒷굽만 낮아진
맨 뒷줄 비스듬한 검정 구두 한 켤레
한쪽으로 끌려다닐 인연을 또 만난다면 어쩌죠
기우뚱한 신발의 자세를 나도 모르게 비뚜름하게 읽고 있네요
발이 맞지 않은 주인만 따라가다가
뒤꿈치가 까지고, 새끼발가락에 피멍이 들고
생활마저 헐렁해 자꾸 벗겨지고
빛바랜 뒷굽으로 바닥을 질질 끌고 다녔어요
신발장이 비좁도록 모셔둔 몸의 기억들 앞에서
함께 살다가 떠나버린 수많은 인연들
나의 바닥이 닿았던 신발도 구제될 수 있을까요
언제라도 펄펄 날아갈 참새떼처럼
초겨울 햇살에 나앉은 구제 신발들
어긋난 발등 자리 서로 토닥여 주고 있네요
_ 시하늘 2023년 봄호 발표.
_2023 시공간 동인지[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