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내미 이 복 희 Nov 28. 2023

이 한 몸 바치오리다

흡연에 관한 한 나는 그의 대 선배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랑 뒷집 살구를 몰래 따 먹다가 주인에게 들켰다. 주인이 부모님한테 이른다면 혼찌검에 회초리를 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친구 할머니 방으로 숨어들었는데 잎담배가 눈에 들어왔다. 에라, 저걸 먹고 차라리 죽자, 그게 낫겠다. 해서 잎담배를 종이에 말아 둘이서 한 모금씩 들이켰다. 훅 빨아 당겼는가 싶었는데 캑캑 헛기침이 마구 나왔다. 목이 타들어가는 듯 따갑고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질어질했다. 이러다 ‘진짜로 죽는 것이 아닌가.’ ‘아, 담배는 진짜 독약이구나.’했던 것이다.

그는 그 독약에 빠져있다. 깊은 밤, 그는 소리 죽여 뒤 베란다로 나간다. 한 손에 독약을 신주 모시듯이 하고 창문을 살짝 연다. 그것을 입에 물고 주머니에서 불씨를 꺼낸다. 치르륵, 빨갛고 파란 불꽃이 일어난다. 독약을 불꽃에 갖다 대고 후욱 빨아들이자 독약이 시뻘겋게 날을 세운다.

독약을 입에 문 그에게서 반항과 고뇌의 대명사인 제임스딘을 떠올리는 것은 순전히 나의 착각이다. 그는 그 시절 제임스 딘 나이의 곱절도 더 되지 않는가. 세상 시름을 혼자 다 삼키듯이 연기를 들이켜 입속에 머금었다가 꿀꺽 삼킨다. 연기는 기관지를 돌아서 입과 코로 뿌옇게 나와서 공기 속으로 음흉하게 사라진다. 밤마다 베란다를 들락거리는 반딧불족인 그의 체취는 지독한 공해요 혐오스러운 가스다.

그가 독약을 가까이하게 된 것은 군복무 중일 때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틀에 한 갑씩 지급되는 담배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훈련을 나가서 휴식 시간에 다들 피워대는데 멀뚱히 있기도 그렇고 호기심에 한 대 두 대 피우다가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군가에 ‘한 가치 담배도 나눠 피우고~~’ 이런 가사도 있다면서 마지막 한 개비는 아버지도 안 드린다는데, 그 한 개비를 나눠 피우는 전우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무용담처럼 늘어놓기도 했다.

새해마다 금연을 결심하는 애연가가 한둘인가. 작심삼일의 공염불이 되기 일쑤다. 끊었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대부분이 다시 찾는다. 그들은 금연하는 사람들을 독종이라며 상종도 말아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흡연의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1년 가까이 끊어본 적도 있지만 스트레스를 이유로 다시 담배를 찾았다. 처음에는 몰래 피우다가 눈치 빠른 내가 알아채고부터는 노골적으로 가까이했다. 차라리 모른 체했더라면 숨는 일이 귀찮아서 다시 금연을 시도했을까. 최근에는 전자담배를 사 왔다. 곰방대 물고 있는 폼이 할아버지 같다고 놀렸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회사의 금연교실에 들어 금연 패치를 부착하기도 하고, 금연 사탕이나 껌을 씹으면서 부단히 노력을 하지만 아직도 실패의 계속이다. 부디 그의 도전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기를.

도움이 될까 하여 흡연 경고 문구를 찾아 프린트를 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건강칼럼도 스크랩해서 코앞에 들이밀어봤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잔소리를 더하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 본인 스스로 결심하기를 고대하면서 기다리기로 작정해 보지만 그의 입에서 독약이 탈 때 내 애간장도 그만큼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세상의 냄새 중에 담배 냄새가 제일 싫다. 특히 그의 담배 냄새는 이상스러운 홀아비 냄새 같이 코를 틀어쥐게 한다. 임신했을 때 그 냄새 때문에 입덧이 더 심해져 고생도 했지만 그래도 그놈의 독약을 끊지 못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흡연자의 설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호 식품이라고 우기는 것도 한계에 봉착된 셈이다. 흡연자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래도 용감한 애연가들은 숨어서 독약을 빨아들인다. 연거푸 두세 개비도 피우는 모양이다. 그들도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이것을 꼭 피워야 하나.’하고 자괴감을 가지기도 할까. 전에는 금연하는 사람을 독종이라 했지만 이제는 흡연자가 더 독한 사람일지도 모를겠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흡연자로 살아남으니 말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피우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고 애연가들은 변명한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담배 한 개비로 가라앉힐 수 있다거나, 어색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다고도 하지만 그런 일들이 심신의 건강을 지켜주는 일보다 더 중할까.

잔소리를 싫어하는 그에게 나와 아이들은 한 마음으로 오늘도 외친다.

“우리 가족은 당신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나이다. 우리들 사랑을 위하여 다시 한번 금연을 결행하신다면 반드시 성공하시도록 이 한 몸 바치겠나이다.”

작가의 이전글 도대체 어떤 맛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