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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내미 이 복 희 Nov 20. 2023

가르마

가르마




이 복 희



 가르마가 그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짓는다는 말을 들었다. 가르마를 어떻게 타는가에 따라 얼굴형이 더 예뻐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숨어 있던 단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머리카락을 넘기는 비율에 따라 5:5, 8:2, 6:4, 7:3, 9:1 등 가르마는 종류도 다양하다. 게다가 가르마와 상관없이 머리카락을 정갈하게 뒤로 넘기는 올백 머리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장 기본적인 7:3 스타일로 오른쪽 가르마를 줄곧 타왔다.


  머리에 가르마를 타기 이전부터 이미 정수리에 있는 가마의 위치와 모류의 방향에 따라 가르마의 자리가 정해진다. 내 머리에는 정수리 오른쪽에 가마가 하나 있고, 앞머리에 가마가 하나 더 있다. 앞머리 가마의 소용돌이가 오른쪽으로 휘감아 돌아 쏠려있고, 오른 이마 위의 머리카락이 소가 핥아 누른 것처럼 자라고 있다. 왼쪽으로 가르마를 타면 오른쪽 머리카락이 새가 둥지를 튼 것처럼 치켜 올라가 어쩔 수 없이 오른쪽 가르마를 고집해 왔다.


  언제부터인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는 버릇이 생겼다. 무엇에 집중하고 있다가도 무의식 중에 머리카락에 손이 간다. 왼쪽 손가락을 살짝 벌리고 오른쪽 이마에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뒷머리로 빗질하듯이 쓸어내린다. 섬세한 머리카락의 감촉이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면서 마음이 평온해진다. 여느 때와 같이 왼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올리다가 중턱쯤에서 멈칫했다. ‘아차, 이게 아니지.’ 오늘부터 왼쪽 가르마를 내려했던 것을 깜빡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고 오른손을 들어 왼쪽 이마에서 쓸어 넘긴다. 오른쪽에서 쓸어 넘기는 것만큼 감촉도 느낌도 영 시쁘게 느껴진다.


가르마 방향을 바꿨다고 마치 가발을 쓴 것처럼 어색하다. 자리 잡은 오른쪽 가르마를 덮고, 왼쪽으로 가르마를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를 감고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가르마를 찾아보지만, 쑥대강이가 된 머리에서 가르마는 사라지고 없다. 고개를 숙였다 들어 올리거나 바람과 맞닥뜨렸을 때도, 타놓은 가르마는 사라지고 머리카락은 뒤범벅이다. 자고 일어날 때도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처럼 가르마는 온데간데없다. 이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갈고리처럼 해서 원래 타던 오른쪽으로 가르마를 타고 있다.


  가마도 내림이 되는가. 첫애가 갓 태어났을 때는 몰랐는데 머리카락이 제법 자란 뒤, 목욕을 시키고 베이비 크림을 발라주면서 깜짝 놀랐다. 딸아이의 이마 가운데 나와 똑같이 가마가 하나 더 있었다. 게다가 오른쪽 이마 위의 머리카락이 나와 판박이처럼 소 핥은 머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 딸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세 모녀가 하나같이 두 개의 가마가 한 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우리 집안의 내림으로 본다면, 바로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그저 생겨난 것이 아닌 것 같다.


  사진 속의 내 모습들은 거의 머리가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가르마가 흐트러지는 것이 싫어 나도 모르게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이고 다녔나 보다. 어깨가 결리고 통증이 심해 경락 마사지를 받으러 가면, 왼쪽의 근육이 돌처럼 굳어 있다고 자세 교정을 권했다. 게다가 한 방향의 가르마를 너무 오랫동안 타다 보니 가르마 부분의 머리카락이 자외선이나 외부에 많이 노출되어 숱이 줄어 듬성해 보였다. 큰딸도 오른쪽 가르마를 줄곧 타왔다고 했다. 가운데 가르마를 타려고 해도 이마 중앙에 가마가 있어서 반듯하게 타지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작은 딸은 사춘기적에 앞머리 가마를 족집게로 뽑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가르마와 얽힌 사연을 뒤로하고, 새로운 가르마를 타서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르마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쪽으로만 길들여진 습관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니 몸이 제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 운전을 할 때도 나도 모르게 왼쪽으로 기울던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려니 좌우 방향이 바뀐 듯하다. 화장할 때도 양치할 때도 머리가 오른쪽으로 저절로 기우니, 겨우 자리한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눈을 찌르고 눈앞을 가려 신경이 거슬린다. 별것 아니라 여기고 바꿔 본 가르마로 인해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몸의 반응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오랜 세월 내 몸이 가르마에 맞게 길들여졌나 보다.


  요즘 타성에서 벗어나 보려고 시도 중이다.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도 늘 오른쪽 발을 먼저 내디뎠는데, 의식적으로 왼쪽 발을 먼저 내디뎌 걸었다. 처음에는 메떨어졌지만 차츰 익숙해지자 왼발이 먼저 앞섰고, 오른발에 비해 약했던 왼발에 힘도 올랐다. 또, 전형적인 오른손잡인 나는 왼손이 하는 일은 성에 차지 않아 늘 왼손은 오른손의 보조 역할만 시켰다. 그러다 보니 왼손에 비해 오른손이 더 거칠고 뼈마디도 굵고 크기도 왼손보다 크다. 그뿐 아니라 주름도 많아 미운 손이 돼버려 오른손을 다른 사람에게 내밀어 보이기 꺼려질 때도 있다. 그래서 여태 많이 써먹은 오른손은 아끼고, 왼손에게 오른손이 하던 일을 맡기고 있다. 이렇게 여기저기 타성에 젖은 몸을 의식적으로 바꿔보려고 하니 불편한 점이 의외로 많다. 한편으로는 불편이 신선한 자극이 되어 또 다른 생활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어색하게 느껴졌던 왼쪽 가르마가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뭔가가 달라진 모습이라며 관심 어린 눈빛으로 친구들이 한 마디씩 보탠다. 머리를 쓸어 올릴 때도 자연스레 왼쪽으로 오른손이 올라간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촉감이 살아나고 있다. 습관도 길들이기 나름인 것 같다. 다음에는 머리 중앙선을 따라 5:5 스타일인 앞가르마를 타볼 참이다. 앞가르마는 완벽한 계란형 얼굴이 아니라면 쉽게 소화해 낼 수 없다고들 한다. 얼굴이 동글납작한 내가 도전하기 힘든 스타일이지만, 한번 시도해 보고 아니면 또 바꿔 타면 될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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