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보내미 이 복 희
Mar 03. 2024
그해 여름 저녁
이복희
그날의 문은 안으로 잠겼다
깃털이 날리고, 괴성이 울린다
날개를 제압한 아버지 샘가에 쪼그리고 앉아, 닭 모가지를 비트는 손놀림이 빈틈없다
핏물 앞에서도 아버지의 칼끝은 서늘하다
버둥거리는 다리는 허공을 향해 내달린다 피를 쏟아
내는 몸부림은 차츰 잦아들고, 수챗구멍으로 검은 노을빛이 흐른다
뻘건 대야에 김이 오른다 마지막 목욕을 시키듯 닭을 집어넣고, 아버지는 한 올 한 올 털을 뽑는다 된바람에 솜털 빠진 갈대처럼 듬성듬성한 닭 다시 입욕을 여러 번, 잔털까지 세세히 뽑아내는 장인의 손길이다
도마 위에 누운 알몸,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자 우르르 딸려 나오는 알
동그란 눈알들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동네 사내아이들이 건네준 미꾸라지, 비닐봉지에 담아서 의기양양 집으로 들어서는 소녀를
양푼에 쏟아진 미꾸라지
소금을 뒤집어쓴 채 버둥거리고
식구들은 두레반에 둘러앉아 닭다리를 뜯는다
메케한 모깃불에 눈이 매웠던
그해 여름 저녁, 아직은
허기진 목숨들의 먹이사슬 같은 거 까맣게 몰랐던
_2024년 계간 [시와소금] 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