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보내미 이 복 희
Nov 25. 2023
도대체 어떤 맛일까
이복희
간판도 없는 허름한 대폿집 탁자 위의 찌그러진 주전자를 본다.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견뎌온 중년 촌부의 펑퍼짐한 엉덩짝 모습이다. 저 둔부를 힐끔거렸을 뭇 남정네의 번뜩거리는 눈초리가 느껴진다. 주정뱅이에서 망나니는 물론이고, 때로는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길손의 마음까지 읽어주느라 속깨나 태웠겠다. 울퉁불퉁 걸어온 길에 삶의 애환이 서려있어 더 애착이 간다.
주전자 옆구리에 붙은 물음표 모양의 주둥이에 눈길이 멎는다. 저 물음표 속에 어떤 의문이 들어 있을까. 어린 날 호기심이 발동해 주둥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까닭도 주전자에 물음표처럼 달려있다. 난생처음 맛보는 술맛에 단발머리 계집애는 개맹이가 풀어져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현상을 일찍이 경험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지금도 왜 그렇게 앙큼한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유년시절, 할머니는 아랫목에 놓인 큼지막한 술독을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 그 독 속에는 누룩과 지에밥의 절묘한 만남으로 막걸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섯 남매가 옹기종기 이불 밑으로 발을 모으고 이야기꽃 피울 자리를 술독에게 빼앗겼다. 홑이불까지 씌워둔 독 속에서 밑술이 보글거리는 소리와 톡톡 기포 터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할머니는 술독에 성냥불을 넣어 술이 제대로 발효되고 있는지 저녁마다 확인하셨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랫목을 독차지한 독에서 나는 술 익어가는 냄새로 방안이 통째로 술독이 되었다.
시큼털털한 냄새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할머니는 술을 걸렀다. 체에 광목을 깔고 술독 속의 걸쭉한 것들을 곰비임비 퍼내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걸러내셨다. 광목에 묻은 것까지 알뜰하게도 눌러서 짜내고 남은 술지게미를 먹어보라고 주셨다. 무엇을 첨가했는지 달달한 맛에 홀려 우리는 한입씩 입에 넣고 쪽쪽 빨아서 먹었다. 많이 먹은 오빠의 귓불이 불거지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이상야릇한 맛에 몇 번 입대다 말았다. 요즘 부모들이라면 알코올 성분이 든 술지게미를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주려 할까만, 그 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술지게미뿐 아니라 어떤 거친 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탈 없이 잘 성장해 왔다.
할머니는 걸러낸 막걸리를 다시 작은 항아리에 옮겨두고 시원한 창고에 보관하셨다. 집안에 귀한 손님이 오시거나 들일 다녀오신 아버지의 곁두리로 내놓으셨다. 일을 하고 오신 아버지 곁에 앉아 술 시중을 들었다. 노란 주전자에 든 누른 막걸리를 사발에 따라 드리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틈을 타 새끼손가락으로 찍어 막걸리 맛을 보곤 했다. 아버지께서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들이켜시고 ‘캬아’ 소리를 할 때마다 ‘도대체 어떤 맛일까.’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드디어 단발머리 계집애에게 막걸리에 대한 의구심이 풀릴 기회가 주어졌다. 할머니 심부름으로 주전자에 든 아버지 곁두리를 들고 구불구불 논두렁길을 걸었다. 주전자 속에는 할머니의 정성으로 빚은 막걸리가 들어있다. 찰방거리는 막걸리가 쏟아질까 봐 연신 주전자를 내려다봤다. 조심조심 내딛는 발걸음이 구부러진 논두렁에서 뚝 멈췄다. 태연스레 앞뒤를 휘익 둘러봤다. 머뭇거리는 것도 잠시, 논두렁에 서서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홀짝 삼켰다. 움찔, 몸서리가 쳐졌다. 목구멍을 적실 정도만 넘긴 탓인지 한 번으로는 왠지 성에 차지 않았다. 서너 발자국을 걸어가다가 또다시 주전자 주둥이를 입에 갖다 댔다. 이번에는 눈을 질끈 감고 훅 들이켰다.
난생처음으로 마셔보는 술맛이었다. 냄새로만 마셔왔던 막걸리가 주둥이를 통해 입안의 혀에 감돌자 단맛과 함께 오묘한 맛들이 느껴졌다. 막걸리를 입안에 물고 ‘뱉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꿀꺽 삼켰다. 식도를 훑고 내려가는 야릇한 느낌이 오감의 돌기들을 곧추세우는가 싶더니 이내 모든 감각들을 잠재워버렸다. 어른들은 어찌 이런 것을 마시며 세상에서 둘도 없는 맛인 양 ‘캬아’라고 감탄사를 연발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술을 마신 것인지 술이 나를 마신 것인지, 내딛는 발걸음이 흐느적거렸다. 논두렁 사이로 어디론가 가야 할 길이 먼 능구렁이 한 마리가 갈팡질팡 거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계시는 밭으로 가야 할 마음은 급한데 발걸음은 자꾸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날, 논두렁길 늦가을이 계집애의 품을 파고든 것인지, 누런 들녘이 달포쯤 삭은 고두밥이 되어 나에게 안겨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쌀알이 되어 누룩에 뭉개지며 저릿저릿 떨어져 내리는 맛을 담아내는 우묵한 술독이 되고 말았다.
나도 이제 그 앙큼한 짓을 한 계집애의 그때 아버지 연배에 이르렀다. 술인지 물인지조차도 분간할 수 없던 애송이 시절에 경험한 술맛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제대로 숙성된 막걸리의 맛을 가늠할 수 있는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볼이 발그레하도록 술기운이 오르면, 처음 마셔본 술맛이 떠올라 복숭앗빛 얼굴이 더욱더 상기된다.
대폿집 탁자 위의 주전자 속 막걸리를 한잔 따른다. 물음표 모양의 주둥이를 통해 미어터지도록 흘러나온 막걸리가 찰방거린다.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목구멍으로 넘긴다. 갑갑하게 차올랐던 귀살쩍은 체증이 술과 함께 사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을 타고났다면 과연 이 맛을 알까. 아마도 내 몸속에 술독을 들여앉혔나 보다. 인생의 반환점인 나이에도 왜, 욕망의 발효는 멈추지 못하는지 자꾸 폭죽처럼 터지려 부글거린다.